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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 오디세이 I2015. 6. 25. 06:08

살리는 자

창세기 60

(창세기 47:13-26)

 

선친께서 살아 계실 때 손자, 손녀 이름 (형님의 아들, )을 지어주셨다. 아들의 이름을 요셉이라 지어주시고, 딸의 이름을 민지라 지어주셨다. 손자의 이름을 요셉이라 지어주시면서 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생각난다. “성경에서 요셉만큼 흠 없고 훌륭한 사람이 없더라.” 정말 그렇다. 요셉이란 인물은 보면 볼수록 신통 방통한 인물이다. 지혜로운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가!

 

어찌보면 요셉은 세상에서 가장 악독한 인물이 될 수도 있었다. 형들에게 버림받고 노예로 팔려가면서 복수의 칼날을 갈 수도 있었다. 보디발의 아내에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면서 복수의 칼날을 갈 수도 있었다. 술 맡은 관원장의 배신을 생각하면서 감옥에서 복수의 칼날을 갈 수도 있었다. 마치, <올드보이>의 주인공처럼.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로 생각했고, 자기 발전의 기회로 삼았다. 그리고 정말로 가장 어려운 때에 하나님의 약속을 지켜내는 구세주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렇게 크게 쓰임 받은 데에는 요셉의 개인적인 성품과 신앙도 어느 정도 작용했겠으나,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붙드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성품이나 신앙의 깊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붙드심이다. 우리가 가장 간절히 소망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붙드심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붙들린 바 되기를 소망하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어야 한다.

 

세상에 눈을 떠갈수록 깨달아지는 것은 이 험악한 세월을 헤쳐 나갈만한 지혜가 나에겐 부족하다는 것이다. 살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을 자기 자신만의 지혜로 온전히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상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내가 만나는 세상은 언제나 골리앗 같다. 그래서 주저 않고 싶은 마음을 가질 때가 많다.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를 때가 많다. 그렇다고 세상을 막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책임도 있고, 사회적인 지위와 책임도 있고, 무엇보다 한 번 주어진 생명, 인생을 허무하게 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요셉의 이야기는 이 험악한 세월을 어떻게 헤쳐나가면 되는지 가르쳐 준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게 무엇인지, 어떻게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인지 손에 잘 안 잡힌다. 어떻게 보면 무력해 보이고, 어떻게 보면 숙명론자가 되는 것 같고, 어떻게 보면 고통을 무조건 감내하는 메조키스트 같다. 사실,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이 되는 일은 하루 아침에 되는 일 같지는 않다. 그리고 아무리 내가 노력해도 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꼭 해내야 하는 일생일대의 최고 미션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왜냐하면, 그래야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살아남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애굽과 가나안 땅에 든 기근으로 인해 땅이 황폐하여져서 더 이상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식량문제는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이것보다 중요한 문제는 없다. 세상이 아무리 경제, 경제, 정치, 정치를 외쳐도, 경제와 정치는 곧 인간이 먹고 사는 문제를 정의롭게 잘 해결하는 데 기여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요즘엔 정치와 경제가 인간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쓰이고 있는 실정이지만, 원래 정치와 경제는 인간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인류 역사에 정치와 경제가 생겨난 이유는 정의로운 분배의 문제 때문이다. 무한대로 있는 게 아닌, 유한한 자원을 어떻게 인류가 정의롭게 나누어 쓸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 정치와 경제이다.

 

인류의 가장 큰 문제는 양극화 문제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 부자는 자신의 욕망을 극대화시키고 있고, 가난한 자는 생존자체에 위협을 받고 있다. 부자는 자신의 기득권을 지켜내기 위해서, 즉 유한한 자원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서 온갖 권모술수를 다 부리고 있고, 가난한 자들은 그들의 횡포 때문에 고통이 더욱더 가중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를 생산하는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정작 그들이 생산한 카카오가 그토록 맛있는 초콜릿의 원료라는 것 자체를 모른다. 한 마디로, 부자는 가난한 자의 피를 빨아 먹으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번영하고 있고, 가난한 자는 그들에게 피를 빨려 어지럼증에 시달리며 시름시름 죽어가고 있다.

 

요셉은 애초부터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자로서 다가올 기근에 대비하기 위해 바로 왕에 의해 온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로 세워진 인물이다. 사람의 진가는 어려울 때 발휘된다. 풍년 동안에 요셉의 진가는 그렇게 드러나지 않았다. 모두들 잘 먹고 잘 살았기 때문에 요셉이 하는 일에 대하여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요셉은 풍년의 때에 여느 사람들처럼 그 풍요로움을 소비하며 흥청망청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비전에 따라 흉년의 때를 대비하여 곡식을 창고에 차곡차곡 모아 들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7년 동안 풍년이 들지만 그 이후에 7년 동안 흉년이 들 거라는 꿈의 해석을 마음에 품고, 풍년의 때에 7년의 흉년을 견뎌낼 수 있도록 곡식을 저장해 두었다.

 

바로의 꿈을 통해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대로 7년의 풍년이 끝나고 7년의 흉년이 왔을 때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은 더 이상 곡물을 생산해내지 못하고, 저장해 둔 곡식마저 바닥을 드러냈다. 바로 그때 지난 날 이 때를 위하여 준비한 요셉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애굽 땅과 가나안 땅 주민들은 돈을 들고 요셉에게 양식을 구하러 온다. 요셉은 돈을 받고 양식을 판다. 그리고 그 돈을 바로의 궁으로 가져가 바로 왕을 부요케 만들어 준다. 돈이 다 떨어지자 백성들은 자신들의 가축을 요셉에게 끌고 와 양식으로 바꾸어 간다. 양식을 사는 데 가축마저 다 소비하자, 백성들은 자신들의 몸과 토지를 내어놓고 요셉에게서 양식을 사 간다.

 

이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결국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양식이다. 일용할 양식. 그러므로 일용할 양식만 있어도 우리는 살만한 것이다. 일용할 양식만 있어도 하나님께 감사드릴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일용할 양식에 대한 중요성을 망각하며 사는 시대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양 폄하하고, 그것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 있는 양 사람들을 부추긴다. 그것을 일컬어 소비심리라 한다. 그 소비심리가 지구환경을 얼마나 황폐화시키고 있는지 우리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소비심리에 따라 소비욕구만 채우려 든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이대로 나가다간 지구가 황폐해져 더 이상 이곳에서 살 수 없게 될지 모른다. 다른 그 무엇에 의한 멸망이 아닌, 바로 인간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고 있는 중이다. 양심 있는 과학자들은 말한다. 지구 멸망의 시간이 1분 남았다고.

 

요셉은 모든 토지를 양식과 바꾸어 사 들인 뒤 바로의 소유가 되게 한다. 그리고 토지개혁을 벌인다. 백성들에게 종자를 주고, 바로의 소유가 된 토지에서 경작을 하여 그 중 5분의 1은 바로에게 바치고, 나머지 5분의 4토지의 종자로도 삼고 너희 양식으로도 삼고 너희 가족과 어린 아이의 양식으로도 삼으라.고 한다(24). 백성들은 요셉의 이러한 토지개혁법을 반긴다. 그러며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25).

 

요셉은 정치와 경제의 진수를 보여준다. 요셉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들거나,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려 들거나, 원수를 갚은 데 쓰지 않는다. 요셉은 자신이 왜 그 자리에 있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한 번도 망각하지 않는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된 것은 요셉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요셉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펼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곧 나도 살고 남도 사는 참된 지혜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까지도 보살피시는 하나님의 지혜이다.

 

요셉은 자신을 거두어준 애굽 왕에게 충성한다. 자기를 부른 주인에게 충성하는 것은 종의 최고 가치이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전 4:2). 요셉은 참으로 충성된 일꾼이었다. 그것은 그만큼 요셉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강력했다는 뜻이다. 또한 요셉은 그 부르심에 대한 이해가 확실했다는 뜻이다. 믿음이란 부르심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고, 그 부르심을 바탕으로 한 충성이다. 부르심에 대한 인식과 그에 합당한 충성이 없다면, 그는 믿음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다.

 

요셉의 부르심에 대한 인식과 충성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우리는 오늘 이야기에서 명확하게 본다. 꼼짝없이 죽을 수 밖에 없을 뻔한 생명을 모두 살려내는 일을 한다. 사람들은 요셉에게 나아와 이렇게 말한다.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25). 그 어떤 은혜보다 생명을 건짐 받은 은혜는 가장 값지고 감사한 것이다. 생명을 건짐 받은 백성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바로의 종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비굴한 종이 아니라 기쁨의 종이 되겠다는 뜻이다. 이 종이라는 개념은 신약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사도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렇게 진술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2:5-8).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께서 자발적으로 종이 되신 이유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함이었다. 종은 주인의 뜻을 죽기까지 따르는 자이다.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나, 스스로 자기를 낮춰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죽기까지 따르는 참 종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사실 이것만 제대로 깨닫는다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죽기까지 준행하는 자발적인 종되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시대는 누군가의 종이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주인이 되어야 성공한 인생인 양 주인이 되도록 해주는 일이라면 영혼까지 팔아먹는 시대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밖에는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모든 피조물의 장자도 이렇게 자발적인 종이 되셨건만, 하물며 우리들이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보듯이, 종이 된다는 것은 비굴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죽기까지 순종하는 위치로 자신을 재배치하는 거룩한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발적인 종이 되셔서 십자가에 달려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으셨다. 그것으로 어떠한 일이 창조되었는가? 바로 생명이 창조되었다. 새로운 창조가 이 땅 위에 임했다. 이처럼 종이 되는 일은 비굴한 일을 만들어 내는 후퇴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생명을 창조해 내는 거룩한 일이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존귀한 자였지만,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는 인생의 질곡을 겪었다. 그는 이방 땅에서 모진 고통과 억압을 받았지만 결국 하나님에 의해서 높이 들림 받은 놋뱀과 같은 인물이 되었다. 그는 바로 왕의 종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지 않았으며, 종으로서 충성된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어 드리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다. 하나님은 결국 요셉을 통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요셉에게 주신 약속을 이루셨고, 그 일을 잘 감당한 요셉은 많은 생명을 살려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우리의 생명을 살리셨거늘, 우리가 어떻게 생명을 살리신 하나님의 종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은 비굴한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져 가는 하늘 밑에서 조용히 흘리기위함이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요셉처럼, 하나님 앞에서 자발적인 종이 되는 일은 살리는 자로 거듭나기 위한 새로운 창조의 사역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www.columbuskmc.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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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