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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 오디세이 I2018. 3. 15. 14:11

감춰진 악

(느헤미야 13:1-31)

 

언젠가 EBS 다큐프라임에서 <당신이 화를 내는 이유>를 제목의 방송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화를 왜 내는 것일까? 그 방송에서 말하기를, ''라는 감정 안에는 분노, 모멸감, 자기 비하, 그리고 좌절감까지 다양한 감정이 숨겨져 있다고 한다. 화는 대개 부정적 감정이 어느 일정 부분 쌓이면 폭발하는 현상이다.

 

화를 다스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화의 근원을 추적하여 그 근원을 보듬어주어야 한다. 방송에서 말하기를, 대부분 화를 습관적으로 심하게 내는 사람들의 경우, 그런 감정 분출의 근원이 어린 시절 트라우마에서 이어진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고 신체적인 성장을 이루더라도 내면의 트라우마는 그 사람의 내면을 상처 받은 그 시간과 그 상태에 머무르게 하여, 어떠한 상황이 되면 감정이나 행동의 퇴행을 가져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어린 시절에 생긴 트라우마를 치유하면 화가 없어지는가? 그리고, 어린 시절 왜 그러한 트라우마가 생겼을까? 대개 어린 시절 받은 상처는 불우한 환경 때문에 생긴다. 그런데, 어떠한 가정에 닥친 경제적 어려움은 그 가정만의 책임인가? , 화는 단순히 개인의 감정적 기제만은 아니다.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사회의 구조적 악으로부터 온다.

 

예를 들어, 요즘 한국 젊은이들은 결혼과 출산을 꺼려한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그들이 어렸을 때 결혼과 출산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기 때문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사랑의 감정이 메말라 있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다. 청춘은 언제나 뜨겁다. 뜨거움이 청춘의 상징 아닌가? 그런데, 왜 요즘 청춘들은 결혼과 출산을 꺼려하는가? 결혼과 출산이 그들에게 짐이 되기 때문이다.

 

결혼과 출산이 저조하여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그것은 인구절벽문제와 고령화문제를 낳고 있다. 인구절벽은 인구가 감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고, 고령화문제는 한 명의 노인을 봉양할 수 있는 젊은이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공동체(사회)가 붕괴된다. 현재의 사회 시스템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청춘 남녀 각 개인에게 감정적으로 결혼과 출산을 장려해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청춘 남녀가 결혼과 출산을 해도 짐이 되지 않도록 사회제도의 개혁이 있어야 한다. 청춘 남녀가 결혼과 출산을 꺼리게 만드는 요소를 이라고 한다면, 그 악은 개인에게 숨어 있는 것이 아니고 사회 안에 숨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개인 안에 숨어 있는 악을 찾아내는 것보다 사회 안에 숨어 있는 악을 찾아내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이다.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원래 한 권의 책(두루마리)이다. 같은 시대적 배경을 하고 있고,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뜻이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의 포로귀환은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지는데, 1차 포로귀환은 스룹바벨이 주도했고, 2차 포로귀환은 에스라가 주도했고, 3차 포로귀환은 느헤미야가 주도했다.

 

스룹바벨은 다윗의 자손이었다. , 1차 포로귀환은 왕족을 중심으로 이뤄진 귀환이었다. 매우 정치적인 상징을 가진 귀환인 것이다. 그리고 에스라는 율법 학자 겸 제사장이었다. , 2차 포로귀환은 매우 종교적인 상징을 갖는다. 마지막으로 느헤미야는 평신도이면서 행정가였다. , 3차 포로귀환은 매우 사회적인 상징을 갖는다.

 

오늘 본문은 제 3차 포로귀환을 주도한 느헤미야가 포로귀환 공동체를 개혁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그가 하는 개혁의 특징이 있다. 그는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개혁을 하지 않는다. 그는 사회적인 개혁을 단행한다. , 그는 사회 안에 아무도 모르게 숨겨져 있는 악을 찾아내어 그 악을 물리친다. 느헤미야가 훌륭한 개혁가인 이유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관행처럼 일상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러진 악을 발견해 내는 통찰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느헤미야가 발견한, 감춰진 악은 크게 다섯 가지이다. 첫째는 하나님의 총회에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이 은근 슬쩍 들어와 있는 것이었다.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이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된 배경은 신명기 23장에 기록되어 있다.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니리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 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그들은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떡과 물로 너희를 길에서 영접하지 아니하고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너희를 저주하게 하려 하였느니라”( 23:4-5).

 

암몬과 모압은 자신들이 행한 일을 은근 슬쩍 모른 채 하고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 와서 목소리를 내려고 했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법을 까먹었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모르는 척 해서 암몬과 모압 사람을 은근 슬쩍 하나님의 총회에 참석하게 했다. 이렇게 은근 슬쩍 일어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대한민국이 아직도 역사청산을 하지 못하고 사회적 갈등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 아닌가. 일본 정부는 2차대전 동안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을 은근 슬쩍 모른 채 하고 군사력과 정치력을 키워 주변 나라에 영향력을 미치려 하고, 친일파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매국행위를 은근 슬쩍 덮으며 대한민국 사회에서 계속하여 주류사회에 편승하려 하고, 사람들은 그들의 만행을 까먹었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모른 척 해서 그들에게 곁을 주려 하고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은근 슬쩍 넘어가려 할 때, 그것은 사회를 병들게 하고, 결국 그것 때문에 사회는 붕괴되고 만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개혁했듯이, 반드시 역사 청산은 이루어져야 한다.

 

두 번째로, 느헤미야가 발견한 감춰진 악은 제사장 엘리아십과 암몬 사람 도비야가 내통하여 성전을 더럽힌 사건이다. 그들의 죄는 여호와의 성전을 사사로이 사용한 것이다. 이것은 최고위 관리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찾아내기 쉽지 않은 악이다. 누구보다 성전의 거룩함을 지켜내야 할 제사장이 여호와의 총회에 절대로 들어오면 안 되는 암몬 사람과 내통하여 여호와의 성전을 더럽혔다는 것은 그들의 부패가 얼마나 심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느헤미야는 성전에 있던 도비야의 방에 있는 물건을 모두 끄집어 낸 뒤, 그 방에 원래 있어야 할 성전의 물건들을 채워 넣는다.

 

세 번째로, 느헤미야가 발견한 감춰진 악은 성전을 위해서 봉사하는 레위인들에 관한 것이다. 레위인들이 성전에서 봉사를 해야 하는데, 느헤미야가 보니까, 모두 자기들의 밭으로 가서 먹고 사는 일에 힘을 쏟고 있었다. 그 이유를 조사해 보니까, 성전에서 봉사하면서 레위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더 조사해 보니까, 성전의 곳간이 텅텅 비어 있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목회하면서 수 없이 많은 설교를 했지만 헌금 설교를 한 적이 없다. 그 이유는 교회 재정은 행정에 관한 것이지 복음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물론 헌금은 신앙고백의 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앞으로도 헌금에 대한 설교는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요즘 읽은 어느 책을 보니까, 교회에서 교회 재정에 대한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교회는 건강하지 못한 교회라는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에는 행정이 없을 수 없다. 그 행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재정이다. 교회 공동체를 유지해 나가는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인 재정에 관한 문제는 적극적으로 지혜를 모아 대처 해야지, 소극적으로 대처하면 안 된다. 다만, 이것은 설교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회의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인 것이다. 느헤미야는 행정가이다.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재정적인 문제를 적극적으로 대처한 느헤미야에게서 반드시 배워야 할 점이다.

 

네 번째로, 느헤미야가 발견한 감춰진 악은 안식일 문제이다. 안식일 문제는 단순히 율법적인 문제가 아니다. 율법을 형식으로만 지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안식일 문제는 인간의 정체성 문제이다. 느헤미야가 발견한 것은 안식일에 아무렇지도 않게 예루살렘에서 상거래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 그들의 일상이 먹고 사는 문제로만 전락한 것이다.

 

인간은 쉬지 않으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쉰다는 것은 사색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요즘 현대인들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인데, 쉬지 못하고 일에만, 먹고 사는 문제에만 몰두해 있다 보니까, 자기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인간 소외가 자꾸 발생하여 물질적 풍요는 이루었으나 실제 느끼는 행복감(삶의 질)은 오히려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인간에게 하나님 안에서의 안식은 행복의 근원이고 목적이다.

 

마지막으로, 느헤미야가 발견한 감춰진 악은 통혼의 문제이다. 통혼 문제는 그들의 독특한 역사적 자리에서 봐야 한다. 이것은 현재의 사회적 통념과 매우 다른 개혁이다. 느헤미야가 통혼에 대해서 개혁의 칼날을 들이댄 것은 그들의 신학적 반성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한 이유를 솔로몬에게서 시작된 통혼 때문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이방신을 섬긴 것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 자신들을 망하게 한 직접적 원인이 또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횡행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느헤미야 당시 이스라엘에게는 비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심각성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통혼이 아무렇지도 않게 백성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화를 내는 이유는 드러난 것 때문이 아니라 감춰진 것 때문이다. 감춰진 감정이 폭발할 때 화를 내게 되고, 그 이유모를 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어렵게 만든다. 사회(공동체)가 무너지는 이유 드러난 것 때문이 아니라 감춰진 것 때문이다. 그것이 악인지도 모르고 아무렇지도 않게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하는 그일이 결국 어느 시점에 가면 사회(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기폭제가 된다. (, 한국사회의 가부정적 문화, 편리를 추구하는 생활 방식(플라스틱 사용, 화석연료사용 등)).

 

개인의 목숨을 빼앗아 가는 것도 세포 안에 감춰진 암 세포 때문이다. 그 감춰진 암 세포를 얼마나 빨리 발견하여 제거하느냐에 따라서 인간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한다. (우리 아버지는 친구 목사님 따라 우연히 건강검진 받으러 가셨다 간암을 발견하여 수술해서 6년 반을 더 사셨다. 만약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더 일찍 세상을 떠나셨을 것이다.)

 

개인의 사회적 커리어를 망치는 일도, 결국 자기 자신만이 아는, 또는 자기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감춰진 나쁜 습관() 때문이다. 가정을 무너뜨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드러난 일이 가정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드러나지 않는 일이 오랫동안 진행되다 어느 순간 드러나게 되어 가정이 무너지는 법이다. 교회 공동체도, 국가 공동체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벌어지는 감춰진 악을 찾아내어 제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가정을 돌아보고, 교회 공동체를 돌아보고, 사회를 돌아보면서 우리를 무너뜨릴지도 모르는 감춰진 악이 무엇인지 부지런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듣는 것이며, 그래서 우리는 함께 모여 예배하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서로의 생명을 지키고 풍요롭고 행복할 수 있도록 서로를 비춰주는 사랑과 의의 거울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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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