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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24 바람 부는 날
  2. 2015.01.24 사람됨이 먼저다
시(詩)2015. 1. 24. 12:45

바람 부는 날

 

이름 없는 도시 번지 없는 집에

아무도 모르게 눈이 조금씩 퇴화되어 가는 새들이 산다

어쩌다 차려진 밥상엔

뱃고동 소리만 들리는 소라 게가 올라오고

하루에 반나절도 햇볕을 못 쐐

영양실조에 걸린 산나물이 노랗게 오그리고 있다

눈이 퇴화되면서 방향감각을 잃은 새들은

바람이 부는 날에만 산책을 나간다

바람은 그들의 네비게이션이다

가늘어진 날개를 펴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도 그들이 안간힘을 쓰며 날개를 펴는 이유는

남은 깃털을 바람에 날려 보내기 위함이다

바람 부는 날

우리는 새들이 나는 것은 볼 수 있어도

그들이 죽는 것은 볼 수 없다

바람 부는 날

바람이 새들을 건너는 것이 아니라

새들이 바람을 건너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이 세상과 이별하고 마는 것이다

바람 부는 날

우리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깃털은

희미하게 살다간 어떤 새의 마지막 눈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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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

사람됨이 먼저다

 

子曰, "弟子入則孝, 出則弟, 謹而信, 汎愛衆而親仁. 行有餘力, 則而學文"

자왈, "제자입즉효, 출즉제, 근이신, 범애증이친이. 행유여력, 즉이학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젊은이는 [집에] 들어오면 효도하고 [집을]떠나서는 우애로우며, 삼가고 믿음이 있으며 널리 대중을 아끼면서도 어진[] 사람을 가까이한다. [이것들을] 실천하고 남는 힘이 있으면 곧 글(학문)을 배운다."

 

무엇보다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공자님의 말씀이다. 공자의 인간론의 핵심은 인()인데, 이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 또는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람다움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것이다. 이것을 하지 못하면서 학문을 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목회하면서 가장 황당한 상황이 바로 이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스스로 믿음 좋은 신앙인이라 여기며 교회 봉사(주일성수, 헌금, 교회의 각종 행사 참여)를 열심히 하는 이를 만날 때이다.

 

한국 교회의 신앙은 '믿음 만능주의'에 빠져 있다. 무엇보다 '믿음'을 갖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사람됨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믿음'을 먼저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선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이 급선무이고, 나머지는 구원 받은 후에 해결해도 된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정녕 기독교인은 구원에 환장한 사람들인가? 그렇다면 소위 정통 기독교인들이 이단으로 정죄하고 있는 구원파의 논리와 무엇이 다른가? 플라톤의 개념을 빌려오자면, 이것은 구원을 너무 이원론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기독교의 교리가 헬라철학의 영향을 받아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기독교의 교리를 그 시대의 언어로 옮기기 위해 헬라철학을 빌려온 것일 뿐 그렇다고 헬라철학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기독교의 교리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헬라철학은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을 바탕으로 이원론적 사고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지만, 정작 성서의 사상은 이원론을 거부하고 전인적이고 종말론적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여기서 전인적이라는 말은 소위 육체와 영혼이 구분된다는 이원론적인 사고가 아니라, 육체와 영혼은 분리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종말론적이라는 말은 이미 완성된 것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성서는 예수에게서 일어난 부활을 통해서 그것을 나타내고 있는데, 부활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가 아니라, 오히려 육체와 영혼의 통합이다. 그리고 부활은 이 세상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활체를 향해 되어져가고 있음에 대한 비전(하나님의 계획)이다.

 

사람됨을 생각지 않는 믿음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다. 사람됨 없는 구원은 기독교의 구원이 아니다. 기독교의 믿음은 사람됨의 믿음이다. 기독교의 구원은 사람됨의 구원이다. 믿음을 통해 사람을 사랑하는 것,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것을 실현하지 않으려는 자는 공자님의 말씀처럼, 오히려 믿음을 갖지 않는 것이 좋다. 믿음이 먼저가 아니라, 사람됨이 먼저다. 왜냐하면 믿음은 사람됨에 대한 표지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자,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자를 믿음 있는 자라고 부르지, 믿음 있는 자가 곧 사람을 사랑하는 자,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자라고 하지 않는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 10:37). 이것이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구원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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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