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와 신앙2012. 6. 14. 00:35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말 /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라는 뜻

 

춘추시대 말엽, ()나라 헌공은 괵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통과국인 우나라 우공에게 통과허락을 요청했습니다. 우나라의 현인 궁지기(宮之寄)는 헌공의 속셈을 알고 우왕에게 이렇게 간언했습니다. '괵나라와 우나라는 한몸이나 다름없는 사이오라 괵나라가 망하면 우나라도 망할 것이옵니다. 옛 속담에도 수레의 짐받이 판자와 수레는 서로 의지하고(輔車相依),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脣亡齒寒)고 했습니다. 이는 바로 괵나라와 우나라의 관계를 말한 것입니다. 결코 길을 빌려주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뇌물에 눈이 어두워진 우왕은 그럴리 없다고 듣지 않았습니다. 궁지기는 후환이 두려워 '우리나라는 올해를 넘기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가족과 함께 우나라를 떠났습니다. 진나라는 궁지기의 예견대로 그 해 말 괵나라를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도 정복하고 우왕을 사로잡았습니다.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들이 즐비합니다. 긍극적으로는 음양의 조화로 그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순망치한한 관계에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겠으나, 그 중 가장 중요한 관계는 말씀과 기도의 관계가 아닐까 합니다.

 

많은 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말씀 없이 기도하는 것에 익숙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기도는 특별히 기독교에만 있는 의식이 아니라 모든 종교가 지니고 있는 의식입니다. 기도가 없는 종교는 종교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습니다. 샤머니즘조차도 기도 의식이 있지 않습니까? 기도는 인간이 절대적인 존재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의식인 셈이죠.

 

그렇다면 타종교의 기도와 기독교의 기도가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말씀이라는 겁니다. 말씀에 의지해서 드리지 않는 기도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기도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건 종교의 보편적인 의식에 불과합니다. 말씀에 의지해서 드리는 기도란 내 머리에서 생각나는 대로, 그리고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드리는 기도가 아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드리는 것입니다.

 

말씀에 의지한 기도를 드릴 때 우리의 기도는 비로소 나의 욕심을 채우는 기도, 소원을 이루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거룩한 기도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있는 곳에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우주 만물이 있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 존재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그 무엇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 마귀의 역사가 되고 마는 것이지요.

 

기도해서 무엇인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고,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삶이 윤택해지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할지, 우리를 죽음으로 이끌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하는 기도는 무엇을 이루어낼지 분명하게 압니다. 하나님은 참된 생명이시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기도는 분명 생명을 일구어 낼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를 떼어놓지 마십시오. 서로 한 데 어울리게 하십시오. 생명이 피어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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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