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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 오디세이 I2014. 9. 4. 05:02

은혜는 은혜다

창세기 33

(창세기 28:1-9)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에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26:34-35).

 

이삭과 리브가는 에서가 가나안 여인들과 결혼한 것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축복 쟁탈전을 한 바탕 치르고 야곱에 대한 에서의 복수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리브가는 이삭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며 야곱을 피신시킨다. “내가 헷 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내 삶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 I am tired of living because of the daughters of Heth; if Jacob takes a wife from the daughters of Heth, like these, from the daughters of the land, what good will my life be to me?”(27:46).

 

리브가는 야곱을 형 에서의 복수로부터 피신시키기 위해 다시 한 번 속임수를 쓴다. 물론 리브가가 며느리들 때문에 삶에 낙이 없다고 말한 것이 거짓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빌미 삼아 야곱을 멀리 떠나가게 한 것은 속임수였다. 야곱을 에서에게서 멀리 떨어뜨리려는 술수였다. 그런데 이삭도 리브가처럼 며느리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리브가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야곱을 불러 이 땅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외조부와 외삼촌이 살고 있는 밧단아람에 가서 아내를 맞이하라고 당부하며 그를 떠나 보낸다.

 

이삭은 작은 아들 야곱을 떠나 보내면서 축복을 베푼다. 그런데 그 축복 내용을 보면 원래 야곱이 받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속임수에 의해서 야곱이 이삭으로부터 받은 축복은 원래 에서를 위한 것이었다. 거기에는 보편적인 현실의 복이 담겨 있는 반면에, 이제 고향을 떠나면서 야곱이 받는 복은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 즉 후손과 땅의 소유권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복이 담겨 있다. 사실 야곱과 리브가가 관심을 갖고 주의를 기울였어야 하는 복은 바로 이 복이었다.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내렸던 하나님의 특별한 복 말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목해서 봐야 할 장면이다. 우리는 복 받기 원하지만 사실상 우리가 관심을 갖는 복은 하늘의 복이 아니라 이 땅의 복이다. ,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내렸던 하나님의 특별한 복, 하늘 나라의 복을 사모하기 보다, 오히려 이 땅에서의 보편적인 현실의 복을 추구한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의 삶을 자꾸 어렵게 만든다.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신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야곱은 선택 받은 자녀였다. 그는 형 에서처럼 이 땅에서의 보편적인 현실의 복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거였다. 선택 받은 야곱이 추구해야 하는 복은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에게 내렸던 하나님의 특별한 복이었어야 했다. 그런데 야곱과 리브가는 엉뚱한 것을 탐냈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가족 관계가 어그러지고, 어려움을 겪게 되지 않았는가?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신학적 관점과 구약성경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리스도인은 선택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이다. 그리고 기독론과 교회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형제요, 새 이스라엘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하늘의 복은 세상 사람들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한 확실한 자의식이 부족하다 보니, 결국 우리가 추구하는 복은 야곱과 리브가가 추구했던 것처럼 에서의 복, 즉 이 땅에서의 보편적인 현실의 복만 가로채려 드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형제요, 새 이스라엘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을 사모해야 한다. 그것은 마태복음 5장에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복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마태복음의 말씀을 그대로 옮겨 본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3-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태복음 7:12)

 

특별히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가 평소에 추구하는 복과 여기서 제시되고 있는 복 있는 자들의 모습은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야곱과 리브가처럼 헛된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다름 없다. 우리는 에서에게 내려질 것을 어떻게 해서라고 빼앗으려 하는 욕심쟁이처럼 보일 때가 많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보편적인 현실의 복은 그들이 그냥 받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이 받는 보편적인 현실의 복은 굳이 빌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더해 주신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

 

야곱은 이제서야 자신이 빌고 받아야 할 복이 무엇인지 알았고, 아버지 이삭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허락되었던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3-4).

 

에서는 저만치 서서 아버지 이삭이 동생 야곱에게 축복하는 장면을 모두 지켜 보았다. 에서는 그 장면을 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는 왜 저렇게 아버지로부터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여 아버지로부터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 참으로 처량하고 애처로운 장면이다. 살면서 이런 경험과 똑 같은 감정을 느낀 분도 있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인정에 대한 욕구가 있다. 인정 받고 싶어 하는 욕구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 인정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자식이 부모로부터 인정 받고 싶은 마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문제는 형제들로부터 비교되기 시작하면서 받는 인정에 대한 욕구 불만이다.

 

요즘에는 자식을 많이 낳지 않는 세대고, 형제와 비교되며 자라는 것이 드물기 때문에 가정에서 이러한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오히려 이러한 현상이 더 큰 문제를 낳는 것 같기도 하다. 형제와 비교되지는 않지만, 남의 자녀와 비교 되기 때문이다. 형제와 비교되면 물로 그것도 마음 아픈 상처로 남지만 그래도 그것이 큰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정도는 아니다(물론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정도로 발전되는 경우도 있다.) 남의 자녀와 비교되는 것은 자녀에게도 곤욕이고 부모에게도 곤욕이다. 남에게 뒤지지 않는 자녀를 만들려고부모는 자녀를 닦달하고 자녀는 그 닦달에 인생이 피곤해 진다. 자녀 또한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는 욕심에 부모를 닦달한다. 친구가 좋은 옷을 입으면 자신도 입어야 하고, 친구가 비싼 학원에 다니면 자신도 다녀야 하고, 친구가 어학 연수를 하면 자신도 어학 연수를 해야 한다. 그 비용을 모두 부모가 감당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요즘 부모는 인생이 없다. 자녀들도 인생이 없다. 모두 인생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에서는 자신이 아버지에게 축복 받지 못한 원인을 자신의 결혼에서 찾았다. 에서에게는 그 말만 들리고 그것만 보였다. 물론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할 때 에서가 봤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어야 한다. 그런데 에서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것이 에서의 한계였다. 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현실적인 문제만 봤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을 보자.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맞이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 하였고”(6). 그리고 자신이 본 것에 근거해서 자기 자신을 돌아 보았을 때 이것이 보였다.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8).

 

이처럼 에서가 본 것은 매우 육적인 것이었다. 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보지 못했다. 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이 야곱에게 임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이것은 또 다른 비극을 낳는다. 에서는 자신이 본 것에 근거해서 다음과 같은 행동을 한다.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라”(9). 에서는 부모님의 친척과 결혼하는 것이 부모님의 호의를 얻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참으로 안타깝고 애처로운 장면이다.

 

이스마엘이 누구인가? 물론 이스마엘은 아버지 이삭의 형이었다. , 자신의 삼촌이었다. 그리고 이스마엘도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후손이었다. 그러나 그는 약속의 아들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신학적 측면에서, 이스마엘은 선택 받은 자손이 아니었다. 그런데, 에서는 그것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그저 부모님의 친척과 결혼하기만 하면 부모님의 호의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스마엘의 후손이며 자신의 동족인 마할랏과 결혼한다.

 

은혜는 은혜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이해 가고, 그것으로 인해 헛된 욕망을 저버릴 수 있다. 야곱이나 에서나 모두 이 점에서는 부족했다. 야곱도 자신에게 임할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헛된 방법으로 축복을 차지하려 했다. 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했다. 야곱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에게 임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렇게 분노를 살 것도, 부러움을 살 것도, 그리고 억울해 할 것도 아니다.

 

은혜는 그저 은혜일 뿐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일 뿐이다. 내가 무슨 행동을 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은혜를 받았다면 그저 감사하면 되고, 은혜를 받지 못했다면 그것도 감사할 뿐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복음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절망하거나 희망을 잃을 필요 없다. 왜냐하면 그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자들이 추구해야 할 복이 무엇인지 산상수훈의 말씀과 자신의 삶으로 보여 주셨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백성이지 이방인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자는 야곱처럼 에서처럼 이방인이 구하는 것들만 구하게 된다. 은혜를 은혜로 받지 못하고, 복을 쟁취하려 들고 하나님의 마음을 얻으려고 불필요한 행동을 하게 된다.

 

은혜는 은혜다. 은혜를 은혜로 받을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보편적인 현실의 복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자녀로서 마땅히 추구해야 할 복을 사모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리스도에게 들었거든, 여러분도 가서 그와 같이 하라.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3-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태복음 7:12)

 

www.columbuskmc.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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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