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4. 2. 17. 05:03

교회의 성장통

(행 2:42-47)

 

우리 큰 아들이 이제 7살이 되는데, 자주 다리가 아프다고 한다. 키가 클 때 그런다. 육체적인 성장통이다. 이제 조금 있으면 사춘기가 되어, 정신적인 성장통을 겪게 될 것이다. 그 성장통이 얼마나 힘들면, 괴테 같은 사람은 그 성장통을 일컬어 질풍 노도의 시기라고 했겠는가? 성장통을 겪을 때, 잘 겪어야지 성장을 잘 할 수 있다. 성장할 때 제대로 영양분이 공급되어야 한다. 육체적으로 성장할 때는 영양분이 충분이 섭취되도록 해줘야 하고, 정신적으로 성장할 때는 사랑이 많이 필요하다.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면 키가 안 크거나 성장이 멈추고, 사랑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인간성이 비뚤어진다.

 

교회도 유기체이기 때문에 성장통을 겪는다. 교회가 생겨났을 때도 성장통을 겪고, 서서히 성장해 가면서 성장통을 겪는다. 어느 교회든지 성장할 때는 성장통을 겪는데, 그것을 영적인 눈으로 잘 파악하고 적절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오늘 말씀에서 본 대로 초대교회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 탄생하여 잘 성장해 갔다. 47절 말씀이 그것을 증거해 준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그러나 초대교회에 이렇게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도 성장통을 심하게 겪었다. 첫째, 교회는 복음 자체 때문에 성장통을 겪는다. 복음을 못 받아 들이는 대적자들이 교회를 핍박한다. 4장에 보면 복음을 전하다 체포된 베드로와 요한의 이야기가 나온다. 4 1절과 2절을 보면 이렇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예수 안에 죽은 자들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매..”라고 나온다. 그리고 그 복음을 전한 베드로와 요한을 체포해서 가둔다.

 

교회가 복음 자체 때문에 받는 성장통은 교회가 겪어야 할 필연이기도 하고, 그것이 오히려 교회가 살아 있다는 것을 반증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빛을 싫어한다. 자신의 어둠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벌인 악한 일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은 이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빛이 어둠에 비취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1:5).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11-12).

 

복음 자체 때문에 교회가 성장통을 겪는다면 그것은 교회가 올바로 성장해 간다는 증거이다. 아이가 올바르게 성장하면 성장통을 겪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이가 성장통을 겪을 때 부모의 마음은 안쓰럽지만 한편으로는 아이가 정상적으로 잘 성장하고 있다는 안도감에 기쁘고 즐거운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마태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5:11-12).

 

둘째로, 교회 지도자의 신변에 문제가 생길 때 교회는 성장통을 겪는다. 4장에 보면 복음을 전하던 교회 지도자, 특별히 베드로와 요한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이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 것이다. 이러한 신변의 위기를 초대교회가 어떻게 극복했는지 보라. 423절과 24절을 보면,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그리고 31절을 보면,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지도자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들은 교회 지도자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다. 교회는 지도자의 신변이 늘 안전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래야 교회의 성장통이 잘 지나가고 교회가 잘 성장할 수 있다. 목회자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교회의 성장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라. 목회자의 주변(건강, 가족 등)이 편안하도록 늘 기도하시라. 교회가 잘 성장하다 성장통을 심하게 앓는 경우,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목회자의 신변의 문제이다. 돈문제, 여자문제, 건강문제, 가족 간의 불화, 자녀문제 등 일반 사람들에게도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일들을 통해 목회자를 넘어뜨려 교회를 힘들게 하려는 사탄이 호시탐탐 교회의 지도자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세 번째 성장통은 5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범죄 때문에 벌어진다. 오늘 말씀에서 봤듯이, 초대교회 성도들은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다.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욕심 때문에 하나님께 내놓아야 할 것을 숨겼다.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5:2).

 

베드로가 아나니야를 이렇게 꾸짖는다.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교회의 성장통은, 이렇게 성령의 충만한 마음이 밀리고, 그 안에 사탄이의 마음이 들어올 때 온다. 마음에 성령이 충만한지, 사탄이의 마음이 가득한지 평소에는 잘 모른다. 사람의 눈을 속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알고, 성령님께서 아신다. 사람을 속이는 것은 나쁜 일이지만, 사람이 나를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것은 무서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성령을 속이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육신을 멸할 수 있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너의 영혼까지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셨는데, 성령을 실족하게 하는 죄는 참으로 두려운 거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같은 날 초상을 치르게 된 것은 사람을 속였기 때문이 아니라, 성령을 속였기 때문이다.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부지런히 살펴서, 성령이 가득한 마음을 잘 지켜야 한다. 그래서 범죄치 말아야 한다. 마귀는 교회 지도자만 노리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구성원 모두를 노린다. 베드로 사도는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하면서, 믿음을 굳건하게 하고 그를 대적하라고 말한다. 마귀에게 몸과 마음을 내어주지 말라.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 주님께서 도우신다.

 

네 번째 교회의 성장통을 6장에서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교회의 지체끼리 서로 배려해 주는 일에 실수가 있을 때 그렇다. 61절을 보면,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초대교회(예루살렘교회)는 크게 헬라파 교인들과 히브리파 교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고린도교회는 더 심했다. 아볼로파, 바울파, 게바파, 그리스도파가 그것이었는데, 누구한테서 세례를 받았느냐에 따라서 나눠진 것이었다. 이것은 무슨 파당을 지은 것은 아니고, 그냥 태생이 그렇게 된 거다. 서로 그냥 다른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다르듯, 그리고 경상도 출신과 전라도 출신, 또는 충청도 출신이 다르듯이 말이다. 성향이나, 태생이 다른 것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6장에서도,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라파 유대인들이 다르다. 유대인이라는 것은 같지만, 한쪽은 이민자들이고, 한쪽은 유대땅에서 자란 사람들이다. 우리로 따지면, 미국에 사는 한인 이민자들과 한국에 사는 한인들인 것이다.

 

이런 것은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런데, 문제는 히브리파 사람들이 배식을 맡아서 할 때 같은 히브리파 사람들에게는 생선을 나누어줘도 몸통, 살이 통통한 것을 주고, 헬라파 사람들에게는 꼬리나 삐쩍 마른 것을 주는 등, 이렇게 차별을 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누구든지 차별 당하면 싫은 법이다. 배척당하면 싫은 법이다.  교회가 이렇게 헬라파냐 히브리파냐, 남자냐 여자냐, 종이냐 주인이냐, 뭐 이런 것 때문에 차별하거나 배척하면 안 된다. 만약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배려하지 못하면,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교회는 살아온 배경이 다르고, 하나님 체험에 대한 경험이 다른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에, 그 다름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는 곳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을 잘 알고 있었던 사도 바울도, 서신서에서 계속 강조하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일치다. 십자가를 중심으로 서로의 다른 것은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라는 것이다. 다른 것은 그냥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이것이 잘 되면 교회는 성장한다. 그런데 이것이 잘 안 되면 교회는 어려워진다.

 

여러분에게 여쭙고 싶다. 교회를 사랑하시는가? 에베소서 5장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신다. 교회는 우리의 신랑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신랑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고, 우리가 교회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다. 다 비유인데, 그만큼 교회는 소중하고 사랑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성숙이란,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과 잘 지내는 능력을 말한다. 성숙한 사람, 성숙한 시민, 성숙한 사회, 우리는 성숙이라는 말을 통해 그 사람이, 그 사회가 얼마나 좋은 사람, 좋은 사회인가를 표현한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주변을 어렵게 한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 성장통을 잘 이겨내고, 나와 다른 것을 잘 받아드리고 그것과 잘 지내며 화평을 이룬다.

 

위의 네 가지가 형통하면 교회는 성장통을 잘 이겨내고 잘 성장하게 된다. 복음 자체의 능력이 그대로 나타나길 기도하시라. 교회의 지도자인 목회자의 신변을 위해서 기도하시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마음에 사탄의 마음이 들어가지 않도록 부지런히 자기 자신을 살피시라.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배려하고, 십자가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시라. 그러면, 교회는 건강하게 성장할 것이다. 교회가 성장통을 잘 이겨내고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두 팔을 넓게 벌려 기지개 한 번 켜시라.

 

* 실제 설교에서는 좀 더 보충해 가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좀 더 확장된 설교를 들으시려면 아래를 클릭하세요.

www.columbuskmc.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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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