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7. 7. 17. 01:54

사랑의 나눔

(룻기 4:7-15)


몬터레이 수족관에서 가져온 사진 바닷새 위장에서 꺼낸 물건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

저러한 쓰레기를 버리면서 그 누구도 나쁜 생각을 품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이거 버리면 새가 먹겠지.. 낄낄”, 이런 생각하며 쓰레기를 버린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하다. 귀중한 생명을 빼앗아가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에는 생각과 배려가 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행동이 누군가(또는 무엇)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성경은 온통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왜 성경은 그렇게 사랑에 대해서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가? 왜냐하면, 사랑의 나눔이 우리에게 생명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은 생명이다.

 

생명은 약탈이고, 자기주장이다. 그렇다 보니, 자기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생명을 가진 존재는 약탈하고 자기주장을 펼친다. 그것이 갈등의 원인이 되고, 죄를 낳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자기 생명을 지키기 위한 약탈이나 자기주장을 넘어서는, 더불어 생명을 풍성하게 누리는 나눔이다. 인간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생명은 필연적으로 약탈이고 자기 주장이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더불어 함께 나누며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그것의 가능성을 보여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자기를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대한 사랑은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감동적인 휴먼드라마이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한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기도원에 들어가 소나무 한 그루를 뽑으려 한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깊은 절망과 고독 가운데로 자기 자신을 밀어 넣는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다 부질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가? 바로, 사랑의 나눔이다. 사랑의 나눔이 있는 곳에 그리스도께서 계신다.

 

사랑을 나누는 방식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어떠한 방식이든 두 가지를 거치게 되어 있다. 사랑의 나눔에는 나의 시간과 수고(노동력)가 들어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정서(감정)가 들어간다. 사랑의 나눔에는 반드시 마음(Heart)’이 들어간다.

 

건강한 사람인지 아닌지, 건강한 교회인지 아닌지를 보려면, 사랑의 나눔을 어떻게 하는지 보면 안다. 건강하지 못한 존재는 무엇인가 채우려고만한다. 그러나, 반대로 건강한 존재는 무엇인가 나누려한다.

 

우리 교회에서 밀알 봉사도 하고, 홈리스 봉사도 하는데, 이러한 일들은 참으로 귀한 일들이다. 복지국가에 살다 보니, 이러한 봉사를 하는 데 많은 에너지가 드는 것도 아니다. 2년쯤 된 것 같은데, 어느 신문사에 이런 기고문을 낸 적이 있다. 복지국가에서의 사랑의 나눔이란 어떤 기관에 찾아가서 봉사하는 것도 사랑의 나눔이겠지만, 무엇보다, 세금을 성실하게 내는 것도 사랑의 나눔이라는 주장의 글이었다. 그 글을 잃고 많은 분들이 공감했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한국의 복지는 아직까지 부족한 면이 많다. 일손이 부족해서 봉사자들의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곳이 많다. 미국으로 오기 전, 교회 청년들과 봉사자들을 데리고 한사랑마을이라는 곳으로 봉사를 정기적으로 갔다. 첫날 가서 있었던 일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한사랑마을은 중복장애자들을 돌보는 기관이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기 혼자 무엇인가를 할 수 없는 아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밥도 먹여줘야 하고, 목욕도 시켜줘야 하고, 대소변도 받아줘야 한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친구가 있다. 김동문. 어떻게 되었는지, 정말 궁금하다. 가자마자 그 친구랑 친해졌는데, 화장실 쪽에서 헝아헝아부르는 소리가 나서 가보니, 똥을 푸지게 싸 놓았다. 그 똥 다 치워주고, 씻겨주고, 밥도 먹여주었다.

 

사랑의 나눔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의 나눔을 멈추지 않고, 힘써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곳에, 사랑의 나눔이 있는 곳에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이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사랑의 나눔이 대표적인 방식 중 하나가, ‘기업 무를 자였다. 남편이나 아들이 모두 죽은 여인네들은 그 당시 살아갈 길이 없었다. 그러나, ‘기업 무를 자라는 율법을 통해서 그들은 생명을 유지할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기업 무를 자를 시행해야 할 당사자가 그것을 시행하느냐 마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보듯이, 보아스는 기업 무를 자의 율법(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하게 시행하는 것을 본다. 절차를 지키며 신속하게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인 기업 무를 자의 사랑의 나눔을 시행한다. 보아스의 사랑의 나눔으로 인해 실질적인 혜택을 입은 자들은 룻과 나오미이다. 그러나, 보아스의 사랑의 나눔에는 놀라운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룻기는 족보로 끝난다. 그 족보의 마지막을 보면 이렇다.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룻기 4:21-22). 보아스의 사랑의 나눔 가운데 결국 다윗 왕이 태어난다. 우리가 알다시피, 다윗 왕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다. 보아스의 사랑의 나눔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계신 것을 본다.


(예화) 

1880 년 여름 미국 메릴랜드에서 있었던 일이다. 가가호호 방문해서 물건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가난한 고학생 젊은이가 있었다. 그렇게 온종일 방문판매를 다녔기 때문에 저녁 무렵에는 온몸이 지칠대로 지쳤고 배도 고팠다. 하지만 주머니에는 다임(10센트) 동전 하나밖에 없었다. 그 돈으로는 뭘 사먹을 수도 없었다. '다음 집에 가서는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해야지.' 젊은이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계십니까?"

현관 문을 두드리자 어여쁜 소녀가 나왔다.

부끄러움이 많은 젊은이는 차마 배고프다는 말은 못 하고 물 한 잔만 달라고 했다. 그러나 소녀는 젊은이가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알았고, 큰 잔 가득 우유를 담아 왔다. 젊은이는 그 우유를 단숨에 마셨다. 그러자 온몸에서 새로운 힘이 나는듯 했다. "우유값으로 얼마를 주면 될까요?" 소녀는 이렇게 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우리 엄마는 남에게 친절을 베풀면서 돈을 받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이 말에 큰 깨우침을 얻은 젊은이는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했다.

그동안 공부하면서 학비 마련이 너무 힘들어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했던 젊은이는 그날 우유 한 잔의 배려로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는 새로운 힘을 얻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흘렀다.

성인이 된 소녀는 그만 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 도시의 병원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중병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그래서 큰 도시에서 전문의를 모셔와야만 했다. 그 의사의 이름은 하워드 켈리, 소녀에게 우유 한 잔을 얻어 마신 바로 그 젊은이였다. 켈리 박사는 환자를 보고 단번에 그 소녀임을 눈치챘다. 그리고 모든 정성과 의술을 동원해 그녀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정성이 통했던 것인지 중병임에도 마침내 치료에 성공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여인은 퇴원을 앞두고 치료비 청구서를 받았다. 비용이 엄청나게 나올것이라 걱정하며 청구서 봉투를 뜯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 있었다. "우유 한 잔으로 모두 지불되었음." 이 하워드 켈리는 미국 존스홉킨스병원 설립자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다. 실제로, 보아스의 사랑의 나눔 덕분에 룻을 통하여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았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그 혈통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다. 사랑의 나눔이 있는 곳에 예수 그리스도(하나님)께서 계신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 우리 교회에서 앞으로 더 많은 사랑의 나눔이 있기를 소망한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사랑의 나눔을 풍성하게 해나가는 일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그리스도(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믿고, 우리 교회에 앞으로 더 많은 사랑의 나눔이 있게 해달라는 소망을 담아, 이 찬양을 함께 부르자.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예수님께서 계시도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성령님께서 계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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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