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7. 7. 26. 16:43

미셔널 처치 (Missional Church)

(사도행전 1:8 / 벧전 2:9)

 

한인이민교회사는 크게 세 곳에서 비롯된다. 모두 구한말 일제시대와 관련된다. 첫째는 일본, 둘째는 중국, 셋째는 미국이다. 일본에서는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한국인교회가 생겼는데, 그들의 도쿄 2.8 독립선언이 한국 본토의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리고, 중국의 상하이와 북간도에 한국인 교회가 생겼고, 미국에서는 하와이와 샌프란시스코에 한국인 교회가 생겼다.

 

어렵고 힘든 시절, 한인이민교회는 한국인들의 정신적인 고향이 되었고, 이민자들은 교회에 모여 예배 드리고, 친교를 나누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고, 고국의 미래를 위해 기도했으며 자신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왔다.

 

이런 저런 이유로 고향을 떠나 타국에 흩어져 나그네처럼 사는 사람들을 디아스포라라고 한다. 바울의 선교는 모두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향한 것이었다. 바울은 이방인의 지역 어디를 가든, 유대교 회당에 들러 복음을 전했고, 복음을 받아들인 이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

 

사도 바울의 서신서 뿐만 아니라, 베드로전후서도 디아스포라를 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리가 함께 나눈 다음 말씀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요즘은 별로 그렇지 않지만, 옛날만해도 고국을 떠난 사람들은 일종의 사연들을 지니고 있었다. 가난, 정치적 환경 등 때문에 고향을 떠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피해의식, 소외감, 좌절감 등이 존재했다. 성경에는 디아스포라에게 주는 메시지가 많다. 대표적으로 구약에는 에스겔서가 있고, 신약에 나오는 서신서들을 대부분은 디아스포라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그 메시지의 핵심은 나그네 생활 속에 놀라운 하늘의 비밀이 있다는 것이다.

 

실의와 절망에 빠져 있는 디아스포라의 입장에서 베드로 전서의 말씀을 다시 들어보라. 우선 디아스포라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선포를 들어보라. “여러분은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들어보라. “여러분이 지금 이렇게 나그네 되어 살아가는 것은 이 어려운 환경에서(어두운 데서) 여러분을 부르셔서 하늘의 놀라운 비밀(기이한 빛)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디아스포라 교회, 우리 이민교회가 살고 번성하는 길은 다른 데 있지 않고, 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이 복음대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복음)’을 선포하는 데 있다.

 

오늘은 7 10일부터 12일까지 있었던 나바호 인디언 선교에 대한 보고를 하면서, 선교적 비전을 공유했으면 한다. (사진)

 

1) 가는 길 - Bastow에서 잤어야 하는데, 놓쳐버려 새벽 2시에 Motel 도착

2) Flagstaff에서 40분 더 들어간 곳, 주소가 없는 곳에 교회가 있음

3) Gray Mountain Bible Church - 나바호인디언교회 중 가장 오래된 교회

                             - 현재 미국 교회들 대부분 철수 (반감때문)

                             - 한인선교사들이 주로 선교 담당

                             - 40만명 중 1%가 기독교인 (4천명 정도)

4) 나바호 인디언들과의 만남 - 아이들 (자녀들을 많이 낳는 편)

                            - 모두 영어권 (나바호 언어는 더 이상 전수 안됨)

                            - 윈드토크라는 영화에 나오듯, 나바호 인디언의

                              언어 덕분에 2차대전 승리로 이끔(암호해독 불가)

-      장애아동 비율이 높음 (약물 복용 후유증, 근친 등)

-      나바호 인디언 대모 (97): 100에이커 기부(선교목적)

-      나바호 인디언 집 방문 사막 한 가운데 있음 / 띄엄띄엄 / 물과 전기 부족으로 고통 당함

-      물이 부족하여 말이 더위에 타 죽어 있는 장면

5) 선교센터 건축 중 - 3년 째 물과 전기 공급 안 되고 있는 중

                    - 연방정부에서 허가를 안 내줌

                    - 여러 가지 내부 사정(정치적 사정)이 있겠지만,

                      생활에 기본적인 물과 전기가 공급이 안 되어 고통 받음

 

강평회 하는 데, 함께 사역한 남자 집사님이 이러한 컴플레인을 하셨다. “우리가 이렇게 와서 애써서 선교를 하는 데, 이들에게는 전혀 감사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이 어떠한 효과의 의미를 가지는 지 잘 모르겠다.”

 

이에 대해 선교사님이 이런 대답을 하셨다. “여러분들은 아주 짧게 왔다 가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뿌린 작은 씨앗이 어떻게 자라나는 지 잘 인식을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매일 곁에서 지켜보는 나의 눈에는 선교활동를 통해 조금씩 변화되어 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니, 자신감을 가지고 선교활동을 하시라.”

 

감리교신학대학교의 교회사를 가르치는 이덕주 교수가 쓴 <한국교회 처음 이야기>라는 책에 보면 이런 일화가 있다. 데이비스라는 호주 선교사가 있었다. 그는 조선 선교를 호소하는 영국성공회 울프 선교사의 글을 읽고 감동을 받아, 조선 선교를 결심한다. 그런데, 영국성공회의 후원을 받지 못하게 되자, 빅토리아 주의 장로교회로 적을 옮겨 목사 안수를 받은 후, 교인들과 주변 친지들의 도움을 받아, 1889 10월 조선으로 선교를 온다.


그는 서울에서 다섯 달 동안 한국어 공부를 한 뒤, 1890 3 14, 선교 목적지인 부산을 향한다. 그는 조선인 어학선생과 짐꾼을 대동하고, 수원과 공주를 거쳐 추풍령 고개를 넘어, 1 5백리를 걸어서, 스무 날에 걸쳐 부산에 도착한다. 그런데, 그는 무리한 여행으로 인해 천연두에 걸리고 폐렴까지 걸려 마지막 닷새 동안 아무 것도 못 먹는다. 그런 상태에서 데이비스는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던 게일 선교사의 집에 도착한다. 그때가 4 4일 금요일 저녁이었다. 게일은 데이비스의 위독한 상황을 눈치채고 곧바로 일본인 병원에 입원시켰으나, 다음 날 그만 죽고 만다.

 

도착하자 마자 죽을 선교 여행을 뭣 하러 가냐고, 말할 수도 있다. 도착하자 마자 죽은 데이비스가 무슨 선교의 결실을 맺은 게 있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데이비스의 죽음의 소식이 그의 누나를 통해서 호주에 전해졌고, 그 소식은 호주장로교인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그들은 그때부터 선교비를 모금했고, 호주장로교회는 적극적으로 조선 선교를 착수했으며, 결국 그 후로 1년 뒤, 매케이, 멘지스, 포셋, 페리 등으로 구성된 개척 선교단이 부산에 도착한다. 그렇게, 부산선교는 시작된 것이다.

 

우리가 읽은 말씀처럼, 선교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사명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네슬리 뉴비긴이라고, 영국의 유명한 선교사, 선교학자가 있다. 이분이 주창한 유명한 선교학적 용어가 있다. “Missio Dei”라는 말이다. 우리 나라 말로는하나님의 선교라고 번역한다. 이 말이 생기게 된 배경은 네슬리 뉴비긴의 선교활동 경험에서 비롯됐다. 뉴비긴은 주로 동남아시아지역 즉,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 등을 선교했는데, 그는 그곳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우리는 흔히, 선교지에 가면, 우리의 선교활동을 통해서 선교가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네슬리 뉴비긴은 말레이지아, 인도네이아 등지에서 자신들의 선교 이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그곳에서 선교하고 계신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그저 하나님이 먼저 하고 계신 선교에 동참할 뿐이었다는 고백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다. 선교는 우리의 사명이지만, 선교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다. 선교는 이미 선교를 그곳에서 시작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행위이다. 선교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는 가장 신비로운 일이다. 그러므로, 미셔널 처치(선교적 교회)가 된다는 것은 선교비 지출을 많이 하고, 선교지에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고, 선교를 많이 다니는 교회가 아니라, 이미 그곳에서 선교를 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가까이서 만나는 교회이다.

 

선교는 교회의 이벤트가 될 수 없다. 선교는 하나님과의 만남이고 하나님과의 교제이고 하나님과의 연합이다. 선교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일이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발견하는 일이다. 선교는 교회의 존재 근거이다. 교회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 안에 있지 않고, 하나님과의 친교 안에 있지 못하면, 그것을 어떻게 교회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교회의 부흥은 다른 데서 오면 안 된다. 교회의 부흥은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것 그 자체이다. 우리 교회가 미셔널 처치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고, 교회가 교회되고, 교회의 참된 부흥을 위해서이다. 우리 모두, 미셔널 처치로 거듭나는 역사를 통해, 하나님을 깊이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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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