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2015. 9. 20. 00:32

J의 달밤

 

달 밝은 밤

나는 분명 발가벗고 바깥에 서 있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 중 아무도

나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건 미스터리가 아니다

곁눈질조차 없던 그 거리에서

나는 뚝 뚝 녹아 내리는 달빛을

온 몸에 받으며

달빛 뒤로 숨을 수 밖에 없었다

 

같은 일이 반복되는 건 슬픈 일이다

미안해서 슬픈 게 아니라

잊혀지기 때문에 슬픈 것이다

 

내가 사는 세상에 소풍 오는 천사들은 없었다

나에게 눈길을 주던 그 처녀는

장님이 되어버렸고

나에게 말을 걸어주던 그 청년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더 이상 상대방에게

욕망의 대상이 되지 않을 때

인간은 비로소 늙는다

 

달 밝은 밤 발가벗은 채로

나는 얼마나 더 힘들어야 하나

얼마나 더 부끄러워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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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