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6. 9. 18. 08:14

(중보) 기도 사역

(디모데전서 2:1-7)

 

그리스도인에게 단순히 기도는 필요한 것을 아뢰는 청탁이 아니다. 기도는 사역(ministry)이다. 사역이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우리가 이어서 (ongoing)’ 하는 것이며, 성령을 통하여 위탁 받아 교회 공동체가 하는 일이다.

 

그래서 초대교회에서는 기도의 사역이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았다. 초대교회는 기도를 철저하게 성령의 사역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성령을 받지 않은 자들에게는 기도 사역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8:26).

 

초대교회의 전통에서, 어떠한 사람이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3년 간의 신앙교육 과정을 마쳐야 했는데, 3년 동안 매일 같이 아침 저녁으로 기도에 참여해야 했다. 그런데, 그 기도 시간에 기도를 드릴 수 있는 (offer)’ 사람은 오직 세례를 받은 자들이었다. 세례를 받기 위해 신앙교육 받는 자들은 따로 마련된 공간에서 세례 받은 자가 드리는기도를 지켜 보았다.

 

세례 교육자들은 그처럼 세례 받은 자가 기도 드리는것을 지켜보면서 기도에 대하여 배웠고, 지켜보는 동안 나도 얼른 세례 받아서 저렇게 기도 사역에 참여 해야지라는 열망을 가졌다. 그리스도인에게 기도는 원래 이렇게 거룩한 사역이고, 성령의 사역이고, 열망의 사역이다.

 

디모데전후서는 교회를 위한 서신이다. 교회와 교회를 섬기는 자들이 무엇을 해야하는 지를 알려주는 지침서이다. 교회는 독립단체가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는 혼자서 따로 주님을 위해무엇을 하는 지체가 아니다. 교회는 주님 안에서’, 주님에 의해무엇을 하는 지체이다. 교회는 철저하게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 종속되어 있다. (‘종속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감이 좋지않아 반감이 생길 수 있으나, 그것은 종속이라는 말에 대한 이 세상에서의 경험이 뒤틀려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독교 전통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아버지에 대해서 매우 좋지 않은 경험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에 대하여 거리낌이 있는 것과 같다. 그러한 반감은 이 세상에서의 불의한 경험 때문일 뿐, 그 단어가 지칭하고자 하는 의도는 그러한 불의한 경험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봐야 한다. 세상에서 누군가의 종이되는 일은 속된 말로 더럽고 치사한 일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의 종이 된다는 것은 기쁘고 즐거운 일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녀로 인정하시고 사랑해 주시기 때문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가 해야 하는 사역에 대하여 말해준다. 본격적인 가르침이 시작되는 디모데전서 21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한글 성경도 그렇고, 우리가 자주 보는 영어 성경(NIV, NRSV)도 그렇고, ‘첫째로 (First of all)’로 번역하고 있지만, 더 정확한 번역은 가장 중요한 것은이다. 그러니까, 바울이 디모데에게 교회 사역에서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above all or the most important thing is…)’기도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기도의 대상은 모든 사람이다. 기도가 필요한 사람이 있고, 기도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따로 있지 않다. 우리는 모든 이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모든 이들은 우리의 기도가 필요하다. ‘저 사람은 나의 원수이기 때문에 기도를 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충분히 깨닫지 못한 자이다. 다른 말로 해서, 믿음이 적은 자이다. 그리스도의 몸(지체)가 된 그리스도인은 모든 이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처럼 모든 이들을 위해기도해야 할 운명 (또는 사명)’에 처해진 자이다.

 

바울은 기도의 종류를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 네 가지로 나눈다: 간구(deesis 디시스, supplication)는 특별히 바라는 것이 있을 때 간구하는 기도이다(an appeal for a a particular need). 기도(proseuche 프로슈케, prayers)는 보통 탄원기도를 지칭한다. 탄원기도가 무엇인지는 시편이 잘 보여준다. 시편의 대부분이 탄원기도이다. 억울한 것, 나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신원해 주시고 해결해 주시기를 바라는 기도가 탄원기도이다. 쉽게 말해,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 기도이다. 도고(enteuxis 엔튝시스, intercessions)는 긴급하고 담대한 요청의 기도를 말한다. 흔히 중보기도라 부른다. 예를 들어, 갑자기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긴급하게 드리는 기도이다. 감사(eucharistia 유카리스티아, thanksgiving)는 은혜에 보답하는 고마움을 표시하는기도이다. 우리가 주께 드리는 기도는 이 범주 안에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거나 자신의 뜻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기도한다면서 하나님께 삿대질 하면서(또는 욕하면서)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 덴마크의 유명한 실존 철학자요 신학자인 키에르케고르의 아버지 미카엘 페데르센 키에르케고르가 그랬다. 그는 어렸을 때 하도 힘들고 어렵고 사업이 안 되서 언덕에 올라 하나님께 삿대질 하면서 기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이후에 사업이 너무도 잘 돼서 그는 큰 부자가 되었다. 그는 그것을 기도의 응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불경스럽게도 하나님께 욕하고 삿대질 한 것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아 그렇게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사건 때문에 키에르케고르의 아버지 미카엘은 평생 우울하게 살았고, 그 우울 기질이 막내 아들이었던 쇠렌 키에르케고르에게 물려졌다고 생각했다. (혹시 이런 동일한 경험을 가지고 계신 분은 심각하게 자신의 기도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믿는다면, 우리는 함부로 하나님 앞에서 불경스러운 기도를 드릴 수 없다.

 

2절 말씀에는 언뜻 보기에 이해하기 쉽지 않은 기도 사역이 나온다. 바울은 기도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기도하라고 권면한다. 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 이유를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2). 언뜻 보면,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기도는 일종의 아부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한국이나 미국이나 국가조찬기도회가 이 말씀에 근거해서 실행되고 있다. 거기에는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과 기도를 통해서 관계를 잘 맺어 놓아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그들에게서 이익(유익)을 취하고자 하는 처세술이 엿보인다. 그러나 2천 년 전 로마제국 시대의 맥락에서 이 말씀을 살펴보면, 이것은 단순히 처세술이 아니라 복음의 전파이고 로마제국(특별히 황제)에 대한 신앙적 도전이다.

 

주전 510년 경에 세워진 로마는 원래 제국이 아니라 공화국이었다. 두 사람의 집정관이 공동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그러한 체제를 유지해 오다, 주전 4~-50년 경, 우리가 잘 아는 율리우스 시저 때에 그 체제가 무너지고, 로마는 한 명의 황제가 다스리는 제국형태로 통치체제가 바뀐다. 시저가 죽은 후, 시저의 신격화가 진행되는 데, 이는 황제를 통한 통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정치적 술수였다. 로마는 점차적으로 황제의 신격화를 진행하는데, 마침내 황제는 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고, 이 땅에 임한 구원자(메시아)’가 되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자인 황제의 보호 아래 들어온 모든 이들은 다른 누구가 아닌 황제에게 기도를 드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문의 말씀처럼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위하여기도하는 일은 로마황제의 보호 아래 있는 제국의 백성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황제 에게기도해야지, 황제를 위하여 기도하는 일은 반역이고 이단이다. 그런데 지금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그 반역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말하기를 황제(왕들이나 고관들)에게 기도하지 말고, ()위하여기도하라고 한다. 이것은 그 당시 매우 파격적인 기도의 혁명이다. 잘못하다가는 로마당국에 의해 반역자로 몰려 죽을 수도 있는 기도의 혁명이다.

 

우리의 기도 대상은 다른 그 무엇이 될 수 없다. 우리의 기도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에게 이러한 신앙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5).

 

이것은 개신교가 가톨릭을 이단으로 정죄할 때 쓰이는 기도신학(말씀)이다. 가톨릭 기도 전통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에게 드리는 기도가 있다. 개신교에서는 바로 이것이 가톨릭의 이단적 요소라고 지적한다. 기도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어야 하는데, 가톨릭은 마리아를 기도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보기에는 어떤가? 기도 신학 측면에서 보면 가톨릭이 이단인가 아닌가?)

 

물론 여기까지만 보면, 가톨릭은 이단이다. 그런데, 그것은 가톨릭의 신학을 깊이 알지 못하는 데서 온 오해이다. (나는 가톨릭의 대변자가 아니다. 다만 잘못 오해하고 있는 것을 바로 잡고 싶은 성실하고 정직한 개신교 목사일 뿐이다.) 우선 가톨릭 기도 신학에 있어서, 마리아는 기도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도 기도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왜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일까? 마리아가 구주 예수 예수님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마리아에게 하는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와 동일한 성질의 것이 아니라, 일종의 겸손의 표현이고 청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죄인으로서 겸손한 마음에 직접 하나님(예수 그리스도)에게 아뢰지 못하고, 예수님의 어머니에게 부끄럽게 청탁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마리아를 통하여 기도를 아뢰는 가톨릭의 기도 신학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씻음 받았다면, 부족하지만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것도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권리와 의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차마 주님께 직접 아뢰지 못하고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서 아뢰는 그 겸손한 마음은 배워야 한다. 담대함과 뻔뻔함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또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다. 우리는 누구 에게 기도하고 있는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다. ‘국가조찬기도회처럼 기도처세술처럼 오용하면 안 된다. 기도는 처세술이 아니라, 신앙고백이요 성령을 통한 교회의 사역이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기도 사역을 통하여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계속수행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자기 자신을 대속물(ransom)로 내어 주어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중보하여,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도록 하는 것이었다. 기도 사역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어 받아, 하나님의 뜻(모든 사람이 구원 받는 것)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기도는 단순히 무속신앙인이 하는 것처럼, ‘비나이다 비아니다하면서 하나님께 우리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기도란, 자기 자신을 대속물로 내어 주어 하나님의 뜻(모든 사람이 구원 받는 것)을 이루는 일을 계속 (ongoing)’해서 하는 교회의 중차대한, 가장 중요한 사역이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으며 끝낸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아멘.

 


예수를 간구하는 기도

 

당국자들(고관들)에 의해서 상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여,

우리 안에 오셔서 세상의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옵소서.

 

들에 핀 백합화를 돌보시고,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 아시며,

모든 만물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신비를 드러내신 예수여,

우리 안에 오셔서 이 지구를 위하여, 이곳에 생명을 내린 모든 것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옵소서.

 

잃은 자를 찾으시는 예수여,

우리 안에 오셔서 잃은 자를 위하여 기도하게 하옵소서.

 

가난한 자와 배고픈 자, 슬피 우는 자와 핍박 당하는 자의 복된 소식이신 예수여,

우리 안에 오셔서 주의 나라로 우리를 이끄시 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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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