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4. 7. 3. 04:32

순종 - 사는 길

창세기 28

(창세기 26:1-11)

 

아브라함의 시대는 가고, 이삭의 시대가 왔다. 아버지가 죽고 자기 자신만 남았다는 것은 이제 자기 자신이 삶의 어려운 결정들을 홀로 감당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우리 삶에는 어려운 일들이 참 많다. 감당해야 할 어려운 일들도 많지만, 선택해야 할 어려운 일들도 많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힘든 일 중에 하나는 올바른 선택이다. 어떤 선택이 내 삶을 온전하게 이끌 것인가?

 

아버지 아브라함이 죽고 나서, 이삭에게 어려운 문제가 닥쳤다. 아버지 때처럼 기근이 닥친 것이다. 이 기근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삭에게는 굉장히 큰 도전이 되었을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처럼 하고 싶은 심리가 있다. 왜냐하면 자라면서 아버지로부터 보고 들은 것이 아들에게는 일종의 전설로 새겨지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행동과 말은 아들에게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한다.

 

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삭은 아버지의 삶의 여정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을 것이다. 그 중 하나가, 그 옛날 기근이 일어났을 때 아버지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가서 겪은 일과 거기에서 아버지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은혜를 받았는지에 대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이 겪은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삶의 지혜를 하나씩 전수해 주었을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그러한 가르침을 마음 속에 간직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이삭은 아버지 때처럼 기근이라는 어려움을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이삭이 어떤 생각을 했겠는가? 당연히 아버지의 가르침을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기근이 왔을 때 아버지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내려갔었다. 이삭은 그 일을 기억하고 자신도 가족들을 거느리고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했다. 그래서 여장을 꾸려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랄이라는 지역에 이르렀다. 거기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을 만났다.

 

그런데 성경은 그랄 땅에서 이삭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이렇게 명령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2).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내렸던 약속의 말씀과 같은 것이다. “이 땅에 거류하면”, 즉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에 거주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겠다는 약속이다.

 

순종은 참 신비스러운 것이다. 이삭은 아버지가 일러준 삶의 지혜에 순종했다. 그래서 그는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이삭은 참된 지혜인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순종의 가치를 잘 모른다. 순종은 불편하고 오히려 자신의 삶을 제한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명령하시는 것이라면 모를까, 부모든 스승이든 지도자든 사람들이 하는 말에 순종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길 때가 많다.

 

물론 때로 순종이 부조리해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순종의 가치는 그 순종을 통해서 얻게 되는 이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그 마음 자체에 있다. 하나님은 그 마음을 보신다. 이삭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했다. “기근이 나면 애굽으로 내려가라!” 하나님은 아버지 말씀에 순종한 이삭의 마음을 보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그가 나아갈 바가 무엇인지 온전히 가르쳐 주신다.

 

하나님이 이삭에게 지시하신 사항은 그가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랄 땅에 머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매우 두려운 일이었다. 그 이유는 아내 리브가 때문이었다. 그랄 사람들이 이삭의 아내 리브가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리브가의 아름다운 외모 때문이었다. 이렇게 어려운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이삭은 고민됐다.

 

그런데 이삭의 고민은 아버지의 해결 방법과 똑 같은 것이었다. 그 옛날 아버지 아브라함도 기근 때문에 애굽에 내려갔을 때 아내 사라를 자신의 누이라고 속인 일이 있었다. 물론 이삭은 아버지로부터 기근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사건도 들었을 것이다. 이삭은 아버지처럼 자기의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인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아버지 아브라함의 처신이 생각났던 것이다.

 

이삭이 그렇게 한 이유는 두려웠기 때문이다. 가벼운 두려움이 아니라, 생명의 위협을 느낀 두려움이었다. 치안과 사회적 안전망이 잘 갖추어진 나라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의 위협이 무엇인지 마음에 잘 와 닿지 않겠지만, 실제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인간은 말할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그런 경우에 이성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는 생각으로 위기를 극복하려 드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방어체계이다.

 

아내를 누이라 속이는 것은 이성적인 생각이나 행동은 아니다. 그런데 생명이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는 우선 살고 봐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무엇이든지 생명을 건질만한 변명을 에둘러대는 것이 상식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아버지가 일러준 삶의 지혜가 크게 작동한다. 그 결과, 이삭은 자신의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 속이고, 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누이라 속인 것 때문에 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는 있었지만, 리브가를 누군가에게 실제로 빼앗길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한 위험 속에서 이삭은 리브가와 사랑을 나눈다. 그런데 우연히 블레셋의 왕 아비멜렉이 그것을 목격한다.

 

순종의 힘은 여기서 발휘된다. 일이 상식적으로 흘러가지 않고,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흘러간다.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것을 알게 된 아비멜렉의 상식적인 행동은 누이라고 속인 이삭에게 책임을 물어 그를 처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이 상식적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 일로 인해 이삭은 오히려 두려움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된다.

 

이삭과 리브가의 사이가 부부 사이라는 것을 확신한 아비멜렉은 이삭을 왕궁으로 부른다. 그리고 이렇게 따져 묻는다. “그가 분명이 네 아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으냐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할 뻔하였도다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9, 10). 이에 대해 이삭은 솔직한 심정을 말한다.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9).

 

일의 정황을 모두 파악한 아비멜렉은 이렇게 선포한다. “이 사람이나 그의 아내를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11). 애굽 땅이 아닌 그랄 땅에 거주하게 된 이삭과 리브가가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순간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순종의 가치를 발견한다. 순종이 바로 사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순종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순종을 배웠다. 그리고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배운 순종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그 자체가 구원이다. 실제로 이삭은 삶 속에서 순종을 통하여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된다. 신비롭다.

 

생명의 위협 속에서 벌벌 떨던 이삭과 리브가는 순종을 통해서 마침내 안위를 보장 받는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기에 어쩌면 이삭은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이 사는 길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가 전해준 인생의 지혜에 순종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되고, 실제적인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그랄 땅에 거주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이삭은 오히려 거기서 안위와 평안을 맛보는, 그야말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인생을 살게 된다.

 

순종은 어렵지만, 어려운 길이 아니다. 오히려 순종은 죽을 것 같지만 사는 길이다. 무엇이 나를 살게 할 것인가 고민될 때 두 눈 딱 감고 순종하는 것이 오히려 사는 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를 그냥 놓아두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에게 사는 길이란 다른 것에 있지 않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곧 사는 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만나주신다.

 

순종의 신비는 십자가에서도 나타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그런데 거기에서 참으로 신비로운 일이 발생했다. 그것이 바로 부활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순종에 살고 순종에 죽는다. 순종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자는 순종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순종이 곧 사는 길이다. 순종의 신비가 우리의 인생을 신비롭게 이끌어 줄 것이다. 사는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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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