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7. 1. 19. 18:41

세례와 시험

(마태복음 3:13-4:11)

 

오늘은 주현절 후 첫 번째 주일이다. 16일이 주현절인데, 주현절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드러난 일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세상에 드러나는 일은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성경은 동방박사 이야기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어떻게 세상에 드러났는지를 알려준다. 왕의 별을 보고 헤롯 대왕을 찾아가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있냐고하면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세상에 드러냈지만, 그 일 때문에, 아기 예수님은 죽을 위기에 처했다가 천사의 현몽으로 인해 위기를 모면한다.

 

주현절기 동안 우리는 계속해서 예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과 함께, 이 세상에 그리스도로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된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은 예수님이 세례 받는 장면이다. 세례를 통해서 예수님은 누구인지 그의 정체를 세상에 드러내신다.

 

그런데, 예수님이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은 굉장히 모순된 일이다. 세례는 일반적으로 죄 씻음의 행위이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인데 왜 세례를 받으셨을까?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님이 성령에 이끌려 시험을 받았다는 것도 굉장히 모순된 일이다. 시험은 일반적으로 연약한 피조물이 받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왜 시험을 받으셨을까?

 

우선, 다른 이들이 세례를 받았던 이유와 예수님이 세례를 받았던 이유에 차이가 있다. 다른 이들은 죄사함을 얻기 위하여 세례 요한에게 나아와 세례를 받았지만,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나아와 세례를 받은 이유는 15절 말씀 때문이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이유는 죄 씻음을 위한것이 아니라, ‘의를 이루기 위함이었다. ‘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인데, 이는 하나님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는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그 분의 뜻을 가리킨다. 그게 무엇인가? 구원이다. 예수님은 세례 받는 것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시는데, 이제 그가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를 행하시는 분으로 자기 자신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세례는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 예수님이 세례를 받았다는 건 사람과 똑같은 길을 걸었다는 뜻이다. 이것을 성육신이라고 한다. 이는 기독교 신앙의 중심을 말하는데, 하나님과 본질이 동일한 분인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과 동일한 한계를 갖고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다.

 

둘째, 예수님의 세례 사건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겠다는 표시이다. 세례는 단순히 죄의 씻김만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향한 결단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다가오는 운명 앞에서 결단해야만 한다. 그 운명은 십자가이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거부할 수도 있었다. 복음서는 제자들이 십자가의 길을 가는 예수를 뜯어 말린 이야기를 보도한다. 그때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16:23).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례를 거부할 수도 있었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었고, 십자가 죽음을 피할 수도 있었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게 그런 유혹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운명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순종했다. 그래서, 세례는 순종과 똑같은 말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이야기 바로 뒤에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 받으신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고,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세례를 통하여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 예수님이 시험 받으신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주는 말씀이다. 왜 그런가?


세상에 정체가 드러나면 시험을 당한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전혀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이, 예수를 믿고 나서 많은 시험이 닥치는 것을 종종 본다. 조그마한 일에서 감당할 수 없는 큰 일까지 일어난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교회 가다 큰 사고를 당해서 두 딸은 잃은 분도 있다. 그분은 교회 가다 그런 일을 당해서 무서워서 더 이상 교회를 못 다니겠다고 말한다. 처음에 말했듯이, 예수님도 아기 예수 때 동방박사를 통해 세상에 정체성이 드러났을 때 죽을 위기에 처해졌었다.

 

교회 오는데 아무 일 없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적어도 여러분은 예수 믿는데 있어 마귀의 극심한 방해를 벗어난, 어느 정도 단계에 올라 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어려움을 이겨내더라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평생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들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시험 받으시는 예수님의 이야기에서 본다.

 

첫째로,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은 배고플 때,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이다. 이것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의 실패를 생각나게 한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배고픔을 느끼자,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그들을 죽이려 한다. 그리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먹고 사는 문제가 걸리면, 우리는 쉽게 신앙을 포기하려 든다. 그러한 유혹은 우리의 신앙을 끊임 없이 괴롭힌다. 그럴 때다,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둘째로,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은 성전 꼭데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시험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였다. 우리도 끊임 없이 이러한 유혹을 받는다. 특별히 예수를 잘 믿는 이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오류이다. 주의 일을 하면서 우리는 수도 없이 하나님을 시험한다. ‘하나님, 내가 주님께 헌신했으니까, 나한테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 요구한다. 그러면서 그러한 것을 안 들어 주면, 교회를 떠나겠다고 협박한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신앙 또는 헌신을 빌미 삼아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불경스러운 일이고,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오늘 말씀에서도 나오지만, 시편 9111절과 12절에서 하나님은 믿는 이들에게 이러한 약속을 하신다.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시편 91:11-12). 이것 뿐만이 아니다. 주님께서 해 주신 약속도 있다. “너희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 없이,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시험한다. 그러한 마음이 들 때마다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세 번째로,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은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이다. 예수님께 드리운 시험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불의하지만 손쉬운 길을 택하느냐, 아니면 그 길을 단호하게 거부하느냐의 문제이다. 이스라엘은 끊임 없이 이러한 시험을 받았다. 가나안 땅에서 살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신을 택할 것을 끊임 없이 유혹 받았다. 대표적인 예가, 아합 왕과 이세벨 왕비의 이야기 이다. 그들의 제사장과 하나님의 제사장 엘리야가 한 판 대결을 벌이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끊임 없이 하나님이 아닌 것에 경배하도록 유혹 받고 강요 당한다. 우리가 실제로 어떻게 기도하고 있는가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주님의 뜻을 이루어 주소서,라고 기도하지 못하고, 무엇인가를 자꾸 달라고 기도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이루어 보겠다는 놀부 심보에 불과하다. 그런 마음이 들면, 우리는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우리 스스로에게 우리의 정체성을 물어보자.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뜻은 단순히 교회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구원을 경험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정말 그런가? 정말로 우리는 다른 것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구원을 경험한 사람들인가?


사람은 무엇인가에 정신이 팔리는 이유는 그것을 할 때, 그것을 통해서, ‘살아 있다고 느끼지 때문이다. 마약하는 사람이 왜 마약하는가? 그거 할 때 살아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돈 버는 데 미친 사람이 왜 돈돈하는지 아는가? 돈을 셀 때, 돈 냄새 맡을 때 살아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각자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보라. 왜 그 일을 하는가? 그거 할 때 살아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 아닌가? 그것을 통해서 구원을 경험하기 때문이 아닌가? (~ 살 것 같아.)

 

예수님의 세례 이야기와 광야에서 시험 당하신 이야기는 우리의 정체성과 그 이후에 우리가 어떠한 일을 겪게 되는 것과 그 결과가 무엇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 정체를 밝히면, 시험을 당한다. ‘저는 시험을 안 당하는데요라는 분은, 두 가지 중 하나다. ‘귀신이거나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거나.’

 

시험을 당하거든,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보다 먼저 시험을 당하신 주님께서 도우신다. 그리고 그분은 그 시험을 물리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다. 1)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2)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3)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리의 구원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만 온다. 우리는 이것을 경험했고 고백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우리를 세례를 받은 것이고, 시험도 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긴다.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른 것에서 구원을 경험시켜 주겠다고 하는 시험과 유혹을 물리치고, 언제나, 어느 때든지,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께만 구원이 있음을 선포하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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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