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사색2011. 3. 16. 13:24

시편 17

만족은 멈춤이다

 

인간은 만족을 모른다. 만족하기까지 멈출 줄 모른다. 하나님이 정하신 죽음이 강제로멈추게 할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죽음은 인간의 멈추지 않는 욕망을 멈추게 해주고 겸손을 맛보게 해주는 인간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최고의 은총이다.

 

시인의 탄원을 따라가다 보면 만족은 나쁜 것뿐만 아니라 좋은 것에서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인은 하나님께 멈출 수 없는 감정으로 소리 높여 탄원한다. 자신의 의로움에 근거해서 드리는 탄원기도는 원수의 입장에서 보면 섬뜩하기까지 하다. 이게 의로운 자의 기도인가 싶을 정도로 감정이 너무 격해져 있다. 원수가 철저하게 파괴되고 짓밟히는 것을 보게 되기까지 만족이 없는 듯 하다. 원수를 비방할 때 쓰는 언어가 매우 과격하다. 하나님께서 원수에게 갚아주셨으면 하는 방법이 매우 잔인하다.

 

그러나 시인의 마음이 급격하게 가라앉는 지점이 있다. 바로 그가 의로운 중에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때이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우리의 마음에 만족을 줄 수 없다. 만족이 없기 때문에 쉼(안식)이 없다. 쉼이 없기 때문에 평화가 없다. 평화가 없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은 늘 고달프다.

 

시인의 삶이 어떻게 이토록 만족 없는 삶에서 만족이 넘치는 삶으로 급격스럽게 변하는지 보라. 하나님을 만났을 때다. 하나님을 뵙고 나니 세상과 나는 간 데 없고오직 하나님만 보인다. 하나님을 뵈니 끝 간데 모르고 달려가던 마음이 만족함을 얻어 바로 그 자리에서 멈추게 된다. 하나님을 뵈니 원수도 안 보이고, 원수에게서 받았던 상처도 사라지고, 원수에게 가졌던 복수의 찬 분노도 사라진다. 하나님을 뵈니 이 마음이 하나님으로 차고 넘쳐 다른 것이 들어올 여지가 없어진다. 이제 시인은 만족한다. 이제 시인은 쉴 수 있다. 이제 시인은 평화 가운데 산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만족이 없는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 숨 쉴 틈 없이 달려간다. 조금만 더 달리면 이 마음에 만족이 올 거라고 자위하면서 열심히 달려간다. 그러나 만족은 신기루와 같다. 잡으려고 달려갈수록 나에게서 멀어지고, 잡았고 생각한 순간 이 마음은 불만족에 또 쉼과 평화를 잃는다.

 

시인을 통해서 우리는 만족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배운다. 하나님을 뵈올 때 이 마음에 만족이 온다. 그러니까 헛된 욕망에서 벗어나 참된 만족을 얻는 길은 우리의 삶에 만족을 가져다 줄 거라고 생각한 그것을 붙잡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완전히 틀어서(메타노이아, 회개) 하나님을 의로움 가운데 뵙는 것이다. 하나님을 뵐 때 오는 만족은 모든 것을 멈추게 한다. 멈추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 쉼을 얻게 한다. 멈추어 안식하면서 평화를 누리게 한다. 만족하기를 원하는가? 하나님을 만나라. 하나님을 만나 만족하게 되면 모든 것이 멈추게 될 것이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