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5.12.19 부성애
  2. 2015.12.19 복지국가에서의 봉사란
  3. 2015.12.08 머리카락
  4. 2015.12.05 지구가 반대편으로 돈다면
  5. 2015.12.05 시론
풍경과 이야기2015. 12. 19. 05:10

부성애

 

많은 이들이 모성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나는 부성애 이야기 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살면서 모성애에 대한 감동과 그리움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다. 내가 부성애 이야기 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일단 아버지의 부재때문이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여전히 살아 계시기 때문에, 이 세상에 없는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것은 내게 있어 당연한 일이다. 아마도, 어머니가 세상을 뜨시고 나면 그때부터는 모성애에 대한 이야기도 팝콘처럼 내 마음에서 튀어나올 것이다. 그런 날을 생각하니, 그저 가슴만 시리다.

 

아이의 학년이 높아지니 아이의 숙제를 도울 일이 점점 많아진다. 며칠 전 큰 아이는 학교 프로젝트라며 큰 도화지에 ‘Three branches of government’(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를 나무 모양으로 그렸다. 그리고 각 부에 대한 설명을 그 아래에 달았다.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니 흐뭇해서, 나는 그것을 보며 아들을 격려해 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들은 자신의 프로젝트를 학교에 제출했다.

 

그런데 며칠 뒤, 아들이 받아온 프로젝트에 대한 점수는 충격적이었다. 38. 83점이 아닌 38.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 점수를 보며, 선생님의 노트를 읽어보았다. 이 프로젝트는 몇 주 전에 공지한 프로젝트이며, 또한 어떤 요소가 들어가야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안내문도 발송했으며, 심지어 아들은 하루 늦게 프로젝트를 제출했다는 노트였다. 그리고 어떤 요소가 빠져서 이런 점수를 받았는지, 거기에 하루 늦게 낸 것 때문에 점수가 더 깎인 것에 대한 안내를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우선 아들이 프로젝트에 대한 안내문을 엄마 또는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다는 게 화가 났고, 선생님이 이 아이의 부모인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 지를 떠올리니 부끄러웠다. 선생님은 분명 아이가 부모님에게 프로젝트에 대한 안내문을 보여주었을 거라고 생각할 텐데, 프로젝트를 엉망으로 해 갔으니, 우리를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당장 선생님에게 노트를 썼다. 우리 아이가 프로젝트에 대한 안내문을 보여주지 않아서 이런 상황에 처해진 거라고. 그리고 프로젝트를 다시 해가면 추가 점수를 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리고 다음 날 노트를 아이의 선생님에게 보냈다.

 

아이의 선생님은 친절한 답장을 보내왔다. 다시 해 와도 되고, 다시 해 오면 점수를 주겠노라고. 그래서 나는 아이와 함께 문방구에 가서 큰 보드를 사와 프로젝트를 다시 했다. 컴퓨터에서 자료를 찾아 컬러 프린터를 해서, 요구하는 요소에 따라 ‘Three branches of government’를 완성했다. 그리고 제출했다. 며칠 후, 아이는 다시 해 간 프로젝트로 100점을 받았노라며 좋아했다. 물론 그 점수가 고스란히 성적에 반영된 것은 아니었다. 선생님은 이미 해온 친구들과 똑 같은 점수는 줄 수 없다며, 원래 낙제한 프로젝트를 구제하는 수준에서 점수를 주겠다고 했다. 물론, 다시 해간 프로젝트 자체는 100점이라고 했다.

 

만약 내가 낙제점을 받아 온 아이를 혼내기만 하고 말았다면, 아이는 그냥 낙제점 받은 것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들을 너무도 사랑하는 아버지인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고, 아들을 낙제에서 구제해 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대처를 했고, 결국 바람대로 아들의 낙제를 면하게 해주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모두 우리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발벗고 나서 주셨다. 아들을 낳아서 키워보니, 아버지의 마음이 바로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싶다.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무슨 일이든지 기꺼이 도와주고 싶은 마음, 무엇이든지 노고를 마다하지 않는 마음, 자식이 잘 되면 기쁜 마음, 바로 이런 마음으로 아버지는 나를 위해 사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프로젝트를 100점 받아 기뻐하는 아들의 모습에서 내 모습이 보이고, 그것을 바라보며 흐뭇해 하는 나의 모습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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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

복지국가에서의 봉사란?


성탄절기를 맞아 양로원 봉사 가서 느낀 거지만, 복지국가에서는 특별히 개인이나 단체가 할 일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복지국가에서의 봉사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잠시 방문해서 어떠한 물건이나 돈 같은 것(물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을 전달해 주는 것은 무의미하다. 고마워하지도 않고, 무엇보다, 필요해 하지도 않는다.


우선, 그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시간 내어 와서 그들과 말동무 해주는 친구가 필요한 것 같다.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며, 그들과 놀아주는 친구가 필요한 것 같다. ‘정기적인, 그리고 지속적인 방문을 통한 친구되기가 복지국가에서 필요한 진정한 봉사가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복지국가에서의 봉사는 세금을 잘 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복지국가에서는 세금을 가지고 복지정책을 세우기 때문에 성실한 납세는 단순히 법을 지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나의 성실한 납세를 바탕으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이 가는 것이 복지국가의 특징이므로, 세금을 성실하게 잘 내는 것을 통해 봉사하게 되는 것 .


여기서 더 나아가, 복지국가에서의 봉사는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진정한 봉사인 것 같다. 세금을 아무리 잘 내도 그것이 엉뚱한데 쓰이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내가 낸 세금이 합당한 곳에 합당하게 쓰이고 있는 것을 모니터링 하는 일은 꼭 필요하다.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하며 정책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만족할 수 있는 정책, 특별히 힘들고 어려운 약자들을 위한 올바른 정책을 세우도록 촉구하고 격려하는 일은 행복한 복지국가를 만들어 나가는 데 있어 필수적인 것 같다.


복지는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을 현혹시키는 당근이 아니다. 복지는 모두가 행복한 세상, 특별히 사회적 약자가 불평등을 겪지 않도록 배려하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그러한 복지세상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그러한 복지는 돈이 많다고, 세금을 많이 걷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일깨워주고 보듬어 줄 때, ,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있을 때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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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
시(詩)2015. 12. 8. 06:06

머리카락

 

내가 읽은 책들은 당신이 살아온 날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나는 자꾸 책만 읽어요. 그래서 그런지 내 머리카락은 자꾸 뜬 구름을 닮아가요.

우울한 날이면 나는 휘파람을 불죠. 그렇게 나는 가까스로 우울을 피해가요.

그런데 당신을 보니 나와는 달리 우울한 날에 휘파람을 불지 않네요.

나는 힐끗 보았죠. 당신이 눈물을 훔쳐내는 것을. 그리고 이내 웃는 것을. 나는 그날 하늘의 뜬 구름이 당신의 머리카락에 물드는 것을 보았어요. 그래서 당신의 머리카락은 내 머리카락보다 슬프고 강해요.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나는 자꾸 책만 읽어요. 내 머리카락이 자꾸 나쁘게 변해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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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
시(詩)2015. 12. 5. 12:57

지구가 반대편으로 돈다면


 

지구가 반대편으로 돌면 시간이 거꾸로 흐를까?


그러면 방금 태어난 아기가 어른이 되고 방금 죽은 어른은 아기가 되는 거겠지?


방금 권력을 가진 자는 약자가 되는 거고,


방금 권력을 잃은 자는 강자가 되는 거고.


방금 부자가 된 자는 거지가 되는 거고,


방금 거지가 된 자는 부자가 되는 거고.


방금 병에서 놓임을 받은 자는 아프게 되는 거고,


방금 아프게 된 자는 병에서 놓임을 받는 거고.


지구가 이제부터 반대편으로 돌았으면 좋겠어.


아니, 지구가 반대편으로 돌다가


또 반대편으로 돌다가 또 반대편으로 돌다가 또 반대편으로 돌다가,


시간이 자꾸 거꾸로 흘렀으면 좋겠어.


그러면 사람들이 욕심 부리지 않을 텐데.


그러면 사람들이 불필요한 것을 차지하기 위해 인생을 낭비하지 않을 텐데.


그러면 우리 모두 아프지 않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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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
시(詩)2015. 12. 5. 04:30

시론



시를 왜 읽나요?

 .

다른 세상에 다녀오기 위해서지.

 .

다른 세상은 왜 다녀와야 하나요?

 .

그래야 너가 만든 세상에 갇혀 있지 않을 수 있지.

 .

내가 만든 세상에 갇혀 있는게 위험한가요?

 .

그럼, 미쳐버릴걸!

 .

그렇군요. 그래서 이렇게 세상에 미친놈이 많은 거군요.

 .

오늘부터 난 시를 읽겠어요. 그런데 어떤 시부터 읽어야 하죠?

 .

너의 존재를 소외시키는 시.

 .

왜죠?

 .

그래야 이 세상의 아픔이 비로소 보일테니까.

 .

시를 읽는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군요.

 .

고통 없이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이룰 수 있지?

 .

(2015 12 3, 바로 이날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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