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와 신앙2012. 8. 17. 00:16

파렴치(破廉恥): 염치가 없어 도무지 부끄러움을 모름

 

염치(廉恥)는 청렴하고 수치를 아는 마음입니다. 따라서 파렴치하면 그 반대의 뜻으로 잘못을 범하고도 도무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마음을 일컫습니다. 관자(管子)의 목민편에 보면 나라를 버티게 하는 네 가지 덕목이 나옵니다. 예의염치(禮義廉恥, 예의, 정의, 청렴, 부끄러움을 아는 것)가 그것인데, 일명 사유(四維)라고도 합니다. 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유 중 하나가 없으면 나라가 기울게 되고, 둘이 없으면 위태롭게 되며, 셋이 없으면 뒤집어지고, 모두 없으면 그 나라는 파멸을 면하지 못하게 된다”. 곧 예의염치는 나라를 존재케 하는 매우 중요한 기본 덕목인 셈입니다. 후에 여기에다 효제충신(孝悌忠信) 네 덕목을 합쳐 팔덕(八德)이라 했습니다. 사유(四維)가 나라를 떠받치는 데 필요한 덕목이라면 팔덕(八德)은 인간관계에서 지켜야 할 네 가지 덕목인 셈입니다. 곧 사유팔덕(四維八德)은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 도덕률인 것이죠. - <관자(管子) 목민편(牧民篇)> -

 

염치 없이 왜 그래?”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입니다. 이 말은 너는 부끄러움도 없니?”라는 뜻입니다. 부끄러움(shame)은 인간 존재를 이해하는데 있어 핵심적인 개념 중 하나입니다. 심리학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는 분야이며, 특별히 신학에서는 죄의 문제와 연관해서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인간은 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까요? 어떻게 해서 부끄러움의 감정이 인간에게 형성되었을까요? 물론 이는 굉장히 복잡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어 여기에서 몇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창세기를 통해서 알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죄가 인간 세상에 들어오기 전까지 인간은 부끄러움을 모르고 살았다는 겁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서로의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나뭇잎으로 옷을 지어 입은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에서는 부끄러움과 죄를 연관시키고 있습니다.

 

성경의 증거대로 인간이 만약 죄를 짓지 않았다면 인간은 부끄러움을 몰랐을 겁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인간은 죄를 지었고, 이제 부끄러움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이게 인간 실존이 지니고 있는 아픔이고 연약함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끝난다면 인간의 삶은 비극이겠죠. 하나님께서는 이 부끄러움을 역이용하셔서 구원 사건에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인간이 느끼는 부끄러움은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좋은 촉매제입니다. 부끄러움이 죄에서 오는 것이라면, 그 부끄러움을 없애기 위해서는 죄사함이 꼭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죄사함은 하나님께로부터만 오는 것이기에, 부끄러움을 씻으려면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전부터 기독교의 화해 예식에는 화해 당사자들의 부끄러움을 씻어주는 과정이 꼭 들어갔던 겁니다. 화해란 곧 부끄러움을 없애주는 과정입니다. 서로에게 부끄러움이 없을 때, 그때야 비로소 화해가 된 것이죠.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는 화해를 모릅니다. 그런 자는 하나님과의 화해를 모르기 때문에 죄씻음을 받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오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 자는 이웃과의 화해를 모르기 때문에 이웃에게 손 내밀 줄도 모릅니다. 결국 그런 자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부끄러움을 모른 채, 바로 그 부끄러움에 내버려져 멸망 당하고 마는 것이죠.

 

파렴치한 사람은 인간 사회에서도 외면 당하지만, 더 심각한 사실은 그들이 하나님께도 외면 당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끄러움을 좀 알고 사는 게 좋습니다. ‘염치있는 사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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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