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8. 4. 30. 14:54

내 사랑 내 곁에

(딤후 4:9-22)

 

역사를 보면 독신으로 산 위인들이 많다. 그 중에서 몇 명만 꼽자면, 우선 니콜라 테슬라가 있다. 우리 교회 옆에 있는 테슬라 자동차 회사는 테슬라의 업적을 기리며 그의 이름을 따와서 회사 이름을 지었다. 니콜라 테슬라는 토머스 에디슨의 라이벌로 유명하다. 에디슨는 직류시스템을 주장한데 반해, 테슬라는 교류시스템을 주장했다. 그로 인해 두 사람은 적대관계가 되었다. 물론, 토머스 에디슨이 워낙 위인으로 소개되어 많은 사람들이 그의 업적을 찬양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리고 현재는 테슬라의 주장이 옳은 것으로 판명났고, 그래서 현재 전류시스템은 교류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베토벤과 아이작 뉴턴 같은 위인들도 독신으로 살았다. 철학자 중에서는 플라톤이 독신으로 살았는데, 그는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세계 3대 악처(소크라테스의 크산티페, 모차르트의 콘스탄체, 톨스토이의 소피아)가 있는데, 그 중의 제일은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이다. 유명한 철학자 중에는 독신으로 산 사람들이 꽤 많은데, 그들은 철학을 공부하면서 소크라테스의 악처에 대한 이야기를 지겹도록 들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바울 사도는 독신으로 살았다. 독신으로 산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 때에 누가 보고 싶을까? 가족이 있는 경우는 물론 배우자나, 자식들이 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독신의 경우에는 가족이 없으므로, 동료나 친구가 보고 싶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그 모습을 바울에게서 발견한다.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가 보고 싶었던 것 같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9). 여기에는 스푸타솔그리고 타케오스라는 헬라어가 쓰이고 있는데, 이것을 풀어서 말하면, “모든 노력을 다해, 재빨리 오라는 뜻이다.

 

모든 노력을 다해, 재빨리 오라고 말하고 싶은, 이렇게 간절히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또는 이렇게 보고 싶다고 말할 때, ‘모든 노력을 다해 재빨리와 줄 사람이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런 사람은 성공한 인생을 산 것이다.

 

바울의 마지막 소망과 인사가 담긴 본문에는 신앙생활 또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들어 있다. 신앙생활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신앙생활은 삶과 분리된 어떠한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우리의 삶, 현실이기 때문이다. 실제 신앙생활(교회생활)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 때문에 시험에 들거나 신앙을 후퇴시키지 말라. 사회초년생은 이런 질문을 한다. “세상이 왜 그래요?” 세상은 원래 그런 곳이다. 사랑의 아픔을 겪는 청춘남녀는 이런 말을 한다. “ 사랑이 왜 그래요?” 사랑은 원래 그런 곳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가 왜 그래요?” 교회는 원래 그렇다.

 

바울 사도의 신앙의 여정을 보면, 그는 꽃 길만 걷지 않았다. 가시밭 길도 수도 없이 걸었다. 지난 날의 신앙의 여정을 돌아볼 때, 바울에게는 좋은 동역자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동역자도 있었다. 바울은 그러한 것들을 회고하면서, 마지막 인생을 보내고 있다. 본문에서 우리는 그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그는 한때 그의 동역자였던 데마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데마는 단순히 바울을 떠난 것뿐 아니라 신앙을 저버린 상황이다. 매우 가슴 아픈 상황이다. 바울은 그레스게와 디도에 대하여도 언급한다. 같이 있어주길 바랐지만, 이들은 사역이 바빠서 함께 있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중에서, 디도는 참 훌륭한 목회자이다. 개인적으로 동질감을 가장 많이 느끼는 목회자이다.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고 소아시아 등 유럽지역을 다니며 전도할 때 가장 목회하기 힘든 곳은 크레타 섬이었다. 그런데, 디도는 그곳에서 목회를 했다. 그뿐 아니라, 디도는 초대교회(바울 당시) 중에서 가장 어려움이 많았던 고린도 교회에 가서 고린도교회를 정상화시킨 목회자이다. 그는 열심을 다해서 교회를 섬겼던 신실한 목회자이다.

 

바울은 누가와 마가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현재 누가는 바울의 곁에서 바울을 보살피는 중이다. 누가는 바울에 의해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바울과 함께 끝까지 동역한 신실한 사람이다. 그는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도 계속하여 바울을 돌봤다. 그뿐 아니라,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써서 복음을 기록하고 알렸다.

 

마가복음을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가는 제 1차 선교여행 때 바울 일행을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간 인물이다. 아마 그 때는 몸도 마음도 어려서 그랬던 것 같다. 그 일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가 심하게 다툰 후 갈라서는 일이 발생했다. 나중에 마가는 회개하고 열심히 사역해서 바울에게 인정받는 일꾼이 된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부탁하고 있다. 원수 같은 놈이었는데, 이제는 보고 싶은 사람이 된 것이다.

 

바울의 인생에는 정말로 원수 같은 인간도 있었다. 그 중에서 본문에 언급되는 인물은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이다.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니라.” 알렉산더는 구리로 우상을 만들어 팔던 사람이었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복음 때문에 우상을 버리는 사람이 늘어나자, 알렉산더는 바울이 자신의 사업을 방해한다는 생각에 바울을 죽도록 괴롭혔다. 바울은 그에 대한 심판을 주님 손에 맡기고 있다.

 

인생 말년에 바울은 사람만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물건도 보고 싶었다. “내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13). 여기서 말하는 책은 성경책이다. 바울 당시의 성경책은 필사본으로, 두껍고 무거워서 휴대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전도여행을 다닐 때 휴대하지 못했지만, 그는 소중한 성격책을 죽기 전에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보이고 있다.

 

나에게도 소중한 성경책이 있다. 나의 스승이신 Ted Runyon 선생님이 선물로 주신 성경책이다. 1985년 한국 개신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한정판으로 만든 성경책이다. 그 당시 Runyon 선생님은 정동제일교회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고, 그때 받은 성경책을 보관하고 계시다가 나에게 선물로 주셨다 (2005). 성경책이 이러한 문구를 써서 주셨다. “To Junsik Chang, With great wishes for God’s blessings and your success in your further studies. Theodore Runyon” 해석하면 이렇다. “하나님의 복을 빌고, 앞으로의 공부에 큰 성과가 있기를 빈다.” 2016, 선생님은 추천서를 써서 나를 GUT에 보내주셨다. 그리고 1년 후 (2017511), 선생님은 소천하셨다.

 

바울은 가슴 아픈 경험을 털어 놓는다.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16). 어렵고 힘들 때 도와주는 이 없이 모두 떠나 버렸다. 아마도 이것이 독신의 어려움이 아니겠는가. 가족이 없었던 바울의 아픔이 아니었겠나.

 

아픔을 말하면서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감동적인 교훈을 준다. 목회 도중(신앙생활 도중)에 사람들의 배신이나 버림받음을 섭섭해 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에게 복을 빌어주고 용서하는 자세를 보일 것을 주문한다. 왜 그렇게 하라고 하는 것일까? 바울의 신앙고백은 이렇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힘 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맡겨진 사명을 능히 감당하게 해 주시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제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인사를 전하고 있는 네 사람을 주목해보자. 우선 그는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인사를 전한다. 그들 부부는 바울을 위해 목이라도 내놓을 수 있는 헌신적인 동역자였다(16:4). 다음으로 바울은 오네시보로를 언급하고 있다. 오네시보로의 이름의 뜻은 도움이 되는 사람이다. 특별히 디모데후서 116-18절은 오네시보로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데, 바울은 그를 마음을 다해 축복한다. “그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바울이 오네시보로를 이렇게 특별히 생각하는 이유는, 감옥에 갇혔을 때, 오네시보로는 수소문해서 그 먼 길을 찾아와 준 고마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에베소교회에서 봉사를 많이 한 신실한 일꾼이었다.

 

바울은 에라스도와 드로비모를 언급하고 있는데, 에라스도는 고린도에서 구제금을 모이며 주의 일에 헌신한 일꾼이고)19:22), 드로비모는 에베소 교회 출신으로서 에베소 교회의 구제금을 가지고 바울을 따라 예루살렘까지 동행했던 인물이다(고후 8:18). 드로비모와 예루살렘 성내에 있던 바울은 드로비모를 데라고 성전에 들어와 성전을 더럽혔다는 오해를 받고 체포된다 (21:30). 바울과 동고동락을 함께 했던 드로비모는 지금 병들어서 밀레도에서 요양 중이다.

 

바울 사도가 인생 말년에 곁에 두고 싶었던 것은 성경과 사람들(동역자들)이었다. 그는 성경을 사랑했고, 동역사들을 사랑했다. 사랑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은 것이 인생을 돌아보는 사람들의 인지상정이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여러분 곁에는 지금 무엇이 있는가? 사랑, 아니면 다른 것?

 

개인적으로, 세화교회 공식 취임한 지 1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리고 이곳에 와서 목회하기 시작한 지, 20개월이 되었다. 오늘 나는 나름대로 언약을 갱신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전한다. 일년, 또는 20개월을 돌아보며 감사한 것이 참 많다. 우선,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내 곁에 놓아주신 사랑이다. 또한 내가 하나님께서 여러분 곁에 놓아주신 사랑이길 소망한다.

 

앞으로, 그리고 인생을 돌아볼 때, 서로가 서로에게 늘 함께 하고픈, 디모데, 마가, 누가, 브리스가와 아굴라, 오네시보로, 에라스도, 드로비모가 되기를 소망한다. 바울 사도가 이러한 동역자를 곁에 둔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행복해 했던 것처럼, 나도 여러분이 내 곁에 있어서 행복하다. 우리 함께 힘 주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이 시대에 크게 쓰임 받는 세화 공동체를 세워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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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