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7. 2. 13. 17:13

가까운 말씀

(신명기 30:11-20)

 

내가 살던 조지아 컬럼버스 근처에는 미국의 제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의 생가가 있다. 언젠가 주일학교 여름성경학교 프로그램의 하나로 아이들과 함께 그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거기에 가면 한 가지 생각 밖에 안 든다. “정말 개천에서 용났네.”

 

거기는 아직까지 시골이다. 지미 카터 생가를 가면 그의 삶에 대하여 여러 가지 장식과 스토리가 전시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의 학창시절에 관한 것이다.

 

우선, 교장은 학생들에게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서 많이 강조했다고 한다. 그 교장의 이름은 Julia Coleman인데, 그는 이런 말을 했단다. “Readers make Leaders.” 굉장히 훌륭한 표현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 뭐 이 정도의 뜻이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학생들에게 한 말 중 지미 카터를감동시켰다는 말이 벽에 새겨져 있었는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었다. “Always do your best, someday one of you may grow up to become president.” ‘언제든지 최선을 다해라, 그러면 언젠가 너희 중 누군가는 자라서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도의 뜻이다.

 

나는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머리가했다. 내 일찍이 미국에 살면서 한국의 많은 문화가 얼마나 미국으로부터 수입된 것인가를 깨달았는데, ‘장래 희망: 대통령이라는 것까지수입된문화였는지를 몰랐다.

 

지미 카터 대통령의 어린 시절, 그네들의 장래 희망은대통령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한 정서가 한국 땅으로 건너왔고, 1948대한민국 정부가 탄생한 이래로 대통령이 뽑혔고,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제일의 장래 희망은 그때부터대통령이 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그런 분위기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우리는 초등학생 시절 (1970, 1980년대) 꼭 읽어야 하는 필독서에 단연 위인전기가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들 사이에서는 어떠한 위인처럼 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돌이켜 보면, 나는 그 때 어떠한 위인에게도 마음이 끌리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그저 아버지가 가장 좋았고, 커서 아버지처럼 되고 싶었다. 나는 지금도 아버지처럼, ‘아버지가 된 것에 대하여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아버지처럼 목회하고 있는 것에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아버지처럼 아이들에게 사랑을 듬뿍 주는 아버지가 되고 싶은 게 꿈이고, 아버지처럼 사랑의 목회자가 되고 싶은 게 꿈이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나에게 해주셨던 말씀이나, 또는 아버지가 보여주셨던 행동이나 모습을 떠올리면서 삶을 살아가려고 애쓴다. 누구든지, 마음 속 깊이 남아 있는 사람의 말과 행동은 기억에 남고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도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러한 영향력을 끼치던 훌륭한 인물, 영도자가 있다. 그가 바로 모세이다. 구약성경을 보면,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인물이 두 명 있다. 한 명은 모세이고, 다른 한 명은 다윗이다. 이 둘 중에서, 모세에게 훨씬 더 많은 지면이 할애된다.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그리고 여호수아에서 간접적으로 모세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뿐 만이 아니다. 신약에서 모세는 예수님과 비교되는 인물로 등장한다. 마태복음 같은 곳에서는 예수가 누구냐를 논증할 때 모세를 들어서 비교한다. 이는 모세에게 익숙한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어떠한 인물인지를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함이다. 모세가 애굽의 종살이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영도자인 것처럼, 예수는 죄(죽음)의 종살이에서 인류을 구원한 영도자라는 뜻이다. 이는 예수가 궁극적인 구원자라는 뜻이다. 아마도, 2천 년 당시 유대인들은 모세와 예수를 비교한 복음서를 마음 깊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모세는 죽음을 앞두고, 자기 생명보다 사랑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신 당부의 말씀을 전한다. 상상컨데, 전하는 자의 마음도 절절했고, 듣는 자의 마음도 절절했을 것이다. 사실, 말씀은 이렇게 선포되고 받아야 한다. 절절한 마음으로 전하고, 절절한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그래야, 생명의 말씀이 우리 삶 가운데서 생명을 꽃 피우게 된다.

 

모세가 사랑하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전하는 말씀은 이제 곧 들어가게 될, 가나안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가르침이다. 모세는 두 가지 삶이 있다고 말한다. “생명과 복의 삶, 그리고 사망과 화의 삶. 이 둘 중, 어느 삶을 살고 싶으신가? 당연히 생명과 복의 삶이다. ‘사망과 화의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지금 모세는 이 두 가지 삶 중에서 너희가살고 싶은 삶을 택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이 생명과 복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절절한 마음으로 그 삶을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사실, 모세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하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생명과 복을 주기 위하여 애쓴 것 밖에 없다.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모든 말씀은 이스라엘이 생명과 복을 얻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이 전부이다.

 

출애굽기부터, 신명기까지 생명과 복을 얻기 위한 삶의 가르침에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핵심 말씀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 말씀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16절 전반부). 그러면 생명과 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 말한다.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여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라”(16절 후반부).

 

이 말씀은 이미 신명기의 핵심 말씀이라고 하는 64절에서도 나오는 말씀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토요일 새벽기도회 때 함께 나누는) 여호수아서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모세를 통하여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 또는 그들의 아버지, 그들의 지도자(영도자) 모세가 절절히 전해준 말씀을 어떻게 지키고 순종하여 생명과 복을 얻는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여호수아서를 계속 들여다 봤지만, 거기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말씀이 있다.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라는 말씀이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전쟁을 수행하고, 땅을 분배한다. 여기에서 벗어난 적이 딱 한 번 있다. 그게 바로, 아이성 전투다. 말씀에서 벗어나 행동한 아간때문에 온 이스라엘에게 사망과 화가 미쳤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교훈 삼아, 이전보다 더욱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가나안 땅 정복전쟁을 수행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된다.

 

모세는 사랑하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의 율법(명령)을 지키는 것은 어려운 것도 아니고, 먼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하늘에 있어서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가서 가져와야 할 것도 아니고, 바다에 있어서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우리에게 가져와야 할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가까이에 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담긴 말씀이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14).

 

어떠한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 또는 바다처럼 멀리에 있는가? 아니면 입과 마음처럼 가까운 곳에 있는가? 모세의 이 당부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실제로 우리 입에 있고 마음에 있다는 뜻이 아닐 것이다. 모세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 입에 그리고 마음에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신영복 선생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깝게 있어야 한다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입과 마음에 두어야 한다는 뜻은 바로 이런 것이다.

 

중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한다. 한 젊은 남녀가 서로 사랑하다, 남자가 직장 때문에 멀리 떠났다고 한다. 그 둘은 서로의 애달픈 마음을 전하고자 매일매일 서로가 서로에게 편지를 썼다. 그런데, 서로의 편지를 매일같이 전해주던 우체부가 있었는데, 그 사람은 총각이었다. 결국, 이 여인은 누구와 결혼했는지 아는가? 멀리 떠난 애인이 아니라, 매일 본 우체부 총각과 결혼했다고 한다.

 

가까움이란 이런 것이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에 있는가? 저 하늘에 있는가? 저 바다에 있는가? 아니면, 여러분 가까이, 입과 마음에 있는가? 그 말씀을 매일 같이 만나는가?

 

매일, 가까이 하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분 말마따나, 우리들, 얼마나 서로 자주 보는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보고, 교회생활 열심히 하시는 분들은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은 본다. (이곳에 이사 와서, 뉴비전에 있는 내 친구는 두 번밖에 못 봤다.) 남들이 보면, 이런 말 할 정도다. ‘니네 사귀냐?’ 그렇다. 우리는 사귀는 사이다. 누구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사귀는 사이다. 이것을 그리스도의 사귐이라고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귐이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라고 한다.

 

우리가 이렇게 자주 만나서 무슨 일을 하는가? 교회는 뭐 하는 곳인가? 싸우는 일? 미워하는 일? 먹는 일? 아니다. 교회는 사랑하는 일을 하는 곳이다. 오늘 말씀처럼, 우리는 모여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을 한다. 우리는 모여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일을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려고 모인 것이다. (내가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 아시나 모르겠어요!)

 

나는 부교역자를 맞을 때 한 가지만 당부한다. ‘맡은 일 열심히 해주세요!’ 이런 말 안 한다. ‘전도사님, 저를 사랑해 주세요. 교회를 사랑해 주세요!’ 저도 전도사님을 사랑할게요!’

 

성경에서 모세를 보니까, 무슨 을 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 백성을 사랑한 사람이다. 성경에서 예수님을 보니까 무슨 일을 하신 분이 아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 백성을 사랑한 분이다. 그렇다 보니, 모세는 출애굽 역사를 이룬 것이고, 그렇다 보니,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린 것이다. 출애굽 역사, 십자가, 그것은 사랑이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말씀이 입에 있고 마음에 있다는 것, 말씀이 가까이 있다는 것, 그래서 생명과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은 뜻과 맘과 힘을 다하여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는 교회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게 되는 데, 이것이 교회의 어떠한 일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모은 사랑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도행전 1장에 보면, 먼저 세상을 떠난 가룟 유다의 자리를 메우기 위하여, 새로운 사도 한 명을 뽑는 이야기가 나온다. 두 명이 후보에 오르는데, 한 명은 요셉(유스도)이고 다른 한 명은 맛디아였다. 그들은 기도했고, 제비를 뽑았는데, 맛디아가 뽑혔다. 이들은 이 일을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안 뽑힌 요셉이 기분 나빠서 깽판을 치거나, 요셉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기분 나빠서 깽판을 친 일이 없다. 왜 그랬을까? 맛디아가 뽑힌 것은 성령의 역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게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고, 사랑이다. 우리도 우리가 얼마나 말씀을 가까이 하는 주님의 제자들인지 오늘 회의를 통해서 보여주자. 주께서 우리에게 생명과 복을 더해 주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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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