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7. 8. 15. 14:07

내 아버지는 농부라

(요한복음 15:1-8)

 

얼마전 나파 밸리(Napa Valley)에 다녀왔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지척에 있는 지 몰랐다. 요즘 대중들 사이에서는 포도주 마시는 일이 유행이지만, 개인적으로 포도주든 무엇인든 술 마시는 일에 관심이 없다 보니, 지척에 세계적인 포도주 생산지를 놓아두고도 별 관심이 없었다.

 

성경에는 포도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오늘 말씀도 포도나무에 비유한 말씀이다. 이러한 비유를 좀 더 잘 이해하려면, 포도원에 한 번 가서 포도나무와 가지, 그리고 열매의 상관관계를 유심히 살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일컬어 참포도나무라고 한다. 자신을 참포도나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참포도나무가 아닌 것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참포도나무라는 말은 예레미야서 221절의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찌 됨이냐”.

 

예레미야의 말씀은 이스라엘에 대한 책망이다. 이스라엘은 포도나무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딱 붙어 있어 선한 열매를 맺어야 할 참포도나무 가지인데, 어느덧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이방신에게 딱 붙어 악한 가지가 되어 악한 열매를 맺었다.

 

예수님은 또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아버지는 농부라.’ 우리나라 말로 농부라고 번역했지만, 영어로는 ‘vinedresser’이다. , ‘포도원지기이다. 나는 농부라는 말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더 정겹고, 의미가 더 확실하게 다가온다.


요즘은 농경사회가 아니라, 농부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하다. “農者之天下之大本(농자지천하지대본, 농부가 천하의 근본이다.)”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은 제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 일컬어지고 있지만, 그래서 IT 산업 또는 AI 산업이 대세를 이루고 있어, 우리 사는 이곳 실리콘밸리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지만, 여전히, ‘농자지천하지대본은 유요한 말이다.

 

나는 강남에서 자랐다. 그런데, 내 어린 시절의 강남, 특별히 내가 성장한 우면산 일대 말죽거리 주변은 논밭이었다. 지금도 어린 시절 논두렁 밭두렁, 그리고 야산(우면산)을 뛰어다니던 일이 눈에 선하다. 요즘 아이들은 생일 때 피자 먹고 놀이기구 타고 게임을 하지만, 우리는 그때 생일 때 모여서 밥, 미역국, 잡채 같은 거 먹고, 밖에 나가서 자치기 하면서 놀았다

 

농번기가 되면 동네 아저씨 아줌마들이 바빠졌는데, 친구들과 논두렁에 가서 올챙이 같은 거 잡고 놀다가, 새참 먹을 때 되면 함께 둘러 앉아 새참을 얻어 먹었다. 그리고 동네 농부 아저씨가 태워주는 경운기(딸딸이)는 최고의 놀이기구였다. 한 여름 땡 볕에 벼가 자라고, 장마가 오면 논두렁이 한강물처럼 넘치고, 장마를 이겨내고 가을이 오면 곱게 머리숙인 벼를 수확했다. 그때 등장하는 어린이들의 놀이기구는 탈곡기이다. 그리고, 겨울이 오면 논에 수북이 쌓인, 탈곡을 마친 볖집들을 이용해 본부라는 것을 만들어 그 속에 들어가 놀았다. 지금 생각하면 먼지가 엄청 났을 텐데, 그때는 그렇게 놀아도 비염에 걸리지 않았다.

 

농부가 해야 할 일은 엄청 많다. 곡식을 자라게 하는 일은 참으로 고단한 일이다. 요즘 사람들은 흔히 하던 일이 잘 안 되면, ‘다 때려 치우고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나 짓겠다고 말한다. 농사를 우습게 보는 발언인데, 그러한 발언을 하며 농사 지으러 내려간 사람이 있다면, 얼마 안 돼서 후회하며 다시 도시로 상경할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도 보면, 농부이신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 두 가지 나온다. 가지치기와 가지를 깨끗하게 하는 일이다. 농부 아버지는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를 잘라버리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이 맺게 하기 위해 깨끗하게 하신다. 이것이 어떻게 보면, 요즘 회사에서 성과를 내는 직원은 더 밀어주고, 성과가 없는 직원은 정리해고 하는 것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그게 아니다.

 

3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 졌다!” 예수님께서 열매 맺지 않는 가지는 잘라버린다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과장법과 강조법을 써 말씀을 듣는 제자들의 마음 자세를 환기시키기 위함이다. 우리도 아이들을 훈육할 때 이런 말을 쓴다. ‘너 또 그러면 맴매 맞을 줄 알아!’ 여기서의 강조는 때리는 것에 있지 않고, ‘아이가 말을 잘 듣는 것에 있다. 위의 말씀은 마찬가지 원리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선포를 믿고 감사한다. “너희는 이미 깨끗하여졌다! (You are already clean!)” 같이 해 보자. “나는 깨끗하다!” 내가 어떠한 존재인지를 아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 뚜렷한 사람일수록 인생을 값지게 산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 흐릿하면, 그때 인생은 방황하게 된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이미 깨끗하여졌다!”

 

농부이신 아버지의 할 일은 가지치기와 가지를 깨끗하게 하시는 일이지만, 우리의 할 일은 깨끗함을 유지하는 일이다. 홈리스피플을 가까이서 만나면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인가? 냄새이다. 그들의 몸에서는 왜 그렇게 냄새가 날까? 씻지 않아서이다. 몸을 깨끗이 씻는 일도 쉽지 않다. 몸의 청결은 건강과 직결되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 없다. 우리의 일과를 돌아보라. 빼먹지 않고 하는 일 중에 씻는 일은 반드시 들어간다.

 

오늘 말씀의 논리를 보면, 깨끗해진 그리스도인이 그 깨끗함을 유지하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다. 그것은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생기는 결과가 있는데,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그 열매는 사랑과 기쁨의 열매이다.

 

재독철학자 한병철이 쓴 <피로사회>라는 책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 문명은 평온의 결핍으로 인해 새로운 야만 상태로 치닫고 있다. 활동하는 자, 그러니까 부산한 자가 이렇게 높이 평가받은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따라서 관조적인(사색적인) 면을 대대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인간 성격 교정 작업 가운데 하나이다”(한병철, <피로사회>, 36).

 

이 말은 철학자 한병철이 직접 말한 것이 아니라, 프리드리히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라는 책에서 인용한 것이다. 요즘 철학자들이 현대사회를 바라보며 가장 염려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과잉활동이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활동을 하다 보니,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사색의 삶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자기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은 실제로 버나드 쇼가 자신의 묘비명에 쓴 이 문구를 자신의 묘비명에 새겨 넣어야 할지도 모른다. “내 우물쭈물하다가 이럴 줄 알았다.”

 

사실, 농부가 과잉활동’, 즉 일을 많이 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그렇지 않다. 농부는 해야 할 일만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은 기다림으로 보낸다. 농부는 파종할 시기를 기다리고, 비를 기다리고, 수확을 기다리고, 겨울이 지나기를 기다린다. 농부는 기다리는 동안 땅을 돌아보고 하늘을 바라보고 자기를 돌아본다. 그래서 농부는 겸손하고 간절하다.

 

내가 좋아하는 김경주 시인의 <인형증후군 전말기>라는 시에 이러한 구절이 나온다. “나는 간지럼을 타지 않는다. 밖에서 나를 웃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밖에서 간지럼을 타서 웃는 웃음은 참 웃음이 아니다. 그 웃음은 간지럼이 그치면 그냥 그쳐 버리고 말 웃음이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심각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요즘 TV에서 가장 뜨는 프로그램은 예능 프로그램이다. 가장 인기 있는 연애인도 예능 프로그램을 하는 연애인이다. 요즘 사람들이 예능에 목매는 이유는 예능이 자신들의 삭막한 인생에 간지럼의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누가 간지럼을 태워주지 않으면, 웃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능을 보며 간지럼을 타 웃고 싶은 현대인들의 모습은 처량하기까지 하다.


내 아버지는 농부라”. 이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에는 어떻게 들려오는 지 모르겠다. 나의 마음에는 내 아버지가 농부이시니 나도 농부가 되어야지라고 들려온다. , 반드시 해야 할 일만 하고, ‘과잉활동에서 벗어나, 땅도 돌아보고, 하늘도 쳐다보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농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5). ‘거한다는 것은 머무른다는 뜻이다. 머무른다는 것은 어떠한 공간과 어떠한 시간 안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우리는 몸의 건강을 지키기 위하여 매일같이 거르지 않고, ‘씻는 일에 머무른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이미 깨끗해진우리가 그 깨끗함을 유지하며, 사랑과 기쁨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길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 즉 머무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한 번 돌아보자. 우리는 참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고 있는가.


'바이블 오디세이 I'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유  (1) 2017.09.01
하나님이 하신 일  (0) 2017.08.24
에바브라  (1) 2017.08.11
세화교회로 오세요!  (0) 2017.08.02
미셔널 처치  (2) 2017.07.26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