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22. 5. 17. 08:46

언약의 피

(출 24:1-11)

 

1. 군사부일체. 군주(임금)와 스승과 아버지는 동일한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이 군사부일체라는 개념 때문에 기독교의 삼위일체라는 개념이 한국인들에게 잘 받아들여졌지만, 또한 왜곡되기도 했다는 생각.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은 하나다. 이런 개념은 잘 받아들여졌는데, 삼위일체의 개념이 너무 가부장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군사부일체라는 가부장적 개념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2. 성경에서 군주와 스승과 아버지의 개념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사람은 모세가 유일하다. 구약성경의 처음 다섯 책을 ‘모세오경’이라고 부르고 있는 데서 볼 수 있듯이, 모세라는 인물과 그의 가르침은 이스라엘 나라의 근간이다. 모세의 신비로운 출생 이야기부터 그의 고난, 그리고 그의 능력과 활동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보는 영웅들의 이야기가 견주어서 전혀 손색이 없다. 오히려 모세와 같은 인물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3.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시내산에 가까이 다가설수록 모세의 위상은 넘사벽이 되어 간다. 시내산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 아래 캠프를 치고 그곳에 머물지만, 모세는 하나님이 부르심에 따라 홀로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 만나기를 반복한다.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의 장로 70명을” 데리고 시내산에 올라오라고 말씀하시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모세뿐이었다. 너 모세만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지니라”(2절).

 

4. 24장은 시내산 언약체결식을 기록하고 있다. 20장의 십계명 이후에 24장의 언약체결식이 나오기까지 출애굽기는 각종 율례들(율법들)을 나열하고 있다.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요즘 우리 시대에 직접 통용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 정신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 정신은 한마디로 ‘정의(Justice)’이다. 정의의 핵심은 인권(human rights)에 있다. 인간의 권리(인간의 존엄성/dignity)를 보호하는 것. 그 중에서도 특별히 약자에 대한 인권 보호가 정의의 핵심이다. 사회적 약자는 스스로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는 일이 쉽지 않다. 서로가 서로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보호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5.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례들(율법들)을 다 지키기로 “한목소리로 응답”하고, 언약식체결을 위한 준비를 한다. ‘정의’라는 말을 써서 다시 풀이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면서 살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제단을 쌓고, 열 두 지파대로 기둥을 세우고, 소를 드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다. 그리고 피(소의 피/제물에서 얻은 피)를 가지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반은 대접에 담았다가 언약서를 낭독한 뒤 백성들에게 뿌렸다. 그러면서 모세는 이렇게 말한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8절).

 

6. 현대인들에게 낯선 장면이다. 현대인들은 피 보는 것을 두려워한다. 특별히 한국인들에게 피에 대한 이야기, 하면 떠오르는 것은 삼국지에서 유비, 관우, 장비가 피로써 의형제를 맺은 ‘도원결의’ 정도이다. (사슴 피, 돼지 피 경험) 그에 비하면, 성경에는 피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제사는 온통 피 범벅이고,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피범벅 사건이다(Passion of Christ/ 두 눈 뜨고 보기 힘들다). 우리는 ‘예수의 보혈’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그 ‘피의 무게’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피를 흘린다는 것의 무거움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7. 본문 9절에서 11절은 구약성경을 통틀어서 가장 신비한 장면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냥 다시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이 장면이 얼마나 신비한지, 눈에 들어올 것이다.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사파이어)을 편 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9-11절).

 

8. 시내산 언약체결식은 장엄하다. 모세의 중재를 통해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다가서고, 시내산에서 피를 통해 언약을 맺는다. 그래서 그 언약을 ‘피의 언약’이라 부른다. 언약을 체결한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그 언약을 축하하고 기쁨을 나누기 위해서 연회를 벌인다. 몇 마디 말로 표현되고 있지만,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연회를 하는 장면은 장엄하고 신비롭다. 무엇보다,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라는 진술은 믿기지 않을 정도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만찬이라니! (나중에 요한계시록에 다시 진술된다.)

 

9. 출애굽기 24장에 담긴 ‘시내산 언약체결식’은 그리스도인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 사건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마치 데칼코마니(데칼코마니아) 같다.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 사건을 경험한 복음서의 증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세와 견주어 묘사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시내산 언약체결식 사건과 연관시켜서 해석했다는 것이다.

 

10. 마태복음은 모세오경의 형식을 빌려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증언하고 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출생 이야기는 모세의 그것과 흡사하다. 예수님의 산상수훈 이야기는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전달해 주는 것과 흡사하다. 마지막 만찬에서 제자들과 떡과 포도주를 나눌 때 예수께서 하시는 이야기는 시내산 언약체결식에서 모세가 한 이야기와 똑같다.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7-28).

 

11. 그렇다면, 시내산 언약체결식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무엇이 다른가? 시내산 언약체결식은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을 향한 언약이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그 언약이 이스라엘을 넘어 모든 민족(열방)을 향해 있다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보편적인 언약체결식과도 같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민족, 모든 나라, 모든 사람(남자나 여자나, 노인이나, 어린이나, 자유인이나 노예나 상관없이)이 하나님과 사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12. 출애굽기 24장의 시내산 언약체결식을 보면,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사람들은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뿐이었다. 숫자로 하면, 74명(일흔 네 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하나님과 대면하여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모세 한 명뿐이었다. 그래서 그 이후에 전개되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광야에서는 성막을 통해, 솔로몬 성전이 건축된 이후에는 성전을 통해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나아갔는데, 하나님의 임재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대제사장 한 명뿐이었다. 그리고 오직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만 성막이나 성전에서 봉사할 수 있었다. 즉, 하나님과 가까이할 수 있었다.

 

13.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만큼 민주화 사건이 없다고 생각한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것은 특권계층만 누렸던 특권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은 그러한 특권을 없애고,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권리를 민주화시킨 것이다. 즉, 누구든지, 신분에 관계없이, 심지어 죄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다가설 수 있는 권리를 모두에게 안겨주셨다는 것이다. (혁명적이다. 뉴크리에이션!)

 

14. 시내산 언약체결식 때 모세는 제물의 피를 ‘언약의 피’라고 부르며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쏟아 부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백성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는 아주 특별한 민족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마중물 삼아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모든 민족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뻗치신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그냥 피가 아니라 ‘언약의 피’이다. 그리스도께서 언약의 피를 십자가에서 흘리신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그 피를 뿌리는 행위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아무때든지, 어디에서든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15. 오늘날 많은 이들이 이 특권을 포기하고 산다. 또는 우리들에게 이러한 특권이 주어졌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사람들은 살면서 경험하게 되는 어려움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각종 행동들을 하지만, 그리스도의 ‘언약의 피’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와서 그 어려움들을 토로하고 문제 해결을 받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요즘엔 그것을 아는 사람들조차도 그리스도의 언약의 피가 지닌 무거움을 가볍게 여기는 것 같다.

 

16.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91장)에 이런 것이 있다.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예수 이름 믿으면 영원토록 변함없는 기쁜 마음 얻으리

거룩하신 주의 이름 너의 방패 삼으라 환난시험 당할 때에 주께 기도 드려라

존귀하신 주의 이름 우리 기쁨되도다 주의 품에 안길 때에 기뻐 찬송 부르리

우리 갈길 다간 후에 보좌 앞에 나아가 왕의 왕께 경배하며 면류관을 드리리

 

17. 언약의 피. 이것이 지니고 있는 무게감을 신중하게 생각하면 좋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언약의 피를 생각하며, 희망이 없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언약의 피에 힘입어 모든 것을 역전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다가서고, 살 소망이 없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다가서서, 우리의 삶을 보듬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기를 바란다(키리에 엘레이손/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언약의 피가 우리를 살릴 것이다. 언약의 피가 우리를 새롭게 할 것이다. 언약의 피,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징표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너무 힘들어 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 언약의 피를 기억하고 그 피에 기대어 하나님께 날마다 가까이 나아오는 자에게 늘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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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