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27'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4.07.27 오래된 기도
바이블 오디세이 I2014. 7. 27. 22:49

오래된 기도

(마태복음 6:5-13)

 

본문에는 예수의 산상수훈 중 기도에 대한 가르침이 나와 있다. 예수의 기도에 대한 가르침 중 눈에 띄는 단어는 은밀함이다. 기도는 은밀해야 하는가? 기도를 은밀하게 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예수께서는 은밀한 기도와 대조되는 외식하는 자들의 기도에 대해서 말한다. 외식하는 자들의 기도의 특징은 사람에게 보이려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외식하는 자들의 기도를 경계하시며, 은밀한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6).

 

기도할 수 있는 골방을 만들어 기도할 때마다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면 은밀한 기도가 되는가? 도대체 은밀한 기도란 무엇인가? 외식하는 자들의 기도와 더불어 예수께서 경계하시는 기도는 이방인처럼 중언부언하는 기도이다. 중언부언의 특징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이다. 미사여구를 잔뜩 집어 넣어 기도를 위한 기도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외식하는 자들의 기도나 이방인의 중언부언하는 기도나 알맹이는 없고 형식과 자기 자랑만 있는 기도를 경계하시며 은밀한 기도 할 것을 주문하신다.

 

외식하는 자들의 기도와 중언부언하는 기도와 견주어 볼 때 은밀한 기도란 핵심을 찌르는, 그리고 친밀한, 그리고 집중된 기도를 말한다. 형식에 치우친 기도가 아니고 외적인 모습에 치우친 기도가 아니고, 아빠되시는 하나님과 참된 사귐 안에서 하는 기도를 말한다. 그러니까 기도는 근본적으로 관계성이 근본이라는 뜻이다. 아빠되시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없는 기도를 경계하시는 것이다. ‘은밀한이란 바로 그러한 것을 담고 있는 메타포이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기도는 외식하는 자들의 기도와 중언부언하는 이방인들의 기도가 된다. 당연하지 아니한가? 하나님에게 관심 없는 자들의 기도는 형식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고,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두는 이기적인 기도가 될 수 밖에 없다. 아버지와 전혀 친밀한 관계를 맺지 않은 자녀가 자기의 필요에 따라 아버지에게 용돈을 요구하는 것을 상상해 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있는 자녀는 아버지의 마음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아버지가 자기의 필요만 채워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예수께서는 외식하는 자들의 기도와 중언부언하는 이방인의 기도를 경계하시며, 은밀한 기도,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하는 기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본보기를 보여주신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예배 시간마다 외우는 주기도문이다.

 

주기도문은 어떠한 주문이 아니다. 주기도문을 주문처럼 외우는 사람도 있다. 물론 절박한 상황에서 어떠한 기도를 드려야 할지 모를 때, 그리고 전혀 말이 나오지 않을 때 주기도문을 통해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러나, 주기도문 자체에 무슨 특별한 효능이 있는 듯 주문 외우듯이 주기도문을 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주기도문의 특징은 먼저 하나님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해 놓고 계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9-10).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진정한 관심을 둔 자,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맺어진 자는 하나님의 이 뜻을 절대로 간과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임하는 것을 기뻐하고 그것을 위해서 헌신한다.

 

기도를 가르치시는 예수의 삶 자체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삶이었다. ,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 위에 오게 하시는 일에 헌신하셨다. 그 일을 하시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를 이 땅 위에 오게 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세상이 하나님 나라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자기 왕국을 세우고 싶어한다. 이것은 세상뿐만이 아니라, 각자의 삶 속에서도 꿈틀대는 현상이다.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자기 왕국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자들은 자기 왕국을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이 땅 위에 임하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헌신할 줄 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소박함을 지닌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11-13).

 

일용할 양식에 대한 간구와 용서에 대한 실천, 그리고 악에 대한 경계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갖는 소박한 마음이다. 하나님 나라가 오는 것을 거부하고 자기 왕국을 세우고자 하는 마음 자체가 탐욕이다. 탐욕적인 인간은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축적하고자 한다. 탐욕은 필경 죄악을 낳는다. 죄악 중에서도 가장 추악한 살인을 낳는다. 자신의 탐욕을 위해서 생명을 앗아가는 일만큼 추악한 것은 없다. 살인, 강간, 강도, 유괴, 납치 등 강력 범죄로 분류되는 것들은 모두 남의 것을 탐하는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용서의 나라이다. 불의를 눈감아주는 용서가 아니라, 불의를 용서하는 방식으로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다. 용서는 불의에 대한 눈감아 줌이 아니다. 용서는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이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도록 공간을 열어주는 행위이고, 자신의 부끄러움을 발견하고 다시는 불의한 행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이끌어주는 사랑의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용서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행위 중 가장 지혜로운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 지혜를 십자가에서 본다. 바울 사도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유대인에게 십자가는 거리끼는 것이고, 이방인에게 십자가는 미련한 것이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는 결국 하나님의 참된 지혜이다. 십자가는 용서인데, 십자가를 온전히 바라보는 자들은 거기에서 무한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다시는 자기 왕국을 세우기 위해서 탐욕스러운 마음을 드러내거나 생명을 헤치는 일을 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참된 지혜인 십자가를 붙들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게 된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라는 기도는 인간의 한계를 정직하게 인정하는 겸손함이 베어 있다. 우리는 시험에 든다. 여기에서의 시험은 유혹을 말한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받았던 유혹 같은 것을 말한다. 예수께서 사탄에게 광야에서 받았던 유혹 같은 것을 말한다. 그 유혹은 하나님 나라를 버리고 자기 왕국을 세우라는 매우 매력적인 유혹이다. 그래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 유혹에 넘어간다. 하루에도 수도 없이 하나님 나라를 등진다.

 

그리고 우리는 에 대해서 무력하다. 우리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생명을 제한하고 결국 빼앗아가는 악이 우리가 사는 현실 세상에는 모레알처럼 널려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질병과 죽음이다.

 

최근 한국의 연예인 유채영 씨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다가온 질병, 그리고 죽음을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었던 유채영 씨는 결국 죽음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온 질병, 죽음 앞에서 무엇 하나 제대로 해 줄 수 없어서 속만 태우던 가족과 친구들은 허망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냈다. 다음은 사랑하는 딸을 보내고 사랑하는 딸에게 쓴 유채영 씨의 엄마의 편지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우리 딸에게. 채영아 사랑해. 이 현실이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어 꿈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마지막 순간까지 병마에 시달려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사랑하는 사람 곁 떠나기 싫어하던 모습 생각하면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진다. 너랑 같이 떠나고픈 마음이다. 아빠 없이 너와 함께했는데 나 혼자 남았구나. 정해진 운명의 날이 있는 줄 알았다면 더 많은 시간과 사랑과 행복을 나눴을 텐데 너무 안타깝다. 먼 훗날 우리가 다시 만나면 그 때는 우리 행복하게 잘 살자. 엄마가.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유혹과 악으로부터 지켜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의 인생은 나의 계획과는 상관 없이, 어느 때든지 유혹과 악을 통해서 내가 꿈꾸던 삶과는 다른 곳으로 어리석고 비참하게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유혹과 악에 너무도 무력한 인간이지만,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으로 들어간 하나님의 자녀는 유혹과 악으로 인해 멸망 받지 않고, ‘유혹과 악으로부터 구원 받는다.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 혼란스럽다. 도무지 하나님 나라를 찾아볼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계속되는 비행기 사고로 인해 수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고,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그리고 미국과 러시아의 외교군사적 신경전, 또한 한국에서 일어난 세월호 사건 등을 생각하면 가슴이 탁 막힐 지경이다. 이 땅에 참된 평화가 어디 있고, 정의가 도대체 있기는 한 것일까 의문이 든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간구하고, 그 나라가 이 땅 위에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헌신하는 하나님의 자녀는 일상에 매몰되어서 현재 인간의 평화와 생명을 위협하는 일련의 일들을 남몰라라 할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하여 그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해야 한다.

 

기도는 일상에 묻히지 않고, 자신의 일상을 구원하는 것이다. 기도는 나의 경건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 주변 세계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는 우리의 일상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기도는 뭔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기도 자체가 일상이 되어야 한다. 다음 기도문은 기도가 어떻게 우리의 일상에 파고 들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을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_이문재, 「오래된 기도」 전문, 『지금 여기가 맨 앞』

 

주님께서는 우리가 일상에 매몰되어 하나님 나라를 잃어버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심으로, 일상이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 위에 임하기를 바라며 그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도록 부름 받았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통하여 일상이 하나님 나라로 승화되도록 은밀한 기도, 친밀한 기도, 소박한 기도, 경건의 모양만 있는 기도가 아니라 삶을 실제로 바꾸는 능력의 기도, 오래된 기도를 쉬지 않고 해야 한다.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http://www.youtube.com/watch?v=mdZ6yMN109M

 

www.columbuskmc.org

 

 

'바이블 오디세이 I'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삭과 리브가에 대한 진실  (0) 2014.08.14
미스바 대성회  (0) 2014.08.08
가정의 기쁨  (0) 2014.07.21
다투지 않고 번성하는 법  (0) 2014.07.17
고통의 문제  (0) 2014.07.14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