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5. 6. 4. 07:29

요셉의 지혜

창세기 58

(창세기 46:28-34)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는 사랑과 관련 있다. 그 상대가 무엇인지는 상관 없다.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단절될 때 인간은 슬퍼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사랑이 단전될 때 인간은 더욱 슬퍼한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수많은 슬픈 사랑의 이야기들이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를 위한 장미>라는 단편 소설이 있다. ‘섬뜩한 사랑을 그린 소설로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몰락한 미국 남부의 명문가의 마지막 후예인 에밀리는 아버지가 죽은 뒤 시에서 세금면제의 예우를 받으며 남부의 자존심의 대명사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의 도로 포장공사의 현장감독으로 온 호머 베른이라는 호탕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남부 귀족의 딸과 한갓 북부 노동자에 불과한 그들의 사랑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에밀리는 약국에서 쥐약을 사고, 상점에서 남자용 옷가지도 사들인다. 그러한 에밀리의 행동에 마을 사람들은 못마땅한 듯 수군거린다. 그 날, 호머 베른이 에밀리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지만 그 뒤로 그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남자가 여자를 버리고 떠난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 이후, 마을 사람들은 가끔 창문 안쪽에서 에밀리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뿐, 시간이 흘러 그녀의 머리카락은 철회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에밀리는 마침내 세상을 떠난다. 마을 사람들은 에밀리의 장례를 위해 그녀의 집으로 몰려 가는데, 그들은 굳게 닫혀 있던 2층 방 침대에서 오래된 백골 한 구가 웃는 모습으로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의 곁에서는 누군가 계속해서 누워 있었던 것처럼 움푹 들어간 자리를 발견한다. 마을 주민 중 한 사람이 베개에서 머리카락 한 올을 들어 올렸는데, 그것은 에밀리의 철회색 머리카락이었다.

 

사랑의 마음은 이렇게 집요하다. 마을 사람들의 수군거림 때문에 연인과의 사랑이 좌절을 겪게 되자, 에밀리는 쥐약으로 연인 호머 베른을 죽인 뒤, 자신의 침대 위에 눕혀 놓고 그의 곁에서 평생을 지냈던 것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고통 때문에 독약을 마시고 죽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슬픈 사랑의 이야기보다 더 애절하고 섬뜩한 사랑의 이야기이다.

 

반대로, 세상에서 가장 기쁘고 즐거운 일도 사랑에 관한 것이다. 인간은 마음껏 사랑을 나누게 될 때 한없는 행복에 젖는다. 인간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더불어 이루어진 사랑 이야기이다. 오늘 우리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신파극 한 편을 보게 된다. 아들이 죽을 줄로만 알고 통한의 세월을 살았던 아버지 야곱과 당당하게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되어 나타난 아들 요셉의 재회이다.

 

20여년이 지난 뒤, 극적으로 만난 아버지와 아들은 목을 어긋맞춰 안고 오랜 시간 동안 펑펑 운다. 이들의 울음에는 단순히 보고 싶은 그리움만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리움보다 더 큰 아픔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 야곱의 눈물에는 자식을 잃은 참척의 고통이 담겨 있었고, 아들 요셉에게는 형들에게 버림 받은 상처의 고통이 담겨 있었다. 이들의 눈물은 그 어느 눈물보다 뜨거웠다. 살아 있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고통 중 가장 큰 고통을 겪은 후 흘리게 되는 눈물이 다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이들의 재회는 기쁨보다 아픔이 앞섰다.

 

눈물은 마음의 고름이다. 육체에 상처가 났을 때 고름이 차오르듯이, 마음에 상처가 나면 눈물이 차오른다. 육체에 고인 고름을 다 짜내야 상처가 낫듯이, 마음에 고인 눈물을 다 흘려야 마음의 상처가 낫는 법이다. 육체의 고름을 짜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듯, 마음의 고음을 짜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고름도 무르익어야 짜내지는 법이다. 지금, 야곱과 요셉의 마음의 고름은 무르익어 철철 흘러나오고 있다.

 

마음의 고름을 다 짜내어 아픔이 진정되자, 야곱은 아들 요셉에게 감동적인 말을 한다.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30). 한을 품으면 눈 감기 어렵다. 눈을 감아야 할 때 망설임 없이 눈을 감을 수 있는 것만큼 복된 삶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그러한 축복 가운데 눈을 감는 사람이 얼마큼이나 되겠는가. 후회 없는 인생을 살고 싶어도 그게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연약함인 것 같다.

 

야곱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믿음의 조상의 반열에 오른 것은 바로 이러한 축복을 하나님께 받았기 때문이다. 그의 입에서는 감사의 언어가 흘러 나왔다. 이보다 아름다운 언어가 어디에 있겠는가.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 이것은 신앙인들이 사는 동안 끊임 없이 하나님께 간구해야 할 복이다. 오늘 눈 감게 되더라도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라는 감사의 고백을 할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복된 것이다.

 

재회의 기쁨도 잠시, 요셉은 아버지가 거느리고 온 70명의 식솔을 먹여 살려야 하는 책임감 때문에 아버지와 형들을 위한 현실적인 계획을 마련한다. 애굽의 바로 왕은 전에 말하기를 너희의 기구를 아끼지 말라 온 애굽 땅의 좋은 것이 너희 것임이니라고 했지만, 아버지 야곱은 양과 소와 모든 소유를 이끌고 내려왔다. 애굽 왕은 야곱 가족들에게 몸만 와도 된다고 했지만, 목축업이 가업인 야곱은 식솔들뿐 아니라 모든 가축들도 끌고 내려왔던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요셉은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야만 했다.

 

요셉의 계획은 매우 지혜로운 것이었다. 우선, 그는 애굽 왕에게 자신의 아버지와 형들이 왕의 윤허대로 애굽 땅에 도착한 것을 보고하면서 이렇게 말하고자 했다. “그들은 목자들이라 목축하는 사람들이므로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를 이끌고 왔나이다.”(32). ‘몸만 오라고명령했던 애굽 왕의 명령에 반하여 야곱은 모든 소유를 이끌고 왔는데, 이것은 애굽 왕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요셉은 애굽 왕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그들이 몸만 오지 않고 모든 소유를 이끌고 온 이유를 설명한다. 그들은 목자들, 즉 목축업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요셉은 아버지와 형들에게 애굽 왕이 너희의 직업이 무엇이냐묻거든 목축업을 하는 자들이라고 대답하라고 가르쳐 준다. 그러면서 단순히 목축업을 하는 자들이 아니라, 대대로 목축업을 하는 집안 인 것을 강조하라고 말한다.

 

요셉이 이렇게 계획을 꾸민 이유는 그래야 아버지와 그의 식솔들이 고센 땅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고센 땅은 목축업을 하기에 좋은 땅이었다. 게다가 애굽의 총리 대신의 가족들이 대거 애굽 땅으로 이주해 온 것을 모든 사람이 환영해 줄리 만무하다. 사람들은 경제적 이해관계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히면 거칠어지는 법이다. 요셉의 가족들이 목축업을 하는 목자라는 것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힌 자들에게 안심할 수 있는 조건이었을 것이다. ‘목축업을 하는 목자라는 말은 그들이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애굽인들과 히브리인들이 함께 섞여 사는 것은 많은 갈등을 일으킬 것이 뻔했다. 오히려 이렇게 따로 떨어져 사는 것이 평화롭게 사는 방법이었다. 일례로, 종교적인 측면에서 애굽인들은 소를 신성시한 데 반해 히브리인들은 소를 잡아 제사를 드렸다. 한쪽에서는 소를 신성시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자신들이 신성시 하는 소를 죽여 제사 드리는 데 사용한다면, 이는 불 보듯 뻔한 갈등을 유발시키는 요소였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다른 사람이 사소하게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 법인데, 종교적인 문제에서 그런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끔직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 뻔하다.

 

요셉의 계획은 매우 지혜로웠다. 이렇게 요셉이 지혜로운 계획을 마련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주된 관심사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요셉의 주된 관심사는 자신의 총리 대신 자리를 보존하는 것도 아니고, 부와 명성을 유지해 가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개인적인 꿈을 펼치는 것도 아니고, 애굽의 왕에게 충성하는 것도 아니었다. 요셉의 주된 관심사는 아버지와 그의 모든 가족이 애굽에서 안전하게 지내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요셉이 자기 가족만 챙기겠다는 가족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실현하는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셨다.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요셉에게 가족을 지키는 일은 단순히 가족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신앙의 문제였던 것이다. 게다가 야곱은 애굽으로 이주를 결심한 뒤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렸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음성을 듣지 아니했던가.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46:3).

 

지혜는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가질 때 생겨난다. 요셉에게 당면한 문제는 아버지와 그들의 가족들의 안전이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큰 민족을 이루려면 가족들의 안전이 가장 중요했다. 바로 그것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가지고 집중했을 때 요셉에게서는 가족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지혜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살면서 지혜롭지 못할 때가 많다. 지혜롭지 못하여 일을 그르치고 한탄의 세월을 보내게 될 때가 있다. 그러한 때를 생각해 보면 모두 지혜롭게 일을 대처하지 못해서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기 자신의 이익에만 몰두하다 보면 잠깐은 자신에게 이익이 될지 몰라도, 결국에는 더 큰 일이 발생하며 공멸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기와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드리는 데 부름 받는 자들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자가 아니다. 그리스도교에는 그러한 저급한 신앙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곧 나 자신의 이익이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생명과 평화이다. 요셉이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는 하나님의 뜻에 집중할 때 지혜가 생겨 모든 가족들을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했듯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생명과 평화의 뜻을 마음 속에 품고 집중한다면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생명과 평화’, 여기에 집중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요, 하나님의 지혜를 폭포수 같이 받게 될 것이다.

 

www.columbuskmc.org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