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7. 3. 9. 06:51

아그네스의 기도

(벧전 5:7 / 4:6-7)

 

지난 수요일, 재의 수요일 예배를 시작으로 우리는 사순절에 들어섰다. 재의 수요일 예배를 통해 우리는 너희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사순절 동안 세 가지에 힘쓰기로 했다. 그것은 기도와 절제와 선한 일(사랑의 일)이다.

 

사순절 동안 우리는 왜 이 세 가지 일에 힘써야 하는가? 오늘은 우리가 힘써야 할 세 가지 일 중, 기도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제목을 아그네스의 기도라고 붙인 것은 미학적인 의미 때문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알아보려고 하는 핵심 내용은 기도란 무엇인가?’이다.

 

아그네스의 기도라는 제목을 듣고 기도하는 아그네스라는 노래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노래의 가사 중 이런 내용이 있다. “어차피 인생은 바람인 걸 / 누구나 날리는 꽃잎인 걸이 노래의 가사도 너희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는 말씀과 의미적인 면에서는 다르지 않다. 그만큼 누구나 인간은 인생을 덧없음으로 인식한다는 뜻이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의 이름은 공교롭게도 김세화이다. 또다른 곡, ‘야생화’ – ‘난 한적한 들에 핀 꽃,… 나를 돌보는 사람 없지만 나 웃으며 피었다네, 음율의 쇼팽의 야상곡 같다)

 

어느 기사에서 매력적인 사람이 갖춘 몇 가지 요소들을 본 적이 있다. 6가지 정도를 기억하는데, ‘(내면의 힘), 연약함을 인정하는 겸손, 따뜻함, 너그러움, 다정함, 그리고 침착함이 그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매력적인 신앙인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매력적인 신앙인은 어떠한 요소들을 갖추고 있을까? 단연 기도의 능력을 갖춘 자가 매력적인 신앙이라고 생각한다.

 

기도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최근 미국에서 ‘War Room’이라는 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다. 종교 영화임에도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극장에서 관람한 관계로 적지 않은 수입을 올린 영화이다. 조지아에서 목회할 때, ‘문화의 밤이라고, 함께 모여 영화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국제시장볼 때 모두 눈물을 훔치며 본 기억이 있다. ‘War Room’을 볼 때도 많이 은혜 받고 도전 받았다. 예술적인 측면에서는 별로 큰 점수를 못 받은 영화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기도에 대한 많은 영감과 도전을 준 영화이다.

 

최근 작성된 시간 사용에 대한 통계를 보니,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시간을 쓰고 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한국인은 잠을 보통 8시간 잔다고 한다. 밥을 2시간 먹고, 노동을 4-5시간 한다고 한다. 그리고 여가시간은 5시간이고, 남자는 가사노동을 39분하고, 여자는 3시간 25분 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중에서 눈에 띄는 항목이 있었다. 독서에 관한 것이었다. 한국인은 보통 하루에 얼마큼 독서를 하는지 아는가? 평균 6분이다. 작년 통계에 의하면, 한국인은 가정 당 일년 평균 1권의 책도 구입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어떤 나라는 일년에 17 패러그래프(문단) 읽는 나라도 있다. 여러분은?)

 

나는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인가?’ ‘나는 얼마나 기도생활을 하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 기도를 하다 보면, 기도의 양도 중요한 것 같다. 어떤 통계를 보니, 미국 목회자들은 하루 평균 20분 정도 기도하는데 반해, 한국목회자들은 하루 평균 1시간 정도 기도를 한다. 그리고 2012년 한국 기독교인의 평균 기도시간은 24분으로 밝혀졌다. 물론 이것은 통계이기 때문에,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더 많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덜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예수님이 애제자 셋을 데리시고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가 되도록기도하실 때에 몇 시간을 기도하신 줄 아는가? 그 이야기를 전하는 복음서에 보면 세 제자들과 따로 떨어져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와서 그들이 기도하지 않고 졸고 있는 것을 보시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14:37-38).


예수님은 이렇게 세 번 제자들에게 오신다. 그것을 계산해 보면,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3시간 기도하신 것 같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최소 기도 시간은 1시간이신 것 같다. 물론 매일 3시간 내지 1시간씩 기도하면 좋지만, 적어도, 중요한 일을 앞두고 그 정도 기도하는 것은 신앙의 양심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러나, 무조건 기도 시간을 채우려고 앉아 있는 것은 참으로 무의미하다. 의미를 모르면 지루한 법이다. 기도가 무엇인지, 왜 기도가 중요한 것인지, 알고 나면 기도하지 말라고 해도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기도란 무엇인가?

 

성경에 나오는 기도에 관한 구절을 모두 찾은 뒤, 그 구절에서 말하는 기도의 의미를 간추려 보면, 다음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기도는 믿음이다. 이것은 매력적인 사람의 요소 중 내면의 힘과 일맥상통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11:24). 이 말씀에 보면, ‘믿으라고 한다. 믿음은 내면의 힘이다. 어떠한 신념도 없는 사람만큼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기도는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넘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과, 우리를 위해 하고 계신 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실 일을 믿는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행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 없이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기도가 아니라, 이방인의 기도일 뿐이다.

 

둘째, 기도는 간구이다. 기도는 겸손한 마음이다.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7:7-8). 주께서 말씀하신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이것은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실존의 문제이다. 우리의 필요를,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주시길 주님께 왜 간구하지 않는가? 다른 사람에게 구하면 구걸이지만, 아버지께 구하면 사랑이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다른 사람인가, 아버지인가?

 

셋째, 기도는 감사이다. 기도는 따뜻한 마음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기도는 항상 기뻐하는 마음,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간다. 내 삶이 기쁘고, 감사가 넘치는 삶인지 아닌지 아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기도생활을 보면 안다. 한탄만 하고 있는가, 아니면 주님께 기도하고 있는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매력적이듯이, 기쁨과 감사 가운데 기도하는 자가 매력적인 신앙인이다.

 

넷째, 기도는 용서이다. 기도는 너그러운 마음, 다정한 마음이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어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11:25). /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2).

 

기도 가운데 일어나는 용서의 역사는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용서에는 두 가지 용서가 있다. ‘구하는 용서와 해주는 용서가 그것이다. 우리는 대개 기도하면서 용서를 구한다. ‘주님, 잘못했어요. 죄송합니다.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기도할 때 우리는 주님께만 죄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 누군가 나 때문에 마음이 아픈 사람이 있다면, 기도하며 바로 그 사람에게도 용서를 구한다.

 

또한, 기도하며 나에게 잘못한 이들을 용서해 준다. 대개 사람들은 이것을 잘하지 못한다. 자기가 한 잘못은 용서해 주기를 바라면서, 남이 자기에게 잘못한 일은 절대 용서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우리는 기도할 때, ‘주님, 저에게 나쁜 짓을 한 그 죽일 놈을 벌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지, ‘주님, 저에게 바쁜 짓을 한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매일 외우는 주기도문에서 보듯이, 주님이 원하시는 용서는 우리가 하기 더 어려운 용서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했듯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지 못하면서, 주님께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뻔뻔한 일이다.

 

다섯째, 기도는 책임이다. 기도는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는 것이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이라”(삼상 12:23). 이것은 사무엘이 선지자와 사사의 직위에서 물러나면서(즉 은퇴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말이다. 성경 등장하는 믿음의 선조들은 모두 사무엘만큼 책임감이 투철했다. 책임감 있는 지도자는 기도한다. 책임감 있는 신앙인은 사명(교회를 위해서 세상을 향해서)을 위해서 기도한다. 책임감 있는 부모는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자기 인생에 책임감 있는 사람은 자기의 인생을 위해서 기도한다. 기도는 책임감의 지표다.

 

나는 목회자 자녀이고 나 자신이 목회자라 세상적인 기준에서 보면 가난한 자이고,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것은 신앙의 유산 밖에는 없지만, 인생이 힘들 때 힘이 되는 것은 언제든지 나를 위해 기도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시던 부모님의 책임감이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빨간 밍크 담요 깔고 밤새껏 기도하시던 엄마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제 엄마는 너무 늙으셔서 젊으실 때 하던 대로 그렇게 기도하지 못하시지만, 아직 비교적 젊으신 장모님은 요즘도 하루도 거르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무슨 일 있을 때는 금식기도원 가서 몇 일을 금식하시며 기도하신다.

 

기도는 종교행사나 자기 탐욕의 수단이 아니다. 기도를 종교행사나 자기 탐욕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자들은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해도 소용 없다. 그런 자가 기도하면 뭐하는가, 기도하고 나서도 탐욕의 눈길이 치솟는데. 기도는 그런 것이 아니다. 기도는 삶 속에서 매순간 하나님께 의지하고 삶을 맡기는 믿음이고, 주님만 바라보는 순결이고, 주 안에서 누리는 감사이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러한 충고를 한 적이 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에게서 돌아서라!”(딤후 3:5). 이 시간, 나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 드리고 싶다. “기도의 모양은 있으나, 기도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에게서 돌아서십시오!”

 

초대교회 교부였던 암브로시우스의 기록에 보면, ‘아그네스라 불리는 처녀가 있었다. 291,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칙령을 내려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다. 그 시대를 살던 아름다운 아그네스는 많은 남성들로부터 청혼을 받았다. 그러나, 아그네스는 하나님께 동정을 지키기로 서원했다. 아그네스를 사모하던 많은 남성들 중, 로마제독 셈프로니우스는 아그네스에게 사랑을 거절 당하자 앙갚음을 하기 위해 아그네스가 그리스도인인 것을 폭로하고 그를 처형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처녀를 처형하면 안 되는 법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아그네스를 발가벗겨 매음굴로 보내 버린다. 아그네스는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는데, 머리카락이 자라서 벗겨진 몸을 가려주고, 그녀에게 손대려고 하는 자의 눈이 머는 일이 발생했다. 그 후, 그녀를 화형에 처하려고 했으나 장작에 불이 붙지 않고, 불 속에 던졌으나 불꽃이 양쪽으로 갈라져 그의 몸이 상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목이 베어 순교를 당했다고 한다.

 

나에게는 기도에 대하여 이러한 모토가 있다. “하나님 앞에서 울고, 사람 앞에서는 웃자.” 속상한 일, 억울한 일, 힘든 일이 있거든, 모두 주님께 가지고 와서, 그 앞에서 울면서 기도하라. 그리고 사람 앞에서는 웃으라. 반대로 하면 안 된다. 사람 앞에서 속상한 일, 억울한 일, 힘든 일을 토로하면 원수만 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토로하면 위로를 받는다.

 

우리는 사순절을 보내고 있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무엇보다 기도의 능력이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기도의 모양은 있으나, 기도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에게서 돌아서십시오.” 그리고, 기도의 능력을 믿고, 기도의 능력을 회복하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4:6-7).

 

 

기도

주님, 이 시간 결단합니다. 기도의 모양은 있으나, 기도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에게서 돌아서서, 기도의 능력을 믿고 주님께 기도하는 신실한,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겠나이다. 기도는 믿음이고, 간구이고, 감사이고, 용서이고, 책임인 줄로 믿사오니, 기도의 능력을 믿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를 만나 주시고, 우리의 모든 간구에 응답해 주옵소서. 우리에게 기도의 본을 보이시고, 구원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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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