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20'에 해당되는 글 14건

  1. 2016.07.20 도마뱀 집사 1
  2. 2016.07.20 낙서 열 셋
  3. 2016.07.20 낙서 열 둘
  4. 2016.07.20 낙서 열 하나
  5. 2016.07.20 낙서 열
  6. 2016.07.20 낙서 아홉
  7. 2016.07.20 낙서 여덟
  8. 2016.07.20 낙서 일곱
  9. 2016.07.20 낙서 여섯
  10. 2016.07.20 낙서 다섯
  11. 2016.07.20 낙서 넷
  12. 2016.07.20 낙서 셋
  13. 2016.07.20 낙서 둘
  14. 2016.07.20 낙서 하나

내가 사는 지역은 많이 무덥고 약간 습한 지역이라 곤충들 천국이다. 개미, 거미, 터마이트, (호넷, 범블비), 실버피쉬, 바퀴벌레 등 수 없이 많은 곤충들이 각자 좋아하는 처소에서 왕성한 번식력을 뽑내며 산다.

 

그 중 사람들에게 가장 혐오감을 주는 것은 단연 바퀴벌레다. 평소에 나를 별로 매력적으로 보지 않는 집사람도 내가 바퀴벌레를 잡아줄 때는 멋있단다. 어느 아티클에서 보았는데, 바퀴벌레는 컨트롤만 할 수 있을 뿐 완전 박멸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지구 상에서 가장 오래된 생물 중 하나인 바퀴벌레의 위엄이 담긴 보고다.

 

많이 무덥고 약간 습한 환경에서는 곤충 뿐만 아니라 그들의 포식자인 도마뱀도 기승을 부린다. 그런데 도마뱀은 곤충들과는 달리 눈에 잘 띄지 않을 뿐더러 인간 생활에 특별한 위해를 가하지도 않는다.

 

우리 교회는 바퀴벌레가 득실될 수 있는 환경을 지녔다. 건물도 오래됐고, 주변엔 숲이고, 예비시간이나 모임이 없는 동안은 텅 비어 있기 때문이다. , 사람의 손길이 많이 타지 않는 환경이다.

 

그러나, 우리 교회에서 바퀴벌레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나와 함께 동역하고 있는 도마뱀 때문이다. 교회를 처소 삼아 살고 있는 도마뱀은 어쩌다 마주치기라도 하면 움찔할 정도로 꽤나 크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 둘이 나누는 겸연적은 인사이다. 도마뱀도 나를 신경 안 쓰고, 나도 도마뱀을 신경 안 쓴다.

 

사실, 덫을 놓아 도마뱀을 잡을 수도 있으나, 나는 몇 년 전부터 도마뱀을 그냥 살려두기로 작정했다. 왜냐하면, 도마뱀 덕분에 교회에 바퀴벌레가 출현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마뱀은 사람들 앞에 자기의 존재를 거의 드러내지 않으면서 자기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다.

 

사람이나 미물이나 쓸모가 있으면 살아남는 법인 것 같다. 만약 도마뱀이 바퀴벌레를 잡는 데 쓸모가 없었다면 이미 도마뱀은 제거당했을 것이다. 도마뱀은 사람들에게 전혀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조용히 그 일을 잘 감당하고 있다.

 

도마뱀은 나의 신실한 동역자이다. 만약 도마뱀이 자기의 일을 잘 감당하지 못했다면, 나는 바퀴벌레를 잡느라 노동력을 써야했을 것이고, 교회의 예산을 거기에 썼을 것이다. 그러나, 도마뱀 덕분에 나는 나의 사역에 좀 더 집중하고 있다.

 

몇 년 동안 자기의 일을 묵묵히 잘 감당하고 있는 도마뱀에게 올 연말 '집사 직분'을 내릴까 한다. 그는 그냥 도마뱀이 아니라, 도마뱀 집사가 되기에 충분한 자격을 지녔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2).

Posted by 장준식
카테고리 없음2016. 7. 20. 03:39

낙서 열 셋.

 

창조의 싹을 죽여버리는 것은 강한 햇볕이 아니라 우리의 게으름이다.


Posted by 장준식
카테고리 없음2016. 7. 20. 03:38

낙서 열 둘.

 

우리는 뭔가를 모으기 전에 너무도 많은 것을 빼앗긴다.

이것이 우리가 가난해지는 이유이며 공허한 이유이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빼앗기면서도 그것을 모으는 거라고 착각하는 데 있다. 이것이 바로 소비주의문화의 매직(마술)이며 병폐이다.


Posted by 장준식
카테고리 없음2016. 7. 20. 03:38

낙서 열 하나.

 

참회를 강요하는 종교 권력, 이것은 종교 권력을 통해 무고한 자들에게 죄책감을 들게 하여 그들을 다스리고자 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악마적 수단이다. 입만 열면 '죄'라는 단어를 들먹이며 교인들을 협박하는 자들.. 그들은 정말 죄가 무엇인지 알기나 하고 그렇게 협박하는 것일까? 나는 설교자로서 강단에서 설교를 하면서 '참회를 강요하는 종교 권력'에 기대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내가 관찰한 사실 중 절망적인 것은.. 교인들은 메저키즘적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교회 지도자들의 잘못이다. 종교 권력이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Posted by 장준식
카테고리 없음2016. 7. 20. 03:36

낙서 열.

 

어찌하여 이렇게 못된 감각들만 살아 있어 못된 일에 반응하여 잔혹한 일들만 만들어 내고 있는가. 어쩌면 이렇게 선한 감각들은 죽어 있어 잔혹한 세상에 저항(반응)하지 못하는가. 어떻게 하여야 선한 감각들을 살려낼 수 있을까. 각이 살아 있지 못하니 세상을 경험하지 못하는구나. 그냥 이렇게 썩어지고 타들어가기만 하는구나.


Posted by 장준식
카테고리 없음2016. 7. 20. 03:36

낙서 아홉.

 

단장(斷腸) -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

 

"인도의 한 왕이 숲으로 사냥을 갔다가 예쁜 아기 사슴을 발견하고는 활을 쏴 명중시켰다. 그런데 활을 맞지도 않은 어미 사슴이 죽은 아기 사슴 옆에서 슬피 울다가 갑자기 쓰러져 죽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왕이 어미 사슴의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조각조각 잘라져 있었다. 왕은 모녀 사슴을 고이 묻어주고 다시는 사냥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 자식 잃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위로의 대상이다.


Posted by 장준식
카테고리 없음2016. 7. 20. 03:35

낙서 여덟.

 

하나님의 마음을 끈 인간(만물)의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인간의 마음을 끈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고 했던 도스토예프스키가 발견한 이 세상의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Posted by 장준식
카테고리 없음2016. 7. 20. 03:34

낙서 일곱.

 

시를 왜 읽나요?

 .

다른 세상에 다녀오기 위해서지.

 .

다른 세상은 왜 다녀와야 하나요?

 .

그래야 너가 만든 세상에 갇혀 있지 않을 수 있지.

 .

내가 만든 세상에 갇혀 있는 게 위험한가요?

 .

그럼, 미쳐버릴걸!

 .

그렇군요. 그래서 이렇게 세상에 미친놈이 많은 거군요.

 .

오늘부터 난 시를 읽겠어요. 그런데 어떤 시부터 읽어야 하죠?

 .

너의 존재를 소외시키는 시.

 .

왜죠?

 .

그래야 이 세상의 아픔이 비로소 보일 테니까.

 .

시를 읽는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군요.

 .

고통 없이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이룰 수 있지?


Posted by 장준식
카테고리 없음2016. 7. 20. 03:34

낙서 여섯.

 

나는 당신과 경쟁하지 않아. 나는 그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아. 나는 내 '내면의 빛과 음성'을 따라 그저 나의 길을 걸어갈 뿐이야. 그러다 누구와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지. 그래서 나의 길, 우리의 삶은 외로운 거야. 이게 얼마나 거룩한가! 얼마나 찬란한가!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그대는 그대의 길을 가시게. 나는 나의 길을 갈 테니. 다만 빛으로 가장한 어둠을 조심하고 목자의 음성으로 가장한 늑대의 음흉한 울음소리를 분별하길 바라네. 그러므로 우리에겐 최소한의 지혜와 약간의 저항 정도는 필요하다네. 우리 서로 '살아서' 다시 만나세.


Posted by 장준식
카테고리 없음2016. 7. 20. 03:33

낙서 다섯.

 

우리는 쉼(sabbath)으로 주님을 경배하고,

공동체에 속함으로 자기를 부인한다.

 .

우리는 쉼으로 탐심(경제와 소비의 착취)에 저항하고,

공동체에 속함으로 교만(자기집중, 이기주의)을 물리친다.

 .

그리스도 안에서 '공동체'에 속하고 그 안에 존재하는 일은

 이 타락하고 음란한 세대에 주는 종말론적인 메시지이다.

 .

가나안(안나가) 성도여,

공동체를 이탈하지 말고 그 안에서 피흘리기까지 싸우라.

그것이 우리 모두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이니.


Posted by 장준식
카테고리 없음2016. 7. 20. 03:32

낙서 넷.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사람이 대처하는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사람의 대처 행동이 그 사람의 최종적인 모습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더 성숙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 가능성 때문에 상대방을 함부로 정죄하지 않는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잠언 10:12).

상대방이 문제가 아니라, ... 내 눈과 마음이 문제다.

Posted by 장준식
카테고리 없음2016. 7. 20. 03:31

낙서 셋.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는

자기가 어둠에 물들어 있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가 물들어 있는 어둠은 열등감이라 불린다.


Posted by 장준식
카테고리 없음2016. 7. 20. 03:30

낙서 둘.

 

기도는 밝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을 몰아내며 하는 것이다.

기도는 배부를 때 하는 것이 아니라 배고픔을 참아내며 하는 것이다.

기도는 따뜻할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추위와 싸워가며 하는 것이다.

기도는 평안할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이겨내며 하는 것이다.

기도는 한가할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쪼개가며 하는 것이다.

어둠과 배고픔과 추위와 아픔과 바쁨을 마주할 용기와 열정이 없는 자는 그 마음에 간절함이 없는 것이다.

기도하는 자의 간절함이 기도를 영혼의 눈물이 되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영혼의 눈물을 긍휼히 여기신다.


Posted by 장준식
카테고리 없음2016. 7. 20. 03:28

낙서 하나.

 

성숙한 신앙이란, 성숙한 인격과 같이 가는 것 같다. 이 둘이 분리되는 순간, 신앙은 우스워진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