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터스텔라>를 보고

 

대화는 대등한 위치에 섰을 때만 가능하다. 관계가 대등하지 못하면 대화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과 복종만이 발생한다.

 

종교가 과학과 대화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대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제 종교와 과학이 대등한 위치에 섰다는 뜻이다. 그 동안 종교는 다른 분야의 학문을 그저 '시녀'로만 보아 왔다. 철학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그래서 중세신학자들은 이런 말까지 했다. '철학은 종교(신학)의 시녀이다."

 

물론, 종교가 과학을 자신과 대등한 위치로 인식했다기 보다, 과학이 종교의 수준으로 상승했다고 말하는 것이 좀 더 옳은 표현 같다. 서로 간의 이해 관계가 어찌되었든, 현재 종교는 과학과 대화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최근 개봉된 영화 <인터스텔라 Interstellar>는 그 동안의 종교와 과학 간의 대화의 정점에 서 있는 것 같다. 종교의 독점적 주제인 종말과 구원의 문제가 과학적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상황적 배경은 구원이 절실하게 필요한 지구인들의 생존 위기이다. 환경 파괴로 인해 더 이상 양식이 없어 모든 생존자들이 곧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 절망적인 상황을 과학적으로 해결하려는 몸부림이 표현되어 있다.

 

멸망해 가는 지구인들을 구원할 프로젝트의 이름은 <나자로 프로젝트>이다. 나자로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로 죽어 장사된 뒤 사흘 만에 예수의 신적 능력을 통해 되살아난 인물이다. 이왕 성서에서 프로젝트의 이름을 따올 거면, 궁극적 부활인 <그리스도 프로젝트>로 할 것이지, <나사로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인 것이 흥미롭다. 어쩌면 이것이 과학이 가지고 있는 예수의 신적 능력을 대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메시아의 구원 능력을 표현하기에는 오히려 나자로를 끌어 들이는 것이 더 현실적으로 보인다.

 

나자로 프로젝트는 두 개의 플랜을 갖고 있다.  플랜 A는 거대한 우주선을 띄워 생존자를 모아 지구를 탈출하는 방안이다. 플랜 B 1천개의 인공수정란를 외계로 보내 인종을 새롭게 퍼뜨리는 계획이다. 플랜 자체가 과학적이다. 그 어디에서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종말론적 신적 개입이 없다.

 

영화의 재미는 우리가 평소에 접하기 힘든 천체 물리학 이론이 이야기 전개의 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중력, 상대성이론, 웜홀, 그리고 블랙홀 등이 그것이다. 영화는 이러한 천체 물리학 이론이 실제로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으로 보여준다. 일례로, 생존에 대한 희망을 품고 우주 여행을 떠난 쿠퍼 일행이 10년 전 정착 가능한 별을 찾아 먼저 떠난 우주비행사의 신호를 좆아 들어간 밀러 행성은 중력으로 인한 시간의 왜곡 현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보여준다. 쿠퍼 일행은 밀러 행성에 단지 3시간 남짓 머물렀을 뿐인데, 지구 시간으로 23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다. 또한 블랙홀을 통과한 몇 분의 시간이 지구 시간으로 56년을 허비하게 되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시간이 시간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영화의 줄거리 중 가장 압권은 쿠퍼가 블랙홀을 통해 사건의 지평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은 시간의 이편과 저편, 또는 시간의 과거와 미래를 모두 빨아들여 새로운 공간인 사건의 지평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책장을 사이에 두고 사건의 지평이 구분되고 있는 장면이 참 흥미로운데, 이 장면은 영화의 처음과 끝을 이어주는 반전의 역할을 하고 있다.

 

결국 책장을 사이에 두고 만들어진 사건의 지평의 비밀을 풀어낸 쿠퍼의 딸(머피)은 어릴 적 서재에서 경험했던 신비로운 유령 또는 중력의 작용을 해독함으로 인류 구원의 길을 열어 젖힌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외친다. “유레카!”

 

인류는 과학의 힘으로 멸망 위기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블랙홀을 빠져 나온 쿠퍼는 딸(머피)이 창조해 낸 새로운 구원의 세상(구퍼 정거장)으로 구출되어 지구 시간으로 거의 80년 만에 딸(머피)을 만난다. 우주에서 겪은 시간의 왜곡 현상으로 실제 나이는 124세이지만, 여전히 지구를 떠날 때의 젊음을 간직하고 있는 쿠퍼는 죽음을 목전에 앞두고 있는 늙은 딸’(머피)을 만나 이런 대화를 나눈다.

 

I knew I’d see you again.”

(“나는 아빠를 다시 만나게 될 줄 알았어요.”)

아빠가 묻는다.

How?” (“어떻게?”)

“Cause my daddy promised me.”

(“왜냐하면 아빠가 나랑 약속했기 때문이죠.”)

 

종말과 구원을 과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는 이 영화의 마지막은 차라리 종교적이다. 이 영화가 과학적이든 종교적이든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종말과 구원은 우리 인류에게 닥친 현실의 문제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생존의 위기에 처해 있는 인류에게 중요한 것은 구원이다. 구원이 중요한 것이지, 그것이 종교적이냐 과학적이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러므로, 생존의 위기에 처해 있는 인류에게 구원을 실제적으로 가져다 주기 위해서 종교와 과학의 끊임 없는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종교와 과학, 대화의 끝에 발견한 구원의 길을 마주하며 함께 이렇게 외치는 날을 기대한다. 과학적으로 유레카!” 또는 종교적으로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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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