바이블 오디세이 II2012. 11. 17. 07:06

울게 하소서

- 눅 22:54-62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에는 아주 유명한 아리아가 있다. 리날도의 연인 알마레나 공주가 적군에 포로가 되었을 때 부르는 아리아로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가 그것이다. 그가 부르는 울게 하소서아리아의 가사는 이러하다. “나를 울게 내버려 두소서 / 비참한 나의 운명이여 / 나의 (잃어버린) 자유에 난 한탄하네 난 한탄하네 / 이 비애가 내 고통의 사슬을 끊게 해 주소서 / 그저 자비로서 / 나의 고통의… / 그저 자비로서 / 나를 울게 내버려 두소서 비참한 나의 운명이여 / 나의 (잃어버린) 자유에 난 한탄하네 난 한탄하네

 

본문에서도 이렇게 비통하게 우는 자가 나온다. 바로 베드로다. 일찍이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일러주셨다.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22:34). 이미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서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다짐 한 때였다. 그리고 베드로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후 종교지도자 무리들에게 잡혀 가실 때 무턱대고 그 뒤를 따라 대제사장 관저 뜰까지 따라 들어갔다.

 

그곳의 분위기는 그렇게 험악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닥불 주위에 모여서 몸을 녹이고 있었고 잡혀 온 예수님의 뒤를 따라온 베드로도 은근슬쩍 모닥불 주위의 사람들 틈에 끼어 들었다. 만약 대제사장 관저 뜰의 분위기가 험악했다면 그렇게 한가롭게 모닥불 가에 모여 몸을 녹일 틈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모닥불 주위에 이렇게 모여 있었다는 것은 그곳의 분위기가 그렇게 험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분위기가 험하지 않은데 베드로는 거기서 오버하고 만다. 어떤 여종이 베드로를 지목하며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라고 했을 때 베드로는 펄쩍 뛰며 부인한다. 험악한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베드로가 예수님과 함께 있던 사람이라고 해서 그들이 베드로에게 예수님에게처럼 위협을 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세 번이나 부인하는 베드로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참 미스터리다.

 

마지막 세 번째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을 때, 본문은 이렇게 전한다.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이 진술은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것이지만, 매우 미묘한 상황을 전달해 주는 중요한 진술이다.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관저를 뛰쳐나가 심히 통곡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돌이켜 자기를 쳐다보시는 예수님의 눈빛을 보고 베드로는 마음 속에서 뭔가 울컥했다. 만감이 교차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했다.

 

신앙인 가운데 주께서 돌이켜 보실 때예수님의 그 눈빛을 보고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실 요즘 시대는 통곡의 눈물이 메마른 시대다. 악만 살아 있고, 눈물이 마른 시대다. 요즘에 사람들은 눈물도 소비적으로 흘리고 만다. 돈 몇 푼 때문에 눈물 흘리고, 자신의 욕망이 채워지지 않은 것 때문에 억울한 심정을 소비적으로 표출하고 만다. 그 뿐이다. 눈물을 흘리고 나서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다. 쇼핑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리듯이, 바로 그렇게 소비적으로 눈물을 흘리고 나면 바뀌는 것이 하나도 없는, 그런 눈물을 흘리는 시대다.

 

그러나 베드로의 통곡의 눈물과 같은 눈물은 그 차원이 다르다. 통곡의 눈물은 우리의 죄악을 씻어주고, 우리의 교만을 씻어준다. 통곡의 눈물은 회개하게 하고, 용서하게 하고, 화해하게 한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회개하고 용서하고 화해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우리들은 회개, 용서, 화해의 눈물 흘리기를 꺼려한다. 아예 그러한 눈물을 흘리는 것은 잊은 지 오래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통회하는 자를 멸시치 않으신다”( 51:17). 왜 우리의 영혼과 삶을 새롭게 하는 통곡의 눈물을 흘리지 않는가?

 

통곡의 눈물을 흘리면 회개가 일어나고, 용서가 일어나고, 화해가 일어난다. 회개, 용서, 화해가 일어난 삶의 자리만큼 새롭고 화평한 곳이 어디 있겠는가! 통곡의 눈물을 흘릴 때 우리 입에서 리날도의 아리아 울게 하소서만큼 아름다운 선율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통회하는 마음, 통곡의 눈물을 흘리는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울게 하소서! 통곡의 눈물이 메마른 이 시대에 눈물을 흘리는 자에게 복 있을지어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