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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 오디세이 I2014. 10. 2. 05:57

야곱의 결혼

창세기 35

(창세기 29:1-30)

 

야곱은 지팡이 하나 들고 집을 나섰다. 형 에서의 보복을 피해 하란 땅에 있는 외삼촌 집으로 피신 하는 중이다. 그가 걷는 길은 불안하다.

 

잃어버렸습니다 /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 두 손으로 주머니를 더듬어 / 길게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 길 우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 담 저 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윤동주 시 <> 전문)

 

야곱은 길을 걸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있는 길을 걸었다. 아침에 출발한 길은 저녁에 당도하고, 끝없이 걷다 멈춰선 곳에 놓여 있는 돌 하나를 베개 삼아 길 위에서 잠을 청했다. 야곱은 돌 베개를 베고 바로 누웠다. 하늘이 보였다. 하늘은 까맸다. 까만 밤 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별들은 눈에 부딪히는 순간 눈물로 변했다. 벌거벗긴 채 내몰린 한 마리 어린 짐승처럼 야곱은 울었다. 눈물로 자기 안에 있는 부끄러움이 씻어질 때까지 울었다. 그리고 잠 들었다.

 

야곱은 꿈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했다. 꿈 속에서 만난 하나님께서는 눈물로 깨끗이 씻겨진 야곱의 부끄러움을 가려주셨다. 아담과 하와의 부끄러움을 가려주셨듯이, 가인의 부끄러움을 가려주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부끄러움을 가려주셨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28:15).

 

야곱은 잠에서 깨어나 희망을 품고 길을 다시 걸었다. 모든 것을 잃어 버렸다는 생각 때문에 부끄러웠던 마음은 이제 희망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열심히 걸었다. 풀 한 포기 없는 척박한 땅을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며칠을 걸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야곱은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렀다.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렀다는 진술은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뒤 품게 된 희망과 맞닿아 있다. 야곱은 그 땅에 이르러 눈을 들어 주변을 자세히 보았다. 그가 그 땅에서 처음 발견한 것은 우물이었다. “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He looked and saw a well in the field)”(2). 성경에서우물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물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모두 새로운 사건이 전개되고, 하나님의 복이 발생한다. 야곱의 고된 여정 가운데 우물이 등장했다는 것은 이제 그가 인생에 있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는 뜻이고, 하나님의 복이 그의 인생 가운데 창조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우물과 관련된 중요한 일화들을 보자. 리브가도 이삭의 아내를 구하러 온 아브라함의 종을 우물가에서 만났고(24:16), 후에 십보라도 남편이 된 모세를 우물가에서 만났다(2:15-17). 우물은 하나님의 복의 상징이며, 생명을 공급받는 장소였다. 이렇듯, 야곱이 길을 걷다 우물을 만나게 됐다는 것은 이제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가 그의 인생 가운데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한다.

 

야곱은 우물을 만났다. 그는 우물에 가서 물 한 잔 얻어 먹으며 생기를 되찾았고, 우물을 들여다 보며 우물 속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 시 <자화상> 전문)

 

야곱은 우물 속에서 미워할 수 없는 한 사람을 발견한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우물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장소이다.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한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약속이 구체적으로 삶 속에 펼쳐진다는 것을 뜻한다. 야곱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약속은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에게 주셨던 것과 다르지 않다. 야곱은 고향 땅에서 부모님 곁을 떠나올 때 이러한 약속을 받았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28:3). 우물에서 무엇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질 것인가?

 

야곱은 우물에서 만난 동방 사람들에게 혹시 라반을 아냐고 묻는다. 자신들은 하란 땅에서 왔고 라반을 안다고 대답한다. 삼촌 라반의 안부를 물은 뒤, 이어지는 장면은 기적과 같다. 다름 아닌, 라반의 둘째 딸 라헬이 삼촌 라반의 양 떼들을 몰고 그가 서 있는 우물가로 오고 있었다. 우물에서 야곱과 라헬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야곱은 라헬이 몰고 온 양 떼에게 우물물을 먹이고, 자기의 신분을 밝힌 뒤, 라헬을 붙들고 운다. 그간의 서러움이 한꺼번에 터지는 순간이다.

 

야곱은 삼촌 라반을 만나 그간의 안부를 물은 뒤, 하란 땅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이 삶은 그가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길이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 오늘도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윤동주 시 <새로운 길> 전문)

 

야곱은 삼촌 라반의 집에서 한 달 동안 편안하게 지내다, 이제 본격적인 생활인으로서 그곳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말하라”(15). 결혼을 위해서는 지참금이 필요했던 시대에 살던 야곱은 부모님을 떠나 빈손으로 왔기 때문에 결혼을 위한 지참금이 없었다. 야곱은 결혼을 위해 지불해야 할 지참금을 자신의 노동력으로 대신하겠다는 제안을 한다.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18).

 

속임수로 남의 것을 빼앗기만 하며 살았던 야곱의 인생이 달라졌다. 야곱은 이제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하여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기 원했다. 고대 근동의 풍습을 기록하고 있는 누지 문서에 따르면 지참금은 대개 은 30-40 세겔 정도이다. 10 세겔은 목자의 1년 임금에 해당하므로,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7년을 봉사하겠다고 한 것은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하여 통상 지불해야 하는 지참금보다 많은 액수를 지불한 것이다.

 

쫓아오든 햇빛인데 / 지금 교회당 꼭대기 /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데 /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윤동주 시 <십자가> 전문)

 

우리 인생 가운데 요행은 없다. 하나님의 은혜만 있을 뿐이다. 속이고 빼앗는 것은 언젠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그 대가는 혹독하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가는 길은 힘들고 어렵더라도 그 열매가 달고 영광스럽다. 야곱은 이제 더 이상 속이는 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붙들고 가는 책임 있는 존재로 거듭났다. 요행을 바라며 가는 길과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걷는 길은 겉으로 보기에 같아 보이지만 차원이 다른 길이다. 험난하기는 마찬가지나 그 열매가 다르다. 길을 가며 통과하게 될 시간의 질이 다르다.

 

야곱은 이제 속이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담지한 자로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희망 가운데 살게 되었다. 그는 라헬을 아내로 맞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라헬을 위해, ‘모가리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흘렸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20).

 

칠 년을 며칠 같이 성실하게 일한 야곱에게 드디어 결혼식 하는 날이 다가 왔다. 야곱은 삼촌 라반과 맺은 계약대로 칠 년 동안 열심히 일했고, 이제 그의 권리를 행사한다.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21). 라반도 야곱의 요구를 묵살하지 않고, 사람들을 모아 잔치를 벌이며 결혼식을 거행한다. 잔치가 끝나고 밤이 왔다. 이제 야곱은 라헬에게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라반은 라헬 대신에 레아를 야곱에게로 들인다. 밤에 품었던 여인이 라헬이 아니라 레아라는 것을 아침에야 비로소 알게 된 야곱은 삼촌 라반에게 따진다.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25).

 

이 일을 놓고 야곱과 라반 사이에 주고 받은 말은 모두 야곱의 가슴을 후벼 팠다. 야곱이 라반에게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한 말은 자기 자신에 대한 책망으로 다가왔다. 자기 자신이 속이는 자였기 때문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을 갖게 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속이는 자는 달콤하지만, 속임을 당한 자는 쓰다. 야곱은 그 쓴 맛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라반은 야곱에게 이렇게 변명한다. “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26). 이 말은 형보다 앞서려 했던 야곱의 행적에 대한 고발로 작용했다. 야곱은 라반에게 더 이상 따져 들 수 없었다. 그래서 야곱은 삼촌 라반의 요구대로 칠 일 동안의 레아와의 결혼식을 마치고, 그 이후에 라헬을 아내로 맞이 한다. 또한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는 대가로 지불해야 할 지참금을 칠 년 동안의 노동으로 다시 지불한다.

 

야곱에게 있어 두 번째 칠 년은 단순한 지참금이 아니었다. 속이는 자로 살던 야곱이 이제 속임을 당하는 자로서 겪게 된 아픔 가운데, 지난 날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반성하고 그 대가를 지불하는 참회의 시간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참회록을 쓰지 않은 인생은 진정 거듭났다고 말할 수 없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 내 얼골이 남아 있는 것은 /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이기에 /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241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든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윤동주 시 <참회록> 전문)

 

이렇듯 야곱의 결혼은 참회의 시간이요, 참회로부터 맺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시간이었다. 야곱은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얻었고, 레아와 라헬은 실바와 빌하를 몸종으로 얻었다. 야곱의 참회와 라반의 속임수, 그리고 이 네 여인의 역동적인 인생이 하나님의 역사하심 가운데 무엇을 만들어 가게 될 지, 우물 들여다 보듯, 가만히 들여다 보자.

 

www.columbuskmc.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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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