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7. 3. 23. 09:13

여호와 닛시

(승리는 어떻게 오는가?)

(출애굽기 17:8-16)

 

여호와 닛시는 여호와는 나의 깃발(the Lord is my banner)’이라는 뜻이다.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이긴 후, 모세가 제단을 세우는데, 거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모세는 그것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 위해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기념하기를 원했다.

 

이 전투는 르비딤에서 벌어진 전투였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르비딤에 장막을 쳤는데, 문제는 그곳에 물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 문제로 모세와 크게 다투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17:2-3).

 

모세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반석을 치라고 말씀하신다. 모세는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반석을 치고, 반석에서는 물이 터져 나온다. 그래서 르비딤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는 이름으로도 불렀다. ‘시험, 다툼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은 광야를 지나며 이렇게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하고, 다툼을 일으켰다. 그냥 대충 봐도 별로 은혜롭지 못한 상황이다. 계속되는 시험과 다툼은 결국 가데스 바네아 사건에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어진다. 시험과 다툼을 일삼은 출애굽 1세대는 광야에서 모두 죽게 되고, 가나안 땅에 결국 들어가지 못하는 심판을 받는다.

 

물이 없던 르비딤에 물이 생겼다. 사막의 물은 금보다 귀한 것이라 주변에서 이것을 가만히 놓아둘 리가 없다. 오늘 말씀 8절은 그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아말렉이 쳐들어 왔다. 당연히, 물이 나는 르비딤을 차지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전쟁 방식이 흥미롭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싸우라 명하고, 자신은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산에 올라가겠다고 말한다. 매우 독특한 전쟁 방식이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명령대로 사람들을 선발하여 아말렉과의 전투에 임하고, 모세는 아론과 훌과 함께 전쟁 상황을 지켜볼 수 있는 산 위에 올라 전쟁을 관망하며 하나님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기도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전쟁의 판도가 모세의 손이 들려 있는지 내려가 있는지에 따라 달라졌다는 것이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11).

 

그 상황을 곁에서 지켜보던 아론과 훌이 좋은 방책을 낸다. 모세가 계속하여 팔을 들고 있을 수 없게 되자 그들은 돌을 가져다 모세를 앉히고 자신들이 각각 한쪽 팔을 붙잡고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않게 붙들어 준다. 그리하여 결국 여호수아는 아말렉을 무찌른다.

 

여호와 닛시승리를 상징한다. 전쟁터에서 깃발은 지휘관이 그곳에 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깃발이 하늘 높이 치솟아 있는 한, 병사들은 죽을 힘을 다해 싸운다. 그러나, 깃발이 쓰러지면 지휘관이 죽었거나 적에게 잡힌 줄로 알고 싸움을 포기하게 된다. 모세는 자신이 하나님의 지팡이를 높이 들고 있는 것을 전쟁터에 나간 이스라엘 군대에게 보여줌으로써 전쟁의 지휘관이신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상수이다. 이 상수와 함께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변수가 있다. 그 변수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승리할 수 있을까? 승리는 어떻게 오는 것일까?

 

논어 이인편 15장에 다음과 같은 공자와 증삼의 대화가 나온다.


子曰參乎! 吾道一以貫之.” 曾子曰.” 子出.

자왈삼호! 오도일이관지.” 증자왈.” 자출.

 

門人問曰何謂也?” 曾子曰夫子之道, 忠恕而已矣.”

문인문왈하위야?” 증자왈부자지도, 충서이이의.”


뜻을 풀이하면 이렇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증삼), 나의 도는 하나로 꿰뚫는다.”

증자가 말했다. “맞습니다.”

공자께서 나가시자 문인들이 물었다. “무엇을 말씀하신 겁니까?”

증자가 말했다.

선생님의 도는 충()(성심성의를 다하는 마음)과 서()(남을 배려하는 마음)일 뿐이구나!”

(논어, 김원중 옮김, 글항아리, 87)

 

오늘 말씀에서 배울 수 있는 승리의 비결은 논어에서 나오는 충과 서로 풀이할 수 있을 것 같다. 종합해 보면, 승리의 비결은 세 가지이다. 1)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 2) 성심성의를 다하는 마음, 3) 남을 배려하는 마음. 이 중에서 1번은 상수이고, 2번과 3번은 변수이다. 1번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 상수이고, 2번과 3번은 우리가 하는 일이라 변수이다.

 

맛사 또는 므리바 물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광야의 이스라엘은 이 부족했다. ,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는 것을 성심성의 다해믿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계속 시험했고, 모세와 더불어 다투었다.

 

그러나,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높이 드는 행위를 통해서 전쟁에 임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을 보이도록 도왔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여호와의 깃발이 높이 올려 있는 동안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것은 상수이다. 이 상수를 성심성의를 다해믿는 것이 이다. 우리에게는 이 있는가? 그야말로 충심을 다해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우리가 우리 삶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종류의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성심성의를 다해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목에도 걸고, 귀에도 걸고, 집에도 걸고, 차에도 걸고 다니는 이유는 장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믿기 위함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팡이이다. 갈보리 산 위에 십자가가 세워진 이상,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들은 을 다해, ‘성심성의를 다해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또 한 가지, 승리를 위해 중요한 변수는 ()’이다. 이것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배려했다. 나이 든 모세가 나가서 싸우는 것보다 한 창 젊은 여호수아가 나가서 싸우는 게 맞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배려한다. 여호수아를 혼자 전장에 보내고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앉아 있었던 것이 아니라,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가지고 전쟁터가 잘 보이는 산에 올라 그것을 높이 들고 기도하며 여호수아와 함께 했다.

 

아론과 훌은 모세를 배려했다. 모세가 아론과 훌에게 돌을 가져오라고 명령한 것이 아니다. 아론과 훌이 모세의 옆에서 딴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아론과 훌은 모세 곁에서 모세의 행동을 유심히 살폈고,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모세의 손이 올라가 있으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모세의 손이 내려가면 이스라엘이 지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늙은 모세의 손이 얼마나 오랫동안 올라갈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아론과 훌은 지혜를 발휘한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든 모세의 손이 계속 높이 들려 있게끔 하기 위하여 그들은 돌을 가져다 모세를 앉히고, 모세의 손을 양쪽에서 붙든다.

 

사실, 우리가 ()’까지는 잘 할 수 있다. 그런데, ‘()’까지는 잘 못한다. 자기를 위해 기도하고, 자신을 위해 누군가 기도해 주기를 바라면서도, 정작 자기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들의 삶을 돌보는 데는 어려워하고 힘들어 한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삶을 돌아보자. 삶의 여러 가지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우리들은 언제나 말씀 안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 승리를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그 세 가지 중, 하나는 상수이고, 다른 두 개는 변수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것은 상수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수도 우리가 충으로, ‘성심성의를 다해믿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믿지 않으면 입에서 불평과 불만만 나오고, 결국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인해 오는 복을 누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상수가 상수되게 하는 것은 결국 이다. 우리가 성심성의를 다해 그것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잘 못하기 때문에 신경을 더 써야 하는 것이 바로 ()’이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그것이다. 나는 이 시대에 우리의 인생을 승리로 이끄는 데 있어 가장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이것을 너무도 자주 간과해 버리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아론과 훌이 되어 주어야 한다. 특별히 공동체(가정 공동체, 교회공동체)는 서로가 서로에게 아론과 훌이 되어주지 못하면 세워져 가기 힘들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는 마음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반드시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1) 여호와 닛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2) 성심성의를 다해 믿읍시다.

3) 서로가 서로에게 아론과 훌이 되어 줍시다.

4) 승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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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