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24'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7.06.24 위로의 힘
바이블 오디세이 I2017. 6. 24. 08:21

위로의 힘

(룻기 2:1-13)

룻기 3

 

1.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의 반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져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싶다. – 서정윤

 

2.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 도종환

 

3. 오늘 말씀을 읽으며 이런 시들이 생각났다. 청소년, 청년 시절, 이러한 시들을 접했을 때, 그 시들은 흔들리는 영혼에 많은 위로가 되었다. 나는 지금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하루에 3편 이상의 시를 읽는다. 그것이 내가 정해 놓은 하루의 목표 중 하나이다. 대학교 다닐 때, 엄마에게 하루에 5천원씩 용돈을 받아서 다녔는데, 하루에 1천원씩 아껴서 한 권에 5천원이던 시집을 일주일에 한 권씩 사서 읽었다 (지금은 시집 1권도 8천원에서 1만원 한다).

 

4. 스무 살 때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며 책에서 눈을 못 떼던 시절도 생각난다. 베르테르의 눈을 통해서 그려지는 여인 로테의 모습은 꿈에서나 볼 수 있는 천사의 모습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롯데그룹의 신격호 회장도 젊은 시절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며 나와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그는 그 소설을 읽은 뒤, 자신이 창업하려는 회사의 이름을 롯데로 정할 정도였다.

 

5. 심리학에서 베르테르 효과라는 것이 있다. 유명인이 죽으면 따라 죽는 사회적 문제를 지칭하는 말이다. 괴테 당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소설이 발표된 직후, 베르테르처럼 이루지 못한 사랑을 비관하여 자살하는 젊은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이후, 그러한 사회적 현상을 베르테르 효과라고 부른다.

 

6. 오늘 말씀을 읽으며 미소 짓지 않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인생을 반드시 돌아보아야 하는, 세상과 소통 못하고 사는 사람이다. 소통이 잘 안 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소통이 잘 안 되는 사람은 계절의 변화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다. 소통을 잘 하는 사람은 계절이 바뀌면, 꽃을 보면서 ~ 이쁘다!’고 감탄사를 날릴 줄 안다. 그러나, 소통을 못하는 사람은 계절을 두 가지로 구분하고 만다. ‘덥다, 춥다’. 더 심한 사람은 더워 죽것다. 추워 죽것다.’ 모든 말에 죽것다를 붙인다. 그리고, 둘째, 소통이 잘 안 되는 사람은 유머가 없어진다. 이런 것이 잘 안 되는 사람은 자신이 지금 인생을 잘 살고 있는지, 자신의 인생을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7. 룻과 보아스의 운명적인 만남을 보라. 너무 가슴 설레지 않는가. 오늘 말씀은 나오미가 남편도 잃고 아들도 모두 잃었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1). 사람은 힘들어서 죽지 않는다. 외로워서 죽는다.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사람을 외롭게 하는 것이다.

 

8. 얼마 전, 인터넷 신문에서 가슴 아픈 사진과 기사를 봤다. 태국 방콕에서 일어난 일인데, 주인이 자신을 버리고 이사간 줄도 모르고 한 달 째 빈집 대문 앞에서 대문을 굳게 지키고 있는 개의 사진과 기사였다. 얼마나 충직한지, 차가 자기 앞에 다가와도 비키지 않고, 누군가 집 앞을 서성이면 매섭게 짖어 댔다고 한다.

 

9. 누군가를 외롭게 두지 말라. 사람은 힘들어서 죽지 않는다. 외로워서 죽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외롭게 두지 않으신다. 오죽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임마누엘이겠는가. ‘임마누엘의 뜻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가끔 우리를 힘들게 하긴 하시지만, 우리를 결코 외롭게 두지는 않으신다.

 

10. 외로움은 좋지 못하다. 창세기에도 보면, 하나님이 아담에게 돕는 배필인 하와를 지어주시게 된 이유가 이렇게 나온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2:18). 사람에게 가장 안 좋은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외로움이다. 요즘 현대 사회의 가장 큰 사회적 문제 중 하나가 무엇인가? 고독사이다. 이것은 사회적 죽음이고, 사회적 살인이다.

 

11.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뜻을 지나고 있다. 특별히 우리처럼 이민사회에서 교회 공동체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나오미와 룻에게 희망이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 보아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유력한 자가 되어주어야 한다.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오늘 말씀에는 룻과 보아스가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 일화들이 소개된다.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 얼마 떨어진 밭으로 시찰을 나온다. 그런데, 보아스는 일하는 일꾼들에게 잔소리부터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복을 빌어주는 일부터 한다. 보아스는 일꾼들에게 이렇게 복을 빈다.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아도나이 임마켐)” 이에 반응하여, 일꾼들은 보아스에게 이렇게 복을 빈다.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예바레케카 아도나이).

 

13. 그리고 나서, 보아스가 밭에 도착한 후 사환에게 던진 첫 번째 질문은 밭에서 이삭을 줍고 있던 룻에 대한 것이었다. “이는 누구의 소녀냐?” 이것은 이는 누구에게 속한 상태냐라고 묻는 것이다. 결혼했냐 안 했냐는 뜻이다. 이것은 보아스의 룻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다.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이런 질문을 안 한다. 결혼했든 말든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심이 있으면, 결혼 여부가 먼저 궁금한 법이다.

 

14. 그런데, 보아스의 질문에 대한 사환의 대답이 굉장히 호의적이다. 우선 룻의 신상을 말한다. ‘그녀는 모압 소녀입니다.’ 그리고 룻의 성품에 대한 인상을 소개한다.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7). 한마디로, 룻의 성실함에 대한 서술이다.

 

15. 룻과 보아스와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된다. 룻은 보아스의 따스함을 보았고, 보아스의 룻의 성실함을 보았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배려가 시작된다. 보아스는 룻에게 이렇게 배려한다.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한다.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녀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보아스의 호의에 룻은 목이 메어 이렇게 화답한다.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든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10).

 

16. 요즘 사회기사면에 심심치 않게 신고려장에 대한 기사가 뜬다. 얼마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슬하에 2 3녀를 둔 80대 여성 김모 씨는 사회적ㆍ경제적으로 완전히 고립됐다. 막내아들을 따라 필리핀에 갔지만 곧 홀로 남겨졌다. 사업이 부진해 생활고에 시달리던 아들은 다른 형제들에게어머니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쳐 장례비용을 받아냈다. 정신적 충격을 받은 김씨는 뇌출혈로 쓰러졌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치매 증상까지 나타났다. 아들은 쇠약해진 노부모를 필리핀의 한 모텔에 유기하고 도망갔다.”

 

17. 보아스가 룻을 쫓아낸다고 한들 뭐라고 할 상황이 아니다. 이방 여인이라고 무시하고, 자기 밭에서 쫓아내고, 물도 자기가 길어다 먹게 하고, 등 보아스가 룻을 학대할 수 있는 건수는 얼마든지 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얼마든지 이렇게 갑질 할 수 있다. 그런데, 보아스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보아스가 룻에게 갑질을 하지 않고, 호의를 베푼 결정적인 이유는 이것 때문이다.

 

18. “남편이 죽은 후 당신이 시어머니에게 한 일에 대해 모두 들었소. 당신의 부모와 고향을 떠나 알지도 못하는 민족과 함께 살려고 온 것 말이오. 여호와께서 당신의 행실에 대해 갚아 주실 것이오. 당신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날개 아래 보호받으러 왔으니 그분께서 당신에게 넉넉히 갚아 주실 것이오.”(11, 12).

 

19. 보아스는 무엇보다 신앙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룻의 인생에 벌어진 일을 세상의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신앙의 눈으로, 즉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보아스는 룻에게 하나님으로부터의 보답과 온전한 상이 있기를 바랐다. ‘온전한 상에서 상은 품삯과 같은 의미다. , 행위에 상응하는 대가라는 뜻이다.(생명의 삶 플러스, 룻기, 48)

 

20. 룻이 한 행동은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 보호 받으러 온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룻은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 숨기 위해, 안식처를 찾기 위해 왔다. 룻은 모압 땅에서 다른 남편을 만나 위로 받으려 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날개 아래에서 안식처를 찾고자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온 것이다.

 

21. 사람은 힘들어서 죽지 않는다. 사람은 위로를 받지 못하면 죽는다. 시편이 계속해서 고백하는 것은 이것이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시편 119:50). 위로란, 살아갈 힘을 다시 얻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는가? 나오미와 룻이 모든 것을 잃고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인생의 기쁨을 되찾은 이유는 보아스를 통한 하나님의 위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위로는 사람을 살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21. 험한 세상, 우리는 하나님께서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 주라고, 서로에게 주신 돕는 배필이다. 사람은 힘들어서 죽지 않는다. 외로워서 죽는다. 사람은 힘들어서 죽지 않는다. 위로를 받지 못해서 죽는다. 남자는 여자가 웃어줄 때 위로를 받는다. 여자는 남자가 자신의 소소한 말(잔소리로 들리는 말)에 귀 기울여 줄 때 위로를 받는다. 남자는 예쁜 여자를 좋아하지 않고, 웃어주는 여자를 좋아한다. 여자는 성공한 남자를 좋아하지 않고, 소소한 말에 귀 기울여 주는 남자를 좋아한다. 주님이 우리에게 위로가 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자. 당신의 위로가 생명을 살린다.


'바이블 오디세이 I'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쁨에 놀라다  (1) 2017.07.01
소통의 능력  (0) 2017.06.25
부활의 신비  (1) 2017.06.15
모른 척 돌아서지 말라  (0) 2017.06.12
잔치는 시작되었다  (1) 2017.06.12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