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선교적 위치

 

이사야 19장은 한국 교회의 선교적 비전을 보여주는 신비한 말씀이다. 이사야 시대에 이스라엘이 앗수르와 애굽 사이에서 고난도 외교를 폈던 것처럼, 요즘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고난도 외교를 펴고 있다. 현재 한국은 중국보다는 미국과 더 가까운 동맹을 맺고 있지만, 앞으로의 국제 정세는 안개 속에 있는 것 같아 그 어느때보다 민족적 지혜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사야 19장은 애굽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앗수르 세력에 맞서 살 길을 찾기 위해 하나님 대신에 애굽의 힘을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굽에 대한 심판은 이스라엘이 오판하지 않고 나라를 지켜 나가게 하기 위함 하나님의 지혜다. 특별히 이사야 19장에서 주목해서 봐야 할 대목은 이 구절이다. “그 날에 애굽이 부녀와 같은 것이라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흔드시는 손이 그들 위에 흔들림으로 말미암아 떨며 두려워할 것이며”(16).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왕이실 뿐 아니라 만군의 왕이시다. 그 분은 애굽 위에 손을 흔드신다. ‘흔들다(테누파)’는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리는 요제와 같은 뜻이다. 레위기의 제사법 중 요제라는 제사법이 있는데, 이는 제사장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흔들어서 드리는제사를 말한다. 제사장이 제물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며 흔드는 이유는 그 제물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애굽 위에 손을 흔드신다는 것은 애굽도 하나님의 것이요, 그들 또한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뜻이다. , 애굽은 하나님보다 크지 않다. 힘이 세지 않다.

 

개인이든 국가든 살아가며 주변의 힘 센존재에 기대는 경향이 있다. 특별히 국제정세 가운데 국가가 존속하기 위해서 주변의 힘센 나라에 의존하는 것은 한국 역사에서도 흔한 일이었다. 특별히 한국은 5천년 역사에서 오랜 세월 동안 중국에 많이 의존하였다. 한국이 미국에 의존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최근 미국과 중국이 벌이고 있는 무역 전쟁은 세상을 편가르기 하는 것 같다. 이사야 시대에 앗수르 세력과 반앗수르 세력(애굽과 구스 등)이 맞선 것과 같은 격이다. 최근 미국은 중국의 이동통신 기업 화웨이의 CFO 멍완저우를 체포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화웨이가 대이란제재(sanction)를위반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내면적인 이유는 IT 업계에서의 중국의 추격을 저지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있다. 미국의 우방은 미국과 행보를 같이하여 국내 통신기술 시장에서 중국의 화웨이를 퇴출시키고 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한국의 LG 그룹은 미국의 우방들의 행보와는 달리 5G 통신망에 화웨이 제품을 쓰겠다고 공표하여 뭇매를 맞고 있다.

 

큰 나라들의 전쟁이 노골화되면 작은 나라는 큰 나라들 사이에서 눈치를 보아야 한다. 이사야 시대의 이스라엘이 앗수르와 애굽 사이에서 그랬던 것처럼 지금 한국이 딱 그렇다. 이런 상황에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사야 19장은 그에 대한 지혜를 주고 있다.

 

나라가 어렵고, 시대가 어렵고, 국제정세가 어려울수록 교회는 성경을 통하여 지혜를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 이사야 19장은 이스라엘이 앗수르와 애굽 사이에서 더 힘 센 나라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그 힘 센 나라들을 그 발 아래 두고 계신 하나님을 의지할 것을 강력하게 선포한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이 땅의 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을 의지해야 한다. 한국은 실제적으로 미국도 중국도 너무 믿지 말아야 한다. 이 땅의 힘을 의지하다가 나라를 빼앗기는 수모를 다시 겪을 수 있다.

 

이미 한국은 그러한 경험을 한 바 있다. 19세기 말, 제국주의가 판을 칠 때, 제국을 표방한 나라들은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 혈안이었다. 조선은 그 당시 일본의 표적이었는데, 각 제국들은 자신들의 표적을 확실히 확보하기 위해서 서로 간에 협약을 맺는다. 그 당시 고종 황제는 러시아의 힘에 의지하고 있었다. 일본은 청일전쟁을 통해 조선에 대한 청의 간섭을 물리치고, 러일전쟁을 통해 조선에 대한 러시아의 간섭을 물리쳤다. 그리고 마침내, 일본은 미국과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한다. 그 밀약을 맺은 이후, 미국은 한국에서 영사관을 물렸고, 일본은 조선통감부를 통해 조선에 대한 지배를 확고히 한다.

 

현재 미국은 한국의 최고 우방이지만, 역사를 볼 때, 자신의 이익과 관련하여 어떠한 자세를 취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최근 중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이미 사드 배치문제로 한국 기업(롯데)에 대한 제재를 시행한 이력이 있다. 이렇듯 땅의 은 믿을 만한 게 못된다.

 

이사야 19장은 앗수르와 애굽이 이스라엘을 통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날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 앗수르와 애굽이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나라가 되고, 그들은 서로 왕래하며 함께 하나님을 경배하게 될 거라고 한다. 이사야는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라”(24)는 말씀을 선포한다.

 

한국(교회)이 거대한 힘,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모든 나라들에 대하여 주권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면서, 미국과 중국이 함께 하나님을 경배하며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협력하도록 기도하며 선교의 고삐를 놓치 않는 것이다. 특별히 중국은 아직도 신앙의 불모지와 다를 바 없다. 기독교는 중국 영토 내에서 공적인 활동을 할 수 없다. 그런 상황 속에서 중국인들을 향한 복음 전도의 길은 매우 위험하고 험난하다.

 

중국 선교의 한 방법은 미국에 살고 있는 중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미 우리 주변에는 중국교회가 많이 존재 한다. 그들의 신앙은 한국의 7,80년대 신앙처럼 뜨겁다. GTU에서 공부하는 한 중국 친구는 중국의 종교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 오듯 왔다고 고백하는 친구도 있다. 그러므로, 신앙의 선배 격인 한국(이민)교회는 중국이 미국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배하는 나라가 되도록 중국(이민)교회와의 협력을 통해서 중국의 복음화를 위해서 기도하며 힘써야 할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에서 살아남기 위한 한국(교회)의 선교적 위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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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