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새로우니2020. 5. 27. 08:12

아침묵상 시편 36편 -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https://youtu.be/jxaRFaMN7WQ


오늘은 시편 36편을 묵상하면서 하루를 열어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의 기도를 보면, 거기에는 아주 간절한 문장이 하나 담겨 있습니다. “다만, 우리를 악에서 구하소서!” 산다는 것은 각종 악과의 투쟁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악이라는 것은 우리의 생명력을 방해하고 제한시키는 일련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세상의 모든 문명은 악과의 투쟁 속에서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쪽으로 발전되어 왔죠. 하다못해, 이집트와 같은 건조한 기후에서 문명이 발달한 것은 건조한 기후에서는 생명을 해치는 바이러스의 창궐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고 하죠.

 

세상에 악이 왜 존재하는가?” 인류의 가장 깊은 물음이고, 가장 오래된 물음이고, 앞으로도 계속될 물음입니다. 악에 대한 물음을 신학에서는 신정론(Theodicy)라고 하죠. 신정론은 단순히 악에 대해서 묻는 게 아니라, 악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증명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학문입니다. 참 쉽지 않죠?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고, 전지전능하신 분인데, 왜 그런 하나님은 이 세상에 이 존재하도록 내버려 두시며, 왜 그 악으로부터의 고통을 허락하실까요? 이렇게 질문은 할 수 있지만, 그에 대하여 납득할 만한 대답을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이 질문에 대하여 끊임 없이 대답을 찾으려고 노력해 왔죠. 존재의 선함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간절함이 베어 있는 것이죠.

 

우리가 살펴볼 시편 36편은 악인에 대한 묵상으로 시작하고 있는데요, 시인은 먼저 악인의 에 대하여 묵상을 합니다.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악인의 죄가 그의 마음 속으로 이르기를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하니”(1). 악인의 눈에는 하나님이 안 보인다는 뜻인데요, 왜 악인의 눈에는 하나님이 안 보일까요? 왜냐하면, 악인은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작고하신 독일의 신학자 판넨베르크는 죄를 정의하기를 자기 집중이라고 했는데요, 자기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는 사람은 하나님만 안 보일 뿐 아니라 자기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눈에 안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에게만 너무 집중하는 사람은 누구나 악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시인은 계속해서 악인의 특징을 진술하고 있는데요, 눈에 이어, 악인의 말, 악인의 행동, 그리고 악인의 마음까지도 관찰합니다. 분명히 존재하는 하나님과 이웃을 보이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눈을 가진 악인은 속이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혜의 원천이신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없으니, 그의 행동은 지혜로울 수 없다고 하고요, 악인이 하는 악한 행위는 우발적이거나 실수가 아니라, 열성적인 의지와 계획적인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폭로합니다.

 

시인은 악인에 대한 묵상을 하며 악인과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에 대하여 묵상을 이어가는데요, 시인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에 주목하는 이유는 악인의 악행으로부터 구해줄 수 있는 존재는 하나님 뿐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여기서 시인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중요한 통찰은 이 세상에 왜 악이 존재하는 지에 대한 이론적 지식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것입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이 세상에는 악이 존재한다고 말이죠. 존재하는 악을 애써 외면할 필요는 없는 것이죠. 우리는 이 세상 어디에나 악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시인이 우리에게 한 가지 더 알려주는 것이 있죠. 이 세상 어디에나 악이 존재함과 동시에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도 이 세상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를 악에서 건지시길 원하신다는 겁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매우 당연한 이야기 같으나,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살아가면서 악을 경험했을 때, 사람들은 그 악으로 인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악에서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악이 주는 고통 가운데서 생명을 점점 잃어갈 뿐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악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듯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악이 발생하기 전, 우리는 기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이 짤막한 기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우리 삶의 현실에서, 우리가 매일 같이 빼먹지 말고,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해야 할 기도는 이 짤막한 기도입니다. “주여,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시인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여,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기도할 때, 우리를 사랑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은 악한 자의 손과 발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악의 문제를 쉽게 여기면 안됩니다. 독일의 신학자 몰트만은 그의 기념비적인 책,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에서 신정론의 문제를 그리스도론으로 푼 것으로 유명한데요, 몰트만의 신학에 의하면, 십자가는 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위한 자리이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십자가에 직접 달리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를 일컬어 ‘the crucified God,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시인이 우리에게 주는 지혜를 마음에 꼭 품어 보세요. 우리가 사는 세상 어디에나 악이 존재합니다. 동시에, 우리가 사는 세상 어디에나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께 날마다, 간절히,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이 기도가 실제로 우리를 악에서 구원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까요.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