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2014. 3. 22. 13:51

어린 왕자의 고백

 

애초부터 지구에서 태어난 인간은 없다

옆 집 사는 철수는 켄타우로스 별에서 왔다

그래서 걔가 좀 반신반인처럼 별난 데가 있는 거다

초등학교 때 짝꿍 영희는 어떻고?

걔는 전갈자리 별에서 왔다

그래서 걔는 독을 품고 있는 거다 건들면 죽는다

고등학교 때 학생주임, 일명 미친개는

사냥개자리 별에서 왔다

그래서 학생주임은 그렇게 물어댔던 거다

그래서 자기가 온 별이 보이는 북위 42도에만 가면

그렇게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 댔던 거다

어제 안 사실인데

우리 집사람은 토끼자리 별에서 왔단다

어쩐지 가끔 귀여운 구석이 있더라 했더니

우리 집사람은 토끼풀이 그렇게 좋단다

토끼풀꽃반지 끼면 공간이동 할 태세다

 

애초부터 지구에서 태어난 인간은 없다

모두 엄마 자궁을 게이트 삼아

우주 공간에서 텔레포트해서 지구에 온 거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별난 거다

별의 별 사람 다 있는 거다

밤 하늘의 별만큼

별난 사람들이 모여 왁자지껄한 지구별을 만들다가도

샛별 같은 미련이 동터 올 때쯤

사경을 헤매는 아지랑이처럼 차르르 사라지는 것은

자기 별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 거다

 

나는 어느 별에서 왔는지 궁금하다고?

그건 비밀이다

물론 당신이 어느 별에서 왔는지 나에게 말해준다면

나도 내가 어느 별에서 왔는지 말해 줄 거다

그런데 그걸 꼭 말해야 아나?

별스런 내가 안 보이나?

그런 걸 물어보려는 당신도 참

까만 밤 한 구석에 팔랑팔랑 박힌 별처럼

총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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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