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6. 5. 16. 02:03

영의 사람

(사도행전 2:1-4, 14-21, 로마서 8:14-17)


오늘은 성령강림절이다. 주께서 승천하시며 약속하신 성령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날이다. ‘승천은 신학적인 의미라고 지난 주 설명했다. 예수께서 승천하셨다는 것은 예수께서 하나님과 동등한 지위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처럼, 성령이 하늘로부터내려왔다는 것은 성령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왔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늘은 신학적인 의미이지, 물리적인 의미가 아니다.

 

성령이 하늘에서 왔다는 것은 성령이 하나님과 승천하신 그리스도와 같은 지위에 있는 분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은 기독교의 독특한 신관인 삼위일체론을 이해하는 데 매우 핵심적인 개념이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성령을 우리가 부릴 수 있는 알라딘 램프의 지니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성령이 오라 마라, 성령이 역사해라 마라라면서 성령에게 어떠한 명령을 내릴 때가 많다. 성령을 대하는 매우 잘못된 태도이다. 성령은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과 더불어 한 위를 구성하고 있는 성령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에 대한 보이는 역사라면, 성령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에 대한 보이지 않는 역사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역사를 눈에 보여준다고 해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 믿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을 보라. 그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었으나, 결국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십자가에서 죽였다.

 

하늘로부터 성령이 오셨다는 것은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갈 때 나 혼자 있다고 생각하면 그 길을 가는 것이 두렵고 힘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주께서) 나와 함께 하셔서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보호해 주신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예수의 승천 뒤, 예수님의 지시대로 예루살렘에서 모여 성령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던 제자들은 드디어 성령이 오신 것을 경험했다. 성령이 오신 것은 그들에게 명백한 하나의 사건이었다.

 

사건이라는 말은 굉장히 중요하다. 사건은 그것을 경험하기 전과 경험한 후의 인생의 전혀 달라지게 만든다. 우리의 일상은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이전의 모습과는 달라진다.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의 일상은 그저 그렇게 흘러간다. 여러분의 인생을 돌아보면, 여러분의 인생을 바꾼 사건들이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즐비할 것이다. ‘이러한 사건만 없었어도, 내 인생은 지금 다를텐데..’ 또는 이러한 사건만 있었어도, 내 인생은 지금 다를텐데..’라며 아쉬움을 표현할 때가 많다.

 

사건에는 거리감이 존재한다. 우리가 매일같이 뉴스에서 보는 사건은 나에게 사건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나의 인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큰 틀에서 보면 나와 상관 없어 보이는 사건이 결국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례로, 기후변화의 사건은 현재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같으나, 결국 그것 때문에 삶에 큰 제약이 어느 순간 오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이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을 때를 말한다. 수없이 많은 교통사고 소식을 듣지만, 내가 직접 당하지 않으면 그것을 사건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그 교통사고 때문에 장애를 얻게 되면, 그것은 사건이다. 그 사건을 통해 나의 삶이 영원히 바뀌어 버렸기 때문이다. 부부가 자식을 낳는 일도 사건이다. 이제 자식을 낳은 것 때문에 영원히 속 썩으면서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도 있는 거다.

 

사건의 의미를 마음에 품고, 제자들이 겪은 성령강림절 사건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들에게 성령강림절 사건은 그들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사건이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에 근거해서, 그들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자.

 

말씀을 통해 목격할 수 있는 변화는 그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자기 마음대로 말한 것이 아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했다. 성령이 우리의 주님이지, 우리가 성령의 주님이 아니다.

 

이들이 다른 언어로 말했다는 것은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서 세계 각국에서 온 외국어를 쓰는 이들과 말이 통했다는 뜻이다.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성령강림의 사건을 전하고 있는 사도행전 25절부터 13절을 보면, 얼마나 많은 나라에서 사람들의 오순절 순례를 왔는지 보도하고 있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고 있는 제자들을 보고, 오순절 순례자들이 이런 말을 한다.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7-8).

 

우리가 오늘 읽은 본문 중에는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큰 소리로 설교하는 내용이 있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때 도망갔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제 당당하게 나서서 설교한다. 베드로 설교의 핵심은 21절에 담겨 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이것은 굉장히 대담한 설교였다. 이 당시 그들을 구원해 주는 주님은 로마의 황제였다. 그런데, 제자들은 로마 황제가 주님이 아니라, 부활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빗대어 말하자면, 이는 유관순 열사가 일제의 압제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행위와 똑 같은 일이다. 일제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유관순 열사가 어떻게 되었은가? 일제의 악랄한 고문으로 처참하게 죽었다.

 

생명의 위협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는 일이나, ‘부활승천하신 예수가 주님이시다라고 외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유관순 열사가 일제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것은 단순한 애국심 때문이 아니다. 그에게는 정말로 대한민국이 그의 고국이었기 때문이다. 유관순은 나라를 경험한 사람이다. 그에게는 나라가 사건이었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제자들이 부활승천하신 예수가 주님이라는 것을 외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진실로 예수를 주님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예수의 부활과 승천이 사건이었다는 뜻이다.

 

우리가 읽은 또 하나의 본문인 로마서는 이렇게 증거한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로마서는 사도행전보다 성령 사건을 더 밀고 나간다. 성령을 통해, 우리는 완전히 다시 태어나게 됨을 선포한다. 성령은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로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만큼 신비로운 관계가 없다. 자식은 부모의 모든 것을 물려 받는다. 성품, 외모, 그리고 부모가 가지고 있던 재산까지. 그래서 오늘 말씀은 상속자라는 말을 쓴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17).

 

사실, 현대인들에게 상속자 개념은 그렇게 건전하지 못하다. ‘상속자라고 하면 우선 재산을 물려 받는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둘러싼 법정다툼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서에서 사도바울이 말하는 상속자의 개념은 우리가 흔히 아는 상속자의 개념과 다르다. 그는 상속자를 이렇게 정의한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17).

 

오늘날 우리에게 성령강림절이란 무엇인가? 대략 2천년 전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신비한 사건인가? 너무 오래 전에 일어난 사건이라 우리에게 전혀 영향을 못 끼치는 사건인가?

 

우리가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서 살펴 보았듯이, 오순절에 성령을 경험한 이들은 모두 새 술에 취한 것처럼기쁨과 담대함으로 복음을 전했다. 성령강림 사건은 그들의 인생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그들은 성령강림 사건을 경험한 뒤, 예수의 부활승천을 확증했으며, 다른 그 무엇이 아닌 바로 부활승천 하신 예수가 주님이라는 것을 소리 높여 외쳤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가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았다.

 

우리는 성령강림을 경험했는가? 우리는 성령강림사건을 당했는가? 성령강림사건을 강 건너 불구경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것은 교통사고 당하지 않았는데, 절뚝거리며 교통사고 당한 것처럼 사기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아이를 낳지 않았는데, 모조아기인형을 등에 업고 다니며 아기 낳은 것처럼 거짓말 시키는 것과 같다.

 

성령강림사건을 당하면, 실로 영의 사람이 된다. 육의 사람에서 우리의 존재가 완전히 영의 사람으로 바뀐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다는 뜻이다. 이 말을 들으면서, 여전히, 패리스 힐튼처럼 힐튼 가의 상속자나 되었으면 좋겠다, 또는 이재용 씨처럼 이건희 회장의 상속자, 삼성 가의 상속자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분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성령강림사건을 당하지 않아서, 성령을 받아 영의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일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어린 아이일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성인이 되어 모두 쓸모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어린 아이일 때는 장난감이나 인형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에 목숨을 맨다. 그거 없어지면 하루종일 우울해 하고 눈물 흘린다그러나, 성인이 된 여러분 중에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아직도 그리워하고 찾는 분이 있는가?

 

오늘은 성령강림절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육의 사람인가, 영의 사람인가? 성령을 충만하게 받았는가? 아니면 성령에 관심도 없는가?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에도 참여하고 있는가? 우리는 자기가 주님이라고 우리를 강력하게 유혹하는 가짜 주님의 유혹을 물리치고, 부활승천 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주님이라고 고백하며, 그분을 따라 살고 있는가? 우리의 소망은 어디에 있는가? 돈 많이 버는 데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는가? 이 말씀을 다시 선포하는 것으로 설교를 마친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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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