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6. 11. 3. 01:02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비유 - 수수께끼)

(마가복음 4:1-20)


지금까지 (3장까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은 주로 질병을 치유하고 귀신을 내어쫓는 이적을 통해서 전해졌다. 그것 때문에 바알세불 논쟁까지 벌어졌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사역을 음해하는 세력들이 예수님을 바알세불의 수하로 몰아간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왜 어떤 이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어떤 이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거부하는 것일까? 이제 예수님은 치유와 이적을 넘어 가르침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신다.

 

오늘 말씀은 마가복음에 나오는 첫 번째 비유의 말씀이다. 이 첫 번째 비유는 앞으로 전개되는 예수님의 가르침, 특별히 비유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제 역할을 한다. 비유(parable)는 감추는 효과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효과도 있다. 그리고 비유의 중요한 기능은 기존의 지식과 전통을 전복(뒤집어 엎는 것)시키는 것이다.

 

비유는 대학에서 한 학기 강의를 해도 부족한, 심원한 주제이다. <비유의 위력>이나 <어두운 간격>, 이런 책을 함께 읽으며 공부하면 참 좋은데, 그게 쉽지 않다 (적당한 때에 기회가 있을 것이다). 비유는 Metaphor(은유)Narrative(이야기)가 합쳐진 형태의 이야기이다. , 뭔가 감추어져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을 이야기의 형식으로 말해서, 그것이 드러나고, 전복시키는 문학 형식이다.

 

비유는 일종의 수수께끼와 같다. 인생도 어떻게 보면 수수께끼의 일종이다. 우리는 어릴 적에 친구들과 수수께끼를 하며 놀았다. 아이들 세계에서는 수수께끼가 가벼운 놀이일지 몰라도, 실제 인생에서 수수께끼는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를 담보한 지식과 무지사이의 투쟁이다.

 

그리스의 위대한 비극작가 소포클레스가 쓴 [오이디푸스 왕]이라는 비극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비극작품을 최고의 작품이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오이디푸스 왕]에서 오이디푸스는 테베로 들어가는 관문에서 인간의 머리를 한 사자인 스핑크스를 만난다. 테베로 들어가는 모든 사람은 스핑크스와 한 판 겨루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수수께끼를 푸는 일이었다.

 

스핑크스는 테베로 들어가는 모든 사람에게 이와 같은 수수께끼를 냈다. “아침에는 네 발로 걷고 오후에는 두 발로 걷다가 밤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은 무엇이냐?” 이 수수께끼의 답은 무엇인가? 중요한 것은 이 수수께끼를 맞히면 목숨을 건지게 되고, 이 수수께끼를 맞히지 못하면 죽는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수수께끼는 인생에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를 쥐고 있는 중요한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에 이렇게 답한다. “사람이다. 어려서는 네 손과 네 발로 기어다니며, 어른이 되어서는 두 다리로 걸어다니고, 늙어서는 지팡이에 의지해서 걷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에 대한 정답을 말했다. 그 순간 스핑크스는 스스로 죽고, 오이디푸스는 안전하게 테베에 입성하게 된다.

 

구약성경 중 사시기에도 생사를 가르는 중대한 수수께끼를 둘러싼 이야기가 나온다. 바로 삼손 이야기이다. 삼손은 블레셋의 딤나 여인과의 결혼 잔치에서 잔치 자리에 함께 한 30여명의 친구들에게 수수께끼를 낸다. 그러면서 자기가 낸 수수께끼를 맞히면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삼손은 반대로 수수께끼를 못 맞히면 똑 같은 것을 자신에게 줄 것을 요구한다. 삼손이 그들에게 낸 수수께끼는 이런 것이었다.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불행하게도 아무도 삼손이 낸 수수께끼를 못 맞힌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은 블레셋 여인인 삼손의 아내(딤나 여인)를 협박하여 수수께끼의 답을 알아올 것을 요구한다. 삼손의 아내는 울면서 수수께끼의 답을 알려달라고 삼손에게 구걸하고, 삼손은 가엾은 마음에 그 답을 아내에게 알려준다.

 

삼손의 아내를 협박하여 수수께끼의 답을 알아낸 블레셋 친구들은 잔치가 끝나기 전 삼손에게 수수께끼의 답을 이렇게 말한다.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 이 답을 들은 삼손은 자신이 아내에게 속은 줄 알고 분노하여 아스글론에 내려가 블레셋 사람 30명을 쳐죽이고, 그들에게 옷을 빼앗아 수수께끼의 답을 맞춘 블레셋 친구들에게 주고, 또한 그 블레셋 아내도 버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이처럼, 수수께끼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고 생사가 왔다 갔다 하는 중요한 삶의 질문이다.

 

예수님의 비유는 이러한 기능을 한다. ,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서 인간에게 수수께끼를 내시는 것이다. 그것을 맞히면 천국에 들어가지만, 그것을 못 맞히면 천국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는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11).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수수께끼와 같다. 수수께끼와 같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에 온전히 반응하는 자만이 하나님 나라를 삶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다.

 

오늘 말씀 중, 12절 말씀은 세심한 주의를 요구하는 말씀이다. 잘못 이해하면 매우 배타적인 말씀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특별히 한국말 성경은 이것을 조금 애매모호하게, 잘못 번역한 듯싶다. 영어성경을 보면 12절 말씀이 전하고 싶은 뜻이 좀 더 잘 드러난다.

 

So that while seeing, they may see and not perceive,

and while hearing, they may hear and not understand,

otherwise they might return and be forgiven. (NASB)

 

They may indeed look, but not perceive,

and may indeed listen, but not understand;

so that they may not turn again and be forgiven. (NRSV)

 

한국어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비유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말씀하시는 이유는 보아도 알지 못하게 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죄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 매우 배타적인 진술로 들린다. 사람들이 구원 받지 못하게 하도록 알지 못하게 하고 깨닫지 못하게 하려고 비유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말씀하시는 것처럼 들린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영어성경을 보면 12절 말씀의 뜻이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나는데, 풀어서 설명하면, ‘그들이 보았어도 인식을 하지 못하고, 들었어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렇지 않고, 그들이 보고 인식했다면, 들은 뒤 이해했다면, 그들은 분명 돌아와서 용서를 받았을 것이다라는 뜻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중요한 것은 만약 우리가 보았다면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고, 들었다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인식하고 이해한다면 우리는 분명 하나님께 돌아와 용서 받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성경의 이야기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이다. 탕자는 아버지와 함께 한 집에서 살 때 아버지의 사랑을 보았으면서도 인식하지 못했고 들었으면서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뿌리치고 자신의 재산을 챙겨 먼 나라로 떠났다. 그런데, 그는 먼 나라에서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인생의 바닥을 경험했을 때, 불현듯 아버지의 사랑을 인식하고 이해했다. 그래서 그가 한 일은 회개와 더불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의 집에 돌아와 이전과는 다른 인식과 이해를 가지고 아버지의 사랑을 보고 듣는다.

 

하나님의 말씀(하나님 나라 복음)을 들었을 때, 그것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일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흥미와 무관심의 문제가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 , ‘구원 받느냐 아니냐의 중차대한 기로에 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식(perceive)하고 이해(understand)하는 일은 우리의 태도와 행동을 결정짓는다. 예수님의 사역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처럼, 그리고 탕자의 비유에서 보듯이, 인식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곁은 떠나고 아버지 집을 떠난다. 그러나, 인식하고 이해한 사람들은 예수님 곁에 남아 있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일상생활(신앙생활, 그리스도인에게는 일상생활이 곧 신앙생활이다)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던져주시는 수수께끼를 잘 풀어야 한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수수께끼에 시험에 들면 안 된다. 그것은 스핑크스에게 잡아 먹혀 결국 테베에 입성하지 못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수수께끼를 잘 풀어 생명을 얻어야 한다. 생명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 시험에 들어 스핑크스에게 잡아 먹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바이블 오디세이 I'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스듬히  (0) 2016.11.13
우리는 성도입니다 (만성절)  (1) 2016.11.08
씨 뿌리는 자의 비유  (0) 2016.11.03
엎드림  (0) 2016.10.31
예수님의 가족  (4) 2016.10.26
특별한 부르심  (0) 2016.10.26
Posted by 장준식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