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16. 8. 5. 11:04

기독교인들이 어떠한 사건(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을 바라보는 시선은 매우 '목적지향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를 빌리자면, '텔로스Telos'적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모두 어떠한 목적을 향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은 '하나님의 뜻'일 것이다. 그런데, 모든 것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왠지 기독교인들을 편집증 환자처럼 보이게 할 때가 많다.

 

편집증 환자는 모든 것을 하나의 의미로 집요하게 환원시키기 때문에 그는 가학적인 괴로움 속에서 죽어간다. 목적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 어떠한 괴로운 일이 일어나도 그것을 참고 견뎌내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기독교인들 중에는 이렇게 가학적인 괴로움 속에서 죽어가는 편집증 증세를 일으키는 환자가 많다.

 

하나님의 영, 즉 프뉴마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른다. 여기에는 그 어떤 '목적성'을 찾아볼 수 없다. 하나님에게 창조의 목적이 있었는가? 우리는 ''를 묻지만, 어쩌면 하나님은 ''를 묻는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실지 모른다. '놀이'는 목적이 없다. 놀이의 개념으로 창조를 이해하면, 창조에는 목적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목적이 없다'는 말을 견디지 못하는 기독교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목적이 없다는 것을 허무해 한다. 그런데, 다시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면, 목적만큼 허무한 것도 없다. 목적을 이루었을 때, 그 허무함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오히려 목적이 없는 것이 우리의 삶에 자유로운 날개를 달아준다.

 

모든 것이 하나의 완고한 의미로 환원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이미 삶의 의미를 상실한 편집증 환자일 수 있다. '텔로스'로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려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목적이 이끄는 삶의 시대는 저물었다. 목적이 내 삶을 이끌게 끔 놓아두는 삶, 얼마나 밍밍한가. 그냥 놓아두자. 프뉴마와 함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신비에 빠져보자. 신난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