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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 오디세이 I2017. 2. 10. 17:16

장자의 명분과 복

(창세기 28:10-22)

 

(퀴즈: 야곱 이야기는 창세기 몇 장부터 시작되는가? 쉽게 외우는 방법은?) 창세기는 네 명의 족장(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크게 나누면, 창세기는 아브라함과 야곱의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창세기의 50장 중 반은 아브라함 이야기, 반은 야곱 이야기이다(야곱 이야기는 그래서 창세기 25장부터 시작된다.).

 

조지프 캠벨의 신화 이론에 따르면,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 이야기는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비범한 탄생, 갈등, 떠남, 성장, 되돌아옴. 야곱 이야기는 전형적인 신화적 영웅의 서사 구조를 담고 있다.

 

야곱은 쌍둥이로 태어났다. 그런데, 그의 탄생은 범상치 않았다. 그의 태생에는 특별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25:23). 이 말씀을 듣고 태어난 야곱은 쌍둥이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났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야곱이 된 것이다. (발꿈치를 잡았다.)

 

에서와 야곱의 성장과정을 보면, 성향 상 우두머리(장자)는 에서가 되어야 하는 게 맞다. 에서는 장성해서 익숙한 사냥꾼이 되었고, 야곱은 조용한 성격이어서 그냥 집에서 어머니를 도와드리는 일을 했다. 아버지 이삭은 장자 에서를 사랑했고, 어머니 리브가는 유약해 보이는 야곱을 사랑했다.

 

에서와 야곱의 갈등은 보이지 않게 시작된다. 하루는 사냥에서 집으로 돌아온 에서가 너무 배가 고파서 야곱의 떡과 팥죽을 요구한다. 야곱은 평소에 자신이 쌍둥이 동생으로서 장자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야곱은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만든 떡과 밭죽을 에서의 장자권을 사는 데 쓴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팔면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25:32). 그리고, 이어지는 진술은 이렇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25:34).

(우리는 인동 장씨인데, 우리 집에는 족보가 없다. 할머니께서 백령도에서 피난 나오시면서 가지고 다니기 힘들다시며 족보 없는 이에게 파셨다고 한다. 그래서 초등학교 4학년 때 사회 시간에 족보 조사해 오는 숙제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우리는 그냥 인동 장씨, 예수파로 써가라 하셔서 그렇게 숙제를 해 간 적이 있다.)

 

그 이후에, 에서와 야곱의 삶을 보면, 점점 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2634절과 35절 두 절에 에서의 결혼 이야기가 나오는데, 참 안타까운 장면이 나온다. 에서는 이방인 아내들을 맞이한다.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이것이 안타까운 일이라는 것을 성경 기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26:34-35).

 

에서의 이방인 아내들이 왜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을까?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당연히, 에서의 이방인 아내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몰랐을 것이고, 자신들이 섬기던 신을 그대로 섬겼을 것이다. 가정에서 신앙적인 충돌이 일어났을 것이다.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싸움이다.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는 안 겪어 본 사람은 모른다.

 

그리고, 드디어, 갈등이 증폭된다. 이삭이 나이가 많아 죽을 날을 얼마 안 놓아두고 마지막으로 축복을 해주려 한다. 이 축복은 일반 축복과 달리, ‘유언이고 상속이다. 요즘도 부모가 죽기 전에 유언과 상속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초미의 관심을 두고 싸움 하는 집안이 심심치 않게 있다. 부모에게 를 더 많이 물려 받기 위해서 자녀들이 경쟁한다. 그래서 노인들 사이에서는 죽을 때까지 절대로 자식들에게 먼저 재산을 물려주지 말라고 한다. 그래야 자식들이 끝까지 잘한다고 한다.


에서와 야곱 사이에도 아버지의 축복을 두고 경쟁이 벌어진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승자는 야곱이었다. 야곱은 변장을 하여, 형 에서에게 내릴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챈다. 아버지 이삭이 내린 축복은 이것이다.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만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27:27-29).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의 말씀이다. 우리가 그렇게 갈망하는 물질과 명예와 형통의 복이 이 말씀에 다 들어 있다. 자녀들에게 물질을 직접 주지 말고 (줘 받자 탕진하거나 싸움 할 가능성이 크다), 날마다 이 말씀을 주면 좋다. 인간은 복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라고 베푼 것이 나중에 큰 문제를 발생시키는 근심으로 변질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그야말로 복이 된다. (오늘 밤, 자녀들에게 이 복을 빌어주고 주무시라.)

 

기회를 놓친 에서에게는 이런 축복의 말씀이 주어진다. “네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멀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멀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27:39-40). 참으로 안타까운 축복이다. 에서의 주소는 척박 시 척박 구 척박 동이다. 칼을 믿고 살아야 하고, 아우를 섬기며 살아야 하니, 그 삶이 얼마나 고단하겠는가.

 

이렇게, 에서의 말 대로, 야곱은 형 에서를 속여 형에게서 두 가지를 빼앗아 간다. 장자의 명분과 복. “에서가 이르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지 아니하나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27:36).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매우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이상하지 않는가? (나만 이상한가?) 야곱이 에서에게서 빼앗은 것은 장자의 명분과 복이다. 장자의 명분과 복은 실물이 아니다. 야곱에 에서에게서 실제로(실물로는)는 빼앗아 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이 사건 이후, 더 어려워진 것은 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야곱이다.

 

야곱은 이 일 때문에 고향을 떠나야 했다. 고향을 떠나는 일이 쉬운가? 집 떠나면 고생이다. (이민자인 우리가 그 누구보다 더 잘 알지 않는가? 우리가 여기서 살아남으려고 얼마나 힘들게 사는가? 서로 위로해 주라. 충청도 사투리로, 고생이 많아유~) 야곱은 고향 브엘세바를 떠나 한 번도 가본 적도 없고 만나 적도 없는 하란 땅의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친다.

 

장자의 명분과 복을 차지한 야곱과 그것을 빼앗긴 에서의 삶이 어떻게 다른 지 보자. 대표적인 예로 결혼 문제를 보라. 이삭은 야곱에게 가나안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왜 그런지는 위에서 언급했다. 야곱은 아버지의 당부를 지킨다. 그런데, 에서는 지키지 않는다. 이 문제 때문에 고민이 많았던 에서는 아버지를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다. 그래서 그는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의 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 한다.

 

야곱은 계속 말씀 위에, 복 위에 있고, 에서는 계속 거기서 벗어난다. 결정적으로 오늘 말씀을 보면,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을 만난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13). 그리고 하나님께 받은 약속은 땅과 자손의 복, 그리고 언제나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다.

 

그래서, 야곱은 하나님을 만난 바로 그곳을 벧엘(하나님의 집)이라 칭하고, 거기에서 제단을 쌓는다. 예배 드렸다는 뜻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서원한다. 서원이란 하나님과의 신실한 약속을 말한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20-22).

 

위대한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많은 명언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인간으로서 가장 위대한 도전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영웅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극복을 위한 기술을 완성한 인간이다.”

 

야곱은 형 에서에게서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복을 받았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야곱이 장자의 명분과 복을 받았다고 해서, 그가 저절로 장자가 되고, 복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장자와 복은 소망이고 약속이다. 야곱에게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믿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서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야곱의 위대함은 조지프 캠벨의 말 대로, 자기 자신을 변화시킨 것에 있다. 야곱은 원래 장자가 아니었고, 복을 받을 위치에 있던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장자와 복에 대한 소망과 약속을 받고, 그것을 이루어 갔다. 차남으로 태어났고, 유약했고, 엄마 치마폭에서만 놀았던 야곱은 성경의 인물 중 가장 입지전적한 인물이 되었다. 그가 소망대로 장자와 복을 일구어 낸 것은 물론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며 그 소망을 이루어 주시리라는 믿음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야곱이 받았던 약속과 소망을 똑같이 받은 그리스도인이다. 우리는 여러 민족, 여러 사람 중에 장자이며, 하나님의 복을 받은 그리스도인이다. 우리가 이렇게 주께 나아와 예배 드리는 이유는 야곱처럼 장자의 명분과 복을 믿기 때문이며, 힘들고 어렵지만, 그 약속과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멈추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장자의 명분과 복이 여러분에게 임한 줄로 믿는다. 이것이 우리 교회에 임한 줄로 믿는다. 약속과 소망의 말씀을 붙들고, 그 약속과 소망이 성취되는 그날까지 서로 지치지 않게 격려하며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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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