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7. 10. 12. 08:33

지성소로 나아가라

(시편 7:1-17 / 히브리서 9:1-12) 


출애굽기는 애굽에서 탈출한 역사만을 기록하고 있지 않다. 출애굽기는 크게 세 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있는데, 출애굽 하는 이야기(여기에는 홍해가 갈리는 이야기가 핵심)와 시내산 언약 이야기(여기에는 십계명이 핵심), 그리고 성막에 관한 이야기(성막과 제사장이 핵심)이다.

 

상징적인 관점에서 출애굽기를 보면, 출애굽기는 신앙인의 삶의 여정이 담겨 있다. 출애굽하는 일은 묶여 있는 어떠한 것(, 또는 악, 즉 생명을 억압하는 것)으로부터의 해방을 말한다.

 

<매트릭스> 영화를 예를 들어 설명하면, 애굽에서의 삶은 기계가 인간을 가상현실에 가둔 것과 같다. 매트릭스에 갇힌 인간은 기계가 설정해 놓은 가상 현실에서 살아가며 자신이 실제로 살아 있다고 행복하다고 거짓 현실에 만족하며 산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매트릭스에 갇힌 인간은 기계에게 에너지를 강제로 빼앗기며 갇혀 사는 것에 불과하다.

 

애굽은 인간의 거짓된 삶을 고발한다. 그곳에서 그들은 그들이 주는 고기와 밥을 먹지만, 그들은 그들의 노예로서 하나님이 주신 풍성한 생명을 조금도 누리지 못하며 산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그것 자체가 죄이다.

 

모세는 그러한 거짓 현실을 애굽의 노예로 살아가는 이스라엘에게 고발하고 그들을 깨우쳐 그곳에서 그들을 이끌고 나오는 역할을 맡는다. 매트릭스 영화에서는 모피어스가 그 역할을 한다. 영화에서 모피어스는 매트릭스 안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갇혀 사는 니오에게 진실을 알리고 그를 가상 현실에서 빼 내온다.

 

죄악의 삶에서 나오기로 결단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 부어진다. 그들의 앞을 가로 막는 홍해가 갈라지는 역사를 경험한다. 우리가 살면서 죄악의 삶으로부터 떠나겠다는 결단을 못해서 그렇지, 일단 결단하고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나오면,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다시 주저 앉고 말 것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다음 단계로 가게 된 곳은 가나안 땅이 아니라 시내산인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내산에서 벌어진 일은 그들과 하나님 사이의 계약 사건이다. 계약은 당사자 간에 서로 인식 또는 인정(recognition)’하는 의식(ritual)이다. 이는 자녀가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엄마, 아빠를 인식하고 인정하는 작업이라고 보면 된다.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한 것은 다른 우상이 아닌, 살아 계신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다. 누가 나의 구원자인가, 누가 나의 창조자인가를 인식, 인정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엉뚱한 데 가서 예배 드리게 된다.

 

그리고 계약은 하나님 입장에서 이스라엘이 당신의 백성, 당신의 자녀라는 것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과정이다. 그것이 확인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은 헛된 것이 될 것이다. 내 백성, 내 자식인 줄 알고 한량없는 은혜를 베풀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탄의 자식이면 어떡하나.

 

그리고, 등장하는 것이 성막에 관한 이야기이다. 성막은 가나안 땅 또는 하늘나라에 대한 눈에 보이는 형상(visible sign)’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가나안 땅(나중에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도성이다. 하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과 함께 창조의 원래 모습대로 선하고 아름답게 사는 나라이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의 본문은 다윗이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면서 자신의 의로움을 호소하는 시이다. 그가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할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다.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장이시다의로우신 하나님은 의인은 구원해 주시지만, 악인은 심판하신다. 그러한 하나님께 구원해 달라고 요청하는 다윗은 자신의 의로움을 구원의 근거로 제시한다.

 

다윗은 이렇게 호소한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아벨, 불의, 불공평, 폭력)이 있거나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 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시편 7:3-4).

 

그러면서 다윗은 이렇게 간구한다.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시편 7:8). 성막(나중에 성전)은 이러한 의의 간구가 실현되는 곳이다. 성막은 의로움을 가리는 죄를 씻어내고 의를 회복하는 곳이요, 의로움을 회복한 하나님의 백성이 의로우신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이다.

 

히브리서는 구약적 제사와 제사장 제도에 익숙한 히브리인(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성경이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구약의 제사와 제사장 제도가 어떻게 극적으로 바뀌었는지 복음을 전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죄를 씻고 의로운 상태로 의로우신 하나님을 만나던 장소인 성막은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짐승을 잡아 피의 제사를 드리는 바깥뜰, 성소, 그리고 지성소이다. 오늘 우리가 읽은 히브리서 9장은 출애굽기 25장 이후에 나오는 성막을 간략하게 묘사하고 있다.

 

히브리서의 설명에 따르면, 첫째 장막 안에 있는 곳을 성소(the holy place)라 하고, 둘째 장막(휘장) 뒤에 있는 곳을 지성소(the most holy place)라고 한다. 히브리서는 둘째 휘장 뒤의 지성소를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는데, 그 지성소에는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언약궤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그 언약궤 위에는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이렇게 히브리서 저자가 장막을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히브리서의 독자들은 장막(성전)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히브리서의 독자들은 토라 또는 부모님의 구전을 통해서 장막(성전)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들이 사는 시대는 이미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어 성소와 지성소를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시대였다.

 

히브리서 저자가 복음을 전하며 강조하는 것은 둘째 장막, 즉 지성소에 들어가는 일이다. 그곳은 말그대로 가장 거룩한 곳이기 때문에, 그곳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기 때문에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밖에 못 들어가는 곳이었다. 그런데, 히브리서 저자가 전하는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단 번에 이루시고, 우리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이 되게 하셔서 언제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여셨다는 것이다.

 

시편에서 다윗은 이렇게 말했다.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의와 그리스도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인해,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최종 목적지는 가나안 땅이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늘 나라를 말한다. 그곳은 바로 성막에서 지성소로 표현된 곳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의 순례의 최종 목적지는 지성소이다. 그곳은 더 이상 거룩할 수 없는 가장 거룩한 곳이요, 하나님이 계신 곳이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 도달하여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 그것이 구원이다.

 

우리의 삶의 여정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출애굽하여,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인식되어, 하나님이 계신 하늘나라로 향하고 있는가? 이스라엘 백성은 때로 길을 잃고 방황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시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우리도 때로 길을 잃고 방황할 수 있지만,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안전하고 확실하게 지성소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그 길을 그의 피로 열어놓으셨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함께 히브리서의 이 말씀을 소리내어 읽기 원한다.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4:16). 지성소로 나아가라. 주께서 날마다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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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