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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 오디세이 I2014. 5. 25. 03:33

기드온 이야기가 주는 교훈

(사사기 9:46-57)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기드온 집안의 최후가 그려진 곳입니다. 요담의 저주, 즉 가시나무(아비멜렉)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은 세겜의 멸망과 결국 세겜으로부터 배신 당해 죽게 될 아비멜렉의 운명을 저주가 그대로 실현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드온은 므낫세 지파 사람으로 자기 자신을 소개하기를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6:15) 라고 합니다. 이렇게 자신감 없었던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는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 치듯 하리라라는 말씀으로 위로해 주시며 사사로 들어 쓰십니다.

 

기드온은 성격이 꽤나 소심했던 터라, 자신의 소명을 확인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양털 시험을 통하여 확신을 얻습니다. 그리고 300명의 군사만을 데리고 나가 미디안 진영을 무너뜨리는 혁혁한 공을 세웁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자기 자신을 지극히 작은 자라고 고백한 것만큼 겸손하지는 못했습니다. 싸움터에 나서면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들어내야 할 순간에 슬쩍 자기 자신을 끼어 넣었습니다. 미디안을 공격할 때 외쳤던 구호가 그것을 말해 줍니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7:20). 사실 여호와의 칼이다!”로 충분한 구호였지만, 기드온은 여호와 곁에 자기 자신을 슬쩍 집어 넣은 것이죠.

 

기드온은 소심한 성격 탓에 자기의 욕망조차 대놓고 드러내지 못하고 살짝 숨기는 유형의 사람이었습니다. 미디안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뒤, 왕이 되어 달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탁을 겉으로는 거절하는 듯 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왕의 행세를 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기드온은 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8:23). 그러나 기드온은 백성들에게 왕이나 할 수 있는 요청을 합니다. 즉 미디안 전쟁에서 전리품으로 탈취한 것 중에서 금 귀고리와 초승달 장식들과 패물 그리고 미디안 왕들이 입었던 자색 옷 등을 자신에게 달라고 합니다. 특별히 금 귀고리는 천칠백 세겔(20kg)이나 걷혔습니다. 기드온은 그것을 가지고 에봇을 만들어 자신의 고향 집에 두었는데, 성경은 그 사건을 두고 이렇게 평가합니다. “기드온이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8:27).

 

기드온이 만약 정말로 왕이 될 마음이 없고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왕이라는 신앙고백 위에 굳건하게 섰다면, 그는 백성들에게 여러 가지 전리품을 요청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재물은 곧 그 사람의 마음입니다. 왕이나 요구할 수 있었던 전리품을 요구한 기드온은 속으로 자기 자신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것은 그가 자식이 많았고(70), 그 중에서 아비멜렉이라는 이름의 아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드러납니다. 아비멜렉의 뜻은 나의 아버지는 왕이시다라는 의미입니다. 아들의 이름을 통해서 자기 마음을 드러낸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백성들이 기드온의 에봇을 음란하게 위했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고 기드온에게로 향해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 백성의 진정한 지도자는 백성들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손가락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그런 점에 있어서 철저하게 실패한 것이죠. 기드온은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게 한 것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기드온의 죽음 이후 보인 백성들의 행보입니다. “기드온이 이미 죽으매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서서 바알들을 따라가 음행하였으며 또 바알브릿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고 이스라엘 자손이 주위의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 자기들을 건져내신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아니하며 또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이 이스라엘에 베푼 모든 은혜를 따라 그의 집을 후대하지도 아니하였더라”(8:33-35).

 

기드온이 죽자 백성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우상숭배에 빠지고, 기드온의 집안을 기억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러한 백성들의 행보에 섭섭한 마음이 들었는지, 기드온의 아들 중 아비멜렉이 잃어가는 집안의 권력을 되찾으려고 일어섭니다. 그런데 그 행보가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첩의 자식이었는데, 세겜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세겜으로가 세겜 사람들에게 정으로 호소한 뒤 기드온의 여러 자식 중 세겜 출인인 자기가 왕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설득합니다.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은 뒤, 그와 함께 기드온의 아들들, 자그마치 70명이나 되는 아들들은 모두 도륙합니다.

 

그런데 70명의 아들 중 막내 요담이 가까스로 살아남아 몸을 숨기고 있다가, 그리심 산 꼭대기에 올라 자신의 형제들을 무참하게 살해한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에게 저주를 퍼 붓습니다. 저주의 요점은 결국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이 서로 원수가 되어 서로를 죽이게 될 거라는 것입니다. 과연 그의 저주대로 될까요?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저주한다고 해도, 그 저주가 무슨 효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복을 내리시고 저주를 내리시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몫입니다. 우리는 복을 빌 뿐이며, 때로는 서운한 마음을 표출할 뿐입니다. 사실 우리는 그저 서로 용서하고 용납하고 최선을 다해 사랑하며 살면 됩니다.

 

결과적으로 요담의 저주는 그대로 실행되는데, 그것은 요담의 저주 자체가 무슨 효력을 가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다음의 말씀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9:23). 요담의 저주는 사실 한풀이에 불과합니다. 그런 한풀이가 효력을 발휘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을 심판하셨기 때문입니다. 요담의 저주는 뜻하지 않게, 하나님께 쓰임 받은 것뿐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요담의 저주가 이루어지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세겜 망대의 엘브릿 신전 학살 사건이라 부를 수 있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자기를 배반한 세겜 사람들을 응징하기 위해서 아비멜렉은 잔인한 행동을 합니다. 세겜 망대에 모인 사람들을 도륙하기 위해서 아비멜렉은 나무를 베어 가지고 가서, 망대 주위에 나무를 펼쳐 놓은 뒤 거기에 불을 붙여 망대 안에 숨은 세겜 사람들을 불태워 죽입니다. 자그마치 남녀 천 명이 불에 타 죽습니다.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 세겜 사람과 밀로의 집을 사를 것이라는 요담의 저주가 실현됩니다.

 

세겜을 멸망시킨 아비멜렉은 내친김에 영토확장을 위해 데베스라는 도시를 점령합니다. 데베스 사람들은 아비멜렉에 저항하기 위해 데베스 망대로 몸을 숨깁니다. 아비멜렉은 세겜 망대 때와 같은 작전을 펼치기 위해 나무를 가져다가 데베스 망대를 불사르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 줄 복선이 있습니다. “아비멜렉이 망대 앞에 이르러 공격하며 망대의 문에 가까이 나아가서 그것을 불 사려러고 하더니…”(9:52). 세겜 망대 때와 같은 작전이지만, 분위기가 다릅니다. “가까이 나아가서는 어두침침한 비극의 복선을 담고 있는 문장입니다. 바로 그때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합니다. 데베스 망대를 불태우려고 망대에 가까이 다가선 아비멜렉의 머리 위로 맷돌 위짝이 떨어진 것입니다. 그 맷돌 위짝을 아비멜렉에게 던진 자는 다름 아닌 한 여인이었습니다. 매우 허망한 순간입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승승장구하던 아비멜렉이 한 순간에 무너집니다. 그것도 한 여인에게.

 

아비멜렉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믿을 수 없는 듯, 자신의 무기를 맡은 청년에게 어서 칼을 빼어 자신을 죽이라고 합니다. 적어도 자신의 죽음이 사람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비멜렉은 세상을 뜹니다. 그리고 후대 사람들은 그의 바람과는 달리 아비멜렉의 터무니없는 비극적 최후를 입에 올리며 마구 비웃습니다. “여룹베셋의 아들 아비멜렉을 쳐죽인 자가 누구냐 여인 하나가 성에서 맷돌 위짝을 그 위에 던지매 그가 데벳스에서 죽지 아니하였느냐”(삼하 11:21). 이렇게 여인이 던진 맷돌 위짝에 아비멜렉이 죽었다는 불명예스러운 사실이 후대에 전해집니다. 요담의 저주처럼, 세겜에서 나와 아비멜렉을 살랐던 불(에쉬)는 여자(이샤)였습니다.

 

기드온은 소심한 성격 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감추며 살았지만, 결국 그의 아들 아비멜렉이 그 욕망을 분출합니다. 아비멜렉은 과도한 욕망의 소유자였습니다. 정치적 욕심은 사람들을 소유하고 지배하며 그들의 추앙을 받고 싶은 허영심을 불러옵니다. 결국 아비멜렉에게 욕망이 우상이 된 것인데, 우상숭배의 결말은 언제나 비극적입니다.

 

이 상황을 잘 나타내주는 말씀이 예레미야서에 있습니다.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17:5). 기드온의 집안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큰 일을 행한 뒤 큰 영광을 받았지만 결국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나살다가 결국 이렇게 패가망신을 당하고 맙니다.

 

예레미야 말씀은 여호와를 떠나 사는 사람들의 삶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17:6).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여호와에게 마음을 두고 사는 자들의 삶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17:7-8).

 

예레미야 179절의 말씀처럼, 아비멜렉은 심히 부패한 마음을 드러내 놓고 살다가 패가망신합니다.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는 말씀처럼, 아비멜렉은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고 살다가 결국 어리석은 자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 상태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쉽게 부패하는 우리의 마음에 빛과 소금인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뿌리며 살아야 합니다.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라는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기드온의 이야기를 통해서 너무도 극명하게 드러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의 결단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두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삶을 복되게 합니다. 믿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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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