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5.11.14 봄날은 간다
  2. 2015.11.11 에스겔서의 하나님
  3. 2015.11.01 비 오는 날의 도너츠
  4. 2015.11.01 지우개와 놀이
풍경과 이야기2015. 11. 14. 04:05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 – 참 슬픈 문장이다. 이 문장을 처음 세상에 내놓은 사람은 가수 백설희 씨이다. 그 이후, 이미자, 조용필, 나훈아, 장사익 씨 등이 리메이크해 불러 대중들에게 더욱더 알려진 노래이다.

 

봄날은 간다,는 역설적인 문장이다. 이 문장에는 한국전쟁 통에 봄날을 겪은 한() 맺힌 한국인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전쟁은 이렇게 비참한데, 여전히 봄날은 찬란한 역설적인 상황이 담겨 있다.

 

(비교적) 젊은 나는, 이영애와 유지태가 주연한 영화 <봄날은 간다, 2001년 작>를 통해 이 문장을 접했다. 사실, 그때만 해도 봄날은 간다의 문장보다는 이영애의 미모만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40대에 들어선 지금, 내게는 봄날은 간다의 문장만 눈에 들어온다. 문장의 발견이라고나 할까.

 

내 어린 시절, 이미자가 봄날은 간다를 부른 것을 TV에서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 제목이 기억나는 것이 아니라,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는 가사가 기억난다. 20대 후반, 젊음이 넘칠 때 본 <봄날은 간다>의 영화에서 기억나는 건, 영화 속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와 봄날은 간다의 그 시적인 표현만이 생각난다. 그런데, 지금은 봄날은 간다라는 문장이 슬프게 다가온다. 이 몹쓸 세상을 알아버린 탓일 거다. 세상의 이치에 나를 이입시킬 줄 알아버렸기 때문일 거다.

 

나는 어느 순간, ‘봄날이라는 보통명사에, ‘의 존재를 이입시킬 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봄날은 간다의 주어인 봄날가 된 것이다. 문장에서 주어는 어떤 서술어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뜻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런데, ‘봄날은 간다의 문장에서 주어인 봄날은 하필이면 간다라는 서술어를 만나서, 슬퍼졌다.

 

만약, 주어 봄날이 서술어 온다를 만났으면 그 분위기는 완전히 달려졌을 것이다. ‘봄날은 온다라는 문장은 더 이상 슬프지 않고, 희망적이다. 이처럼, 주어는 어떤 서술어를 만나냐에 따라서 운명이 좌우된다. ‘봄날이라는 주어 대신 겨울이라는 주어를 생각해 보자. ‘겨울은 간다.’ 이 문장에서 주어 겨울이 봄날은 간다의 문장에서와 같은 서술어를 만났지만, ‘겨울은 간다라는 문장은 봄날은 간다의 문장과는 다르게 슬프지 않고 오히려 희망적이다.

 

이 문장에서처럼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지는 것 같다. ‘봄날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간다의 서술어 같은 사람을 만나면 그 인생은 슬프다. ‘겨울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간다의 서술어 같은 사람을 만나면 그 인생은 희망적이다. 그러므로, 인생은 내가 어떠한 주어의 모습을 하고 살고 있느냐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주어인 내가 어떠한 서술어를 만났느냐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를 만나고 있는가. 만나면 따뜻해지는 서술어 같은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인생은 짧으니까. 봄날은 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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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
바이블 오디세이 II2015. 11. 11. 08:11

에스겔서의 하나님

 

에스겔이 그발 강가에서 본 환상은 매우 기괴하다. 그는 그가 본 것을 그의 인식의 범위 안에서 최대한 표현하려고 한다. 하나님을 수행하는 네 생물의 형상이며, 그 옆에서 함께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바퀴는 의 활동에 발맞춰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에스겔에게 하나님은 무너진 예루살렘과 성전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니시다. 만약 하나님이 그곳에 갇혀 계신 분이었다면, 하나님은 예루살렘과 성전이 무너질 때 함께 무너지고말았을 것이다. 제사장이었던 에스겔도 처음에는 하나님이 예루살렘과 성전에만 머무시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예루살렘과 성전이 무너졌을 때, 그 누구보다도 에스겔은 깊은 절망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절망이 깊을수록, 질문이 강렬해지고 응답이 간절해지는 법이다. 여호야긴과 함께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절망의 나날을 보내며 하루에도 수천 번 한숨과 함께 하늘을 올려다 보며 에스겔은 질문하고 또 질문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

 

절망은 죽음의 자리이기 보다, 오히려 희망의 자리이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임재는 언제나 삶의 판도를 바꾸어 놓는 기적 그 자체이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믿음의 선조들은 바로 그 절망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에스겔도 예외가 아니었다.

 

에스겔은 사방으로 자유롭게 방향을 전환하며 날쌔고 힘차게 움직이는 바퀴의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유성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어디 한 곳에 머무시며 갇혀 있는 존재가 아니라, 바람처럼 자유롭게 활동하시는 이시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형상을 가져 공간에 갇히는 물체성이 아니시다. 요한복음의 예수께서 증거하고 있듯이, 하나님의 영은 임의로 부는 바람과 같은 존재이시다.

 

에스겔서 1장에 등장하는 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의 루아흐로서, ‘바람, 정신, 의 의미를 갖고 있다. ‘루아흐는 창세기 2장의 창조설화에서도 등장하는데, 이렇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루아흐)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2:7).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뜻은 인간의 외형(appearance)이 하나님을 닮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루아흐가 인간 안에 임했다는 뜻이다. 인간은 그 누구도 제한하거나 손댈 수 없는 하나님의 영(루아흐)을 품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가장 행복할 때는 어디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자유성을 그 육체적 삶 안에서 마음껏 누릴 때이다. 이와는 반대로 인간이 가장 불행할 때는 형상을 가져 공간에 갇히는 물체성에 그 육체와 영을 내어줄 때이다.

 

인간의 죄성이란 이것을 뒤바꾸어 생각하는 어리석음이 아닐까? 현실에서 보는 인간은 행복을 찾는다고 하면서 자기 자신을 끊임 없이 형상을 가져 공간에 갇히는 물체성에 내어준다. , 외모, 학벌, 사회적 지위, 명예, 권력, 차별성 등등등. 인간은 끊임 없이 이러한 형상에 갇히려고 안달한다. 그러한 것에 자기 자신을 가두어 두지 않으면 좌절하고 절망하고 심지어 목숨을 내놓기도 한다. 이러한 것에 자기 자신을 가두어 달라고 끊임 없이 하나님께 매달린다(기도한다). 이러한 것에 자기를 가두어 주지 못하는 신은 하나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우리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영(루아흐)를 몸 속 깊은 곳에 간직한 인간인가, 아니면 영혼을 누군가에게 빼앗긴 죄의 노예인가?

 

하나님의 자유성을 체험한 에스겔은 비록 포로 신세가 되어 다시는 고향 땅을 밟아보지 못한 채 이방인의 땅에서 죽어갔지만, 그는 그곳에서 그 어느 것에도 자기 자신을 내어주지 않고 하나님의 자유성을 누리다 하나님의 품 안으로 돌아갔다. 그는 진정 하나님의 형상을 간직한 인간이었기에 절망의 상황에서도 무지개와 같은 희망 찬란한 삶을 살았다. 이 얼마나 아프지만 희망적인 인생의 드라마인가.

 

나도 인간이고 싶다. ‘형상을 가져 공간에 갇히는 물체성에 내 자신을 내어주는 일에 저항하는, 하나님의 자유성을 향유하는 바람 같은인간이고 싶다. 희망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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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
풍경과 이야기2015. 11. 1. 14:29

비 오는 날의 도너츠

 

1989년, 그때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그때 만들어진 영화 <비 오는 날의 수채와>는 아직도 내 가슴에 남아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정작 그 영화는 1990년 2월에 개봉했다. 그러니까 아마도 나는 그 영화를 고2가 되기 전 봄 방학에 봤거나, 고2가 되고 난 3월쯤에 봤던 것 같다. 날씨가 좀 쌀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그 영화를 함께 본 교회 누나(이문선)와 친구(오정환, 나의 죽마고우)의 두툼했던 옷차림도 기억난다. 교회 누나는 분명 바바리 코트를 입었었다. 그 영화를 본 장소는 종로에 있는, 그리고 단성사 앞에 있는 피카디리 영화관이었다.

 

<비 오는 날의 수채화>를 생각하면 단연 주제곡이 생각나고, 그 다음엔 혜성처럼 등장한 여배우 옥소리가 생각난다. 주제곡을 불렀던 세 사람(김현식, 강인원, 권인하) 중 김현식은 이미 고인이 되었고, 그 예쁘던 옥소리는 인생의 풍파를 겪고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소식조차 모르겠다.

 

비 오는 날이면, 사실 나에겐 <비 오는 날의 수채화>보다 한 발짝 먼저 생각나는 추억이 있다. 그것은 바로 비 오는 날의 도너츠이다. 이건 어떤 영화나 노래 제목이 아니다. 이건 비 오는 날 엄마가 만들어 주셨던 도너츠이다. 엄마는 비 오는 날이면 (물론 비 올때마다 그러신 건 아니지만), 가족들을 위해 도너츠를 만드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 비 오는 날의 도너츠는 그렇게 건강식품은 아니었다. 계란 반죽을 한 밀가루를 기름에 넣고 튀긴 도너츠였다. 그야말로 요즘 말로 불량식품이었다.

 

그러나 건강식품과 불량식품의 구분이 모호했던 그 시절, 그리고 먹거리가 풍성하지 않았던 그 시절, 엄마가 비 오는 날 해주신 도너츠, 일명 ‘비 오는 날의 도너츠’는 우리 형제에게 최고의 간식거리였다. 엄마가 해 주신 도너츠는 금방 동이 났다. 한창 자라고 있는 우리 형제가 게 눈 감추듯 먹어 버렸기 때문이다.

 

아내는 내가 어릴 때 그런 것을 먹어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거라고 우긴다. 사실, 나는 아내가 그런 얘기를 할 때마다 좀 서운하다. 물론 아내는 나의 건강이 걱정되어서 하는 소리이겠으나, 나에게 ‘비 오는 날의 도너츠’는 불량식품이 아니라 ‘엄마의 사랑’이다. 엄마의 사랑이 배어 있는 음식을 ‘불량식품’이라 말하는 것은 어쩐지 인간미가 없어 보인다. 물론 나는 지금 ‘인간미’보다 실질적인 건강식품을 먹어야 할 나이가 되었지만, 이제 팔순을 넘기신 엄마가 세상을 떠나시기 전 우리를 위해 ‘요리’를 해주신다면, 나는 다른 무엇보다 ‘비 오는 날의 도너츠’를 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

 

비가 온다. ‘비 오는 날의 수채화’를 들으며 ‘비 오는 날의 도너츠’를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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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
풍경과 이야기2015. 11. 1. 06:05

지우개와 놀이

 

어느 날 교회 주차장에 지우개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수요일만 되면 아이들은 수요 예배 때문에 교회에 오는데, 그때 교회에 오는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 밖에 없다. 예배 드리는 동안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공작활동도 하고 게임도 하고 공부도 한다. 그 시간을 위해 아이들은 집에서 쓰던 학용품들을 교회에 가져오는데, 다시 집으로 가지고 가는 과정에서 떨어뜨린 지우개인 것 같다.

 

지우개는 나의 중학교 1학년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그 당시 우리 학교(영동중학교)에서는 지우개 싸움이 유행이었다. 일명 지우개 레슬링인데, 지우개를 뾰족한 샤프 끝으로 조정하여 상대방 지우개에 세 번 먼저 걸치거나, 아니면 먼저 위로 올라타면 이기는 게임이었다. 나는 그 당시 우리 반에서 지우개 싸움을 제일 잘했다(사실, 진짜 싸움도 제일 잘했다.^^). 아무도 나의 적수가 없었다. 지우개 싸움을 꾀나 한다는 아이들이 매일 같이 나에게 도전했지만, 언제나 이겼다. 그때 지우개 싸움을 해서 따낸 지우개가 수 백 개에 이른다. 나는 지우개를 크기에 따라 별 하나에서 별 다섯 개까지 등급이 매겼었는데, 손바닥 만한 지우개도 있었다. 미국으로 유학 나온 이래로 그 많던 지우개의 행방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지만, 그 이전까지 그때 딴 지우개를 보관하고 있었다.

 

지금은 아이들이 지우개 싸움 같은 것을 하지 않지만 우리 어릴 적에는 그렇게 놀았다. 모든 것이 놀이 기구였다. 사실 지우개 싸움도 산업화 된 이후에 나온 신종 놀이였다. 그 이전에는 지우개가 귀해서 지우개 싸움 같은 것은 상상도 못했다. 지우개 구하기가 쉬워지고 값이 싸진 후에 지우개 싸움도 흥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주 어릴 적 가장 대중화되었던 놀이는 딱지치기와 구슬치기였다. 헌공책이나 잡지를 뜯어 만든 딱지로 서로의 딱지를 넘기며 놀았다. 구슬이 등장한 뒤, 딱지치기 보다 구슬치기가 더 유행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딱지치기나 구슬치기나 친구가 없으면 못 노는 그런 놀이였다.

 

놀이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와 같은 거였다. 지금은 아이들이 전자게임이나 온라인 게임을 주로 하기 때문에 친구가 없어도 혼자 놀이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놀이라기 보다 그냥 게임일 뿐이다. 놀이는 혼자서 하면 재미 없다. 친구가 있어야 재밌다.

 

호이징가의 이론에 의하면 인간은 처음부터 놀이하는 인간이었다. 인간은 놀이를 통해서 세상을 배우고 놀이를 통해서 사회적 관계를 배우면서 성장한다. 놀이는 그만큼 인간 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요소인 것이다.

 

나이 들어갈수록 놀이하는 게 쉽지 않다. 세상을 다 배웠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을 등져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놀이를 할 때만큼 기쁘고 즐겁고, 무엇보다 인간적인 시간이 언제 있었는가 싶기도 하다. 더 이상 놀이에 흥을 못 느끼는 인간은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오늘 집에 들어가면, 아이들과 지우개 싸움이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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