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06'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7.04.06 마라를 단물로 바꾸어 주시길 간구하는 기도 1
  2. 2017.04.06 마라라 하지마라 1
기도문2017. 4. 6. 07:23

마라를 단물로 바꾸어 주시길 간구하는 기도

( 15:22-26)

 

주여, 어렵게 찾은 물이 쓰나이다.

어떤 물을 마셔야 하나이까.

마라를 움켜쥐고 기도하오니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옵소서.

삶의 자리에 발견되는 쓴물을 보고

원망을 쉽게 뱉어내는 부족한 종을 용서하옵소서.

쓴물을 단물로 바꾸기 위하여

헌신과 희생을 하지 못하는 부족한 종을 용서하옵소서.

어렵게 마신 물이 쓴물일 때

쉽게 절망하지 말게 하시고,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시기 위하여

주께서 준비하신 한 나무

반드시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게 하옵소서.

쓴물이 단물이 되는 것은 주의 뜻이니이다.

주께서 예비하신 한 나무

우리 삶 가운데 있는 마라로 던져 주옵소서.

그러면 우리가 살겠나이다.

그러면 우리의 삶이 기쁨으로 넘치겠나이다.

주여, 오셔서

우리를 치료하여 주옵소서.

아멘.


Posted by 장준식
바이블 오디세이 I2017. 4. 6. 07:16

마라라 하지마라

(출애굽기 15:22-26)

 

쓴물이 단물로 바뀐 이야기이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은 수르 광야를 3일 동안 걸었는데도 물을 얻지 못했다. 물을 찾아 가까스로 도착한 곳이 마라인데, 기쁨도 잠시, 그 물은 써서 먹지 못하는 물이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모세에게 원망한다.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마라라는 말은 물이 쓸 때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인생이 쓸 때도 사용했다. 룻기 1 20절에 보면, 나오미는 자신의 괴로운 인생을 가리켜 마라라고 한다. 나오미의 이름은 뜻은 원래 기쁨인데, 인생에 기쁨이 없고 괴로움만 있었기에 그렇게 불러달라고 한다. 얼마나 인생이 괴로웠으면 그렇게 불러 달라고 했을까. 측은하다.

 

이스라엘의 원망은 측은한 원망이다. 그들의 삶의 환경이 그만큼 어려웠다.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폭동이 일어날 태세다.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하나님은 어떠한 한 나무를 가리키며 그것을 물 속에 던져 넣으라고 말씀해 주신다. 그랬더니, 쓴물이 단물로 바뀌었다. 먹을 수 없는 물이 먹을 수 있는 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쓴물이 단물로 바뀌는 것, 이런 것이 능력이고 은혜인 것이다. 반대가 되면 안 된다. 단물을 쓴물로 바꾸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고, 죄악이다.

 

어느 신문에서 이지선과 션이 그만 달려도 되는 나라는 칼럼을 읽었다. 한국의 어린이 사회복지의 현실을 꼬집으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 함을 촉구한 칼럼이었다. 그 칼럼에 의하면, 현재 한국에는 재활과 사회복귀를 위해 치료가 필요한 어린이가 3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 어린이 재활병원은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딱 한 군데 밖에 없다고 한다. 그 병원에 들어가서 재활치료를 받으려면 평균 1년을 기다려야 한단다.

 

그 병원의 홍보대사가 이지선과 션인데, 그들은 사람들에게 어린이 재활병원 후원을 홍보하기 위해서 마라톤을 완주했다고 한다. 이지선 씨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교통사고를 당해서 전신화상을 입어 전신 피부이식을 한 상태가 피부에서 땀이 잘 배출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마라톤을 두 번이나 완주했다고 한다. 션은 m 1000원씩 기부하기 위해 42.195Km를 뛰었고, 그래서 총 4,219 5천원을 기부했다고 한다. 칼럼니스트는 이제 이들은 그만 뛰게 하고, 나라가 나서서 어린이재활병원 설립에 힘쓰기를 바란다고 당부한다.

 

쓴물을 단물로 바꾸는 일은 공동체의 과제이다. 우리는 대개 처음부터 단물이 나는 장소를 찾아다니지만, 처음부터 단물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단물도 잘못 관리하면 쓴물이 되기 십상이다.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쏟아지는 비판 중, ‘교회 쇼핑족에 대한 비판이 많다. 교회 쇼핑족들은 교회 선택의 기준이 신앙적 동기보다는 종교생활을 통해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유익을 누리려는 계산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를 선택할 때, 1) 예배당의 음향과 조명과 영상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는지, 2) 전문가들이 예배나 교회운영에 참여함으로써 쾌적한 예배환경을 제공해주는지, 3) 교회의 부대시설(주차, 건물, 카페, 서점, 식당 등)이 얼마나 편의성을 갖추고 있는지, 4) 자신의 자녀들을 위해 체계적이고 앞서나가는 교육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는지, 5) 사회 중상층 이상의 전문직 종사자들이 성도들 가운데 적절히 존재해서 사회생활에 직간접적으로 도움도 되고 교제권을 만들어두면 여러모로 교양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누릴 가능성이 있는지, 6) 다른 교회에 없는 유력한 교육과정이나 훈련과정 등이 있어서 배움의 욕구를 잘 충족시켜주는지 등을 검토한다. (양희송,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 57)

 

교회 쇼핑족들은 자신이 헌신하여 쾌적하고 좋은 환경의 교회를 세워나가려 하지 않고, 힘들이지 않고 이미 쾌적하고 좋은 환경의 교회에 무임승차하려는 얌체족이다. 우리는 누구든지 그러한 얌체족, ‘교회 쇼핑족에 편승할 수 있다. 우리는 물이 써서 못 먹게 된 것만 보고 원망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그 쓴물을 달게 만들 수 있는 어떠한 나무를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고 계신 것을 보지 못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쓴물 한 번 먹고, 그것이 쓰다고 쉽게 원망하지 말라. 이 물이 쓰다고 쉽게 마라라고 하지말라. 그 쓴물을 움켜쥐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 본 적 있는가? 그 쓴물을 움켜쥐고 하나님께서 단물로 바꾸어 주실 거라는 신실한 믿음을 가져 본 적 있는가? 우리는 너무도 쉽게 쓴물을 포기하고, 단물을 찾아 떠난다. 그런 자에게 어떻게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실 수 있겠는가? 그런 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겠는가? (이것에 대하여 간증할 것이 엄청 많은데, 차츰 기회가 되면 하겠다.)

 

오늘 말씀의 마지막 구절은 나는 너희의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는 말로 끝난다. 그런데, 그 치료의 근거는 이것이다.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이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애굽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라도 내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신다.

 

요즘 사람들에게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다이어트이다. 먹는 게 부족했던 시절에는 다이어트라는 말이 없었다. 그때는 (나처럼) 적당히 살이 오른 사람이 최고였다. 그런데, 시절이 변해 먹는 게 풍족하다 보니, 먹는 것을 절제해야 하는 시절이 온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이어트를 한다. 그런데 성공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물론 일시적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곧 요요현상이라는 것이 일어나 다시 살찌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 그럴까?

 

다이어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밥 적게 먹고 운동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습관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진정한 다이어트는 생활습관 자체를 바꾸는 것이지, 일정기간 밥 적게 먹고 운동 많이 한다고 효과를 보지 못한다. 그런데, 일시적으로 밥 적게 먹고 운동 많이 하는 것까지는 할 수 있는데, 생활습관 자체는 바꾸는 일은 죽는 것보다 힘들다. 그래서 대부분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것이다.

 

치료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 율법을 잘 지켜야 한다는 말은 생활습관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과 똑 같은 말이다. 이것은 거룩한 생활습관이라고 한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병에 안 걸린다는 말을 무슨 주술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안식일 잘 지키면 병에 안 걸리는가? 병에 걸린 사람은 안식일 잘 안 지켜서 그런가? 아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쉬라는 뜻이다. 안식일은 쉬는 생활습관을 말한다. 쉴 줄 아는 자는 병에 걸리지 않는다. 쉬지 못하는 자는 병에 걸리기 쉽다. 현대인들의 가장 안 좋은 생활습관은 쉴 줄 모른다는 것이다.

 

쉬운 예를 하나 더 들면, 레위기서의 율법에 보면 돼지고기를 먹기 말라는 법이 있다. 돼지가 부정해서 그런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왜 그토록 돼지고기(특별히 삼겹살)를 못 먹어서 안달하는가? 율법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은 생활습관을 말하는 것이다. 당연하다. 중동지역은 덥다. 더운 지역에서 돼지고기 잘못 먹으면 탈난다. 병에 걸린다. 죽는다. 율법을 지키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습관이 형성되고 결국 그것 때문에 병에 걸릴 위험이 없어진다.

 

하나님의 말씀은 에 관한 것이지 죽음에 관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삶의 습관에 관한 말씀이지, 삶과 동떨어진 뜬 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서로 사랑하면 왜 병에 걸리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서로 미워하고 원수처럼 지내니까 화병에 걸리는 것이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자에게 쓴물이 다가올 틈이 어디 있는가? 그런 자에게는 매일 단물이 밀려 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삶의 습관을 형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단물이 아니라 쓴물이 밀려 오는 것이다.

 

마라를 쓰다고 원망만 하지 말고, 쓴물을 달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마라를 움켜쥐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보자.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교회의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붙들고 기도해 보고, 그것을 단물로 바꾸기 위해 헌신해 보라.) ‘마라라고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쓴물을 주지 않으신다. 쓴물도 단물로 바꾸어 주신다. 주님께서는 마라, 쓴물을 단물로 바꾸시기를 원하신다. 쓴물을 단물로 바꾸실 어떠한 나무를 이미 예비해 놓으셨다. 그러니, ‘마라라고 하지 말라. 우리의 삶 가운데 있는 마라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며, 삶의 자리에서 쓴물을 단물로 바꾸며 살아가는 믿음의 자녀가 되길 빈다.


'바이블 오디세이 I'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배보다 정의 - 고난주간 월요일  (0) 2017.04.11
우리는 어느 행렬에 참여하고 있는가?  (0) 2017.04.11
부활과 생명과 나사로  (0) 2017.04.04
거룩과 영광  (0) 2017.03.30
여호와 닛시  (0) 2017.03.23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