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8. 12. 19. 12:15

낙심마오!

(갈라디아서 6:2-10)

 

성탄절 분위기가 예전만 못하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에서도 상업주의가 키운 성탄절 분위기가 상업주의에 의해서 쇠퇴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아이굿뉴스, 1210일자 보도) 해방 후 한국에는 야간 통행금지 제도가 있었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경찰과 응급의료차량 외에는 아무도 밤거리를 돌아다닐 수 없었다. 이 제도는 1982년까지 지속됐다. (1982년 이후 생들은 통행금지 제도를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다.)

 

야간 통금시절 몇 개의 날은 통금이 없었다. 부처님 오신 날, 성탄절(1225), 그리고 1231일과 11일 등이 통금 없는 날이었다. 이 중에서 단연 인기 있는 통금 없는 날은 성탄절이었다. 해방 이후 미국의 영향으로 기독교 문화가 한국 사회를 휩쓸었고, 겨울과 연말이라는 특별한 절기와, 무엇보다 캐롤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음악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전국민이 이날 들뜬 마음으로 소비를 확대하며 축제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때 생긴 한국교회의 전통이 성탄절 이브 올나잇과 새벽송’, 그리고 송구영신예배이다. 그 당시 성탄절 이브에 집에 가서 자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든 사람이 교회에서 성탄절 행사를 즐겼으며, 성탄절 행사가 끝나면 각종 게임을 하면서 밤을 지새웠고, 새벽이 되면 새벽송을 돌았다. 그리고 비몽사몽 간에 성탄절 아침, 모두 모여 성탄절 예배를 드렸다. 그러면서 통금으로부터의 해방을 맛보았다.

 

한국에서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된 계기는 88올림픽이다. 1981 9 30일 서독 바덴바덴에서 열린 84 IOC 총회에서 서울이 일본 나고야를 제치고 제24회 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되자, 한국에서는 그것에 발맞춰 치안을 강화하고 시민들의 불편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정책 변경을 꿰 했다. 그래서 198215일 마침내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야간 통행금지법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통행금지법이 존재한 36 4개월 동안 교회의 성탄절 문화와 송구영신예배 문화는 한국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았다. 그래서 통행금지법이 폐지된 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성탄절 행사와 송구영신 행사를 통해서 해방과 자유를 만끽했다. 그러다, 2000년대에 들어서 그 문화는 바뀌기 시작했다. 상업주의는 상품을 팔기 위해 더 많은 이벤트가 필요했고, 겨울 뿐 아니라 봄여름가울겨울, 사계절 내내 이벤트를 만들어 축제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게다가 통행금지법의 향수가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아무 때나 마음만 먹으면 밤새 놀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성탄절과 송구영신 예배의 특별한 분위기는 점점 사라져갔다.

 

요즘 한국에서는 성탄절 시즌에 더 이상 크리스마스 캐럴이 거리마다, 그리고 상점마다 울려 퍼지지 않는다. 대신 한류의 영향으로 아이돌 음악이 사시사철 울려 퍼진다. (요즘 아이들의 입에서 캐롤이 나오는지, BTS의 노래가 나오는지 살펴보라.) 예전에는 성탄절에 맞춰 아티스트들이 캐럴 음반을 내놓는 게 유행이었다. 개그맨들도 성탄절에는 코믹한 버전의 성탄 음반을 내놓곤 했다. (기어나는 것은 심형래와 최양락의 성탄 음반이다. ‘달릴까 말까~’)

 

한국 뿐 아니라, 미국의 팝송계에서도 성탄절이 되면 세계적인 팝스타들은 팝송을 내놓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웸(조지 마이클)라스트 크리스마스이다. 물론 그 이전의 빙 크로스비(Bing Crosby)와 펫 분(Pat Boone) 같은 뛰어난 캐롤 팝송 가수들이 있었다. 그런데, 미국의 팝송계에서도 머라이어 케리(Mariah Carey)의 크리스마스 캐롤 음반을 끝으로 더 이상 성탄절 절기에 캐롤 음반을 내는 아티스트들이 없다. 새로운 캐롤 음반이 보급되지 않는 상황에서 요즘은 어디를 가나 옛날 캐롤들을 반복해서 트는 경향이 짙다.

 

성탄절이 아예 없는 일본에 비해 한국에서는 성탄절이 한국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미국은 원래 성탄절 문화의 원조 격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이든 문화로서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지 못하면 그 의미가 퇴색되는 법이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세속화되면서 기독교의 위상이 예전만 못한 것과 발걸음을 같이 하여 성탄절 문화가 쇠퇴하는 것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한 사회에서 문화적인 자리를 점차 좁아지고 있다는 것은 굉장한 도전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며칠 전 신문에, 중국 쓰촨성에서 중국 공안에 의해 지하교회의 성도 100여명이 예배 드리다 체포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교회의 이름이 인상적인데, ‘조우교회였다. ‘이를 조비 우를 쓴 것을 보니, ‘이른 비를 나타내는 듯하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이른 비 교회. 참 멋진 교회 이름이다. 통계 보도에 의하면, 작년 중국에서 체포된 지하교회 기독교인은 3000명 정도이고, 올해는 1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의 주석 시진핑은 집권 이래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종교는 아편이고, 기독교는 외래사상이다.” 중국의 최고 권력자 입에서 이러한 말이 나오는 것을 보니, 그리고, 미국과의 무역 전쟁 가운데 있으니, 기독교인에 대한 탄압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한국이나 미국 등, 기독교 문화가 저변에 깔려 있는 나라에서 사는 우리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리고 아무런 어려움 없이 성탄절을 즐기고 있지만, 일본이나 중국, 그리고 동남아시의 불교국가나 중동의 이슬람 국가에서 기독교인이 되는 일, 그리고 성탄절을 지키는 일은 매우 위험하다. 그곳에는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 아직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것이 그 나라의 문화로 자리잡기까지는 굉장한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 세계 기독교 역사를 보면, 서구 사회에 기독교 문화가 자리 잡은 것도 그리 쉽게 된 일은 아니다.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분파에서 떨어져 나와 완전한 개체 종교의 모습을 갖추게 된 이후, 로마에서 하나의 문화로 뿌리 내리기까지 300여년 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300년 동안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순교자로 죽어갔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1880년대, 개신교가 한국에 들어오고, (그 이전에 천주교가 100년 먼저 들어왔다), 그 이후 개신교가 한국의 문화의 한 자리를 차지하기까지 수많은 질곡이 있었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여러가지 상황이 겹치면서 정말 매직같이 성탄절이 한국의 가장 큰 축제의 절기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소식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 무겁고, 더불어 기독교 문화를 지켜 나가야 하는 책임 또한 크다.

 

우리는 도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대로 가다간 한국 사회나 미국 사회에서 기독교가 소수 종교가 되어 중국에서처럼 지하로 내려가고 탄압을 받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문화 형성은 쉬운 게 아니지만, 한 번 형성된 문화 또한 해체되는 일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잘못된 문화는 투쟁하여 고쳐나가야겠지만, 거룩한 문화는 어떠한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지켜나가야 한다.

 

갈라디아서의 말씀은 이를 두고 이렇게 우리를 도전한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2). ‘캐롤(carol)’이라는 말의 유래는 복잡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옛날 로마시대 때 사람들이 모여 둥글게 원 모양을 하고 춤을 추었던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강강술래(강강수월래)를 생각하면 쉽다. 왜 사람들은 둥글게 원을 그리고 돌면서 춤을 추었나? 그것은 기쁨의 표현이다. 캐롤은 그래서 기쁨의 노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뻐하며 춤춰야 한다. 이 기쁨의 시간에 다른 곳에 있으면 안 된다. 함께 모여 캐롤을 부르며, 그리스도의 오심을 세상에 널리 전해야 한다.

 

또한, 캐롤이 세상의 문화에 맞선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가 되어야 한다. ‘강강수월래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서 온다라는 뜻이다. 한국에 강강술래 전통무가 생긴 유래를 이순신 장군의 임진왜란으로 꼽는다. 몰려오는 적군에 비해 숫자적으로 열세였던 이순신 장군은 부녀자들로 하여금 남장을 하게 하고 높은 산에 올라 원을 그며 돌게 했다. 적군은 그 모습을 보고 조선의 군대가 계속 행진해 오는 것으로 착각하여 도망쳤다. 그리고 물러간 적군을 보며 여인들은 기뻐서 원을 그리고 돌며 강강술래를 외쳤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기독교의 문화를 지켜내는 일은 강강수월래와 같다. 이것은 서로 짐을 지고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인이 성탄절 문화를 지켜내지 않으면, 누가 대신 지켜주겠는가. 우리는 누군가 어떠한 일을 대신해 주는 문화에 너무 길들여 있다. (나열하자면 끝도 한도 없다. 휴지를 버리는 사람과 휴지를 줍는 사람이 따로 있다. 화장실을 더럽게 쓰는 사람과 청소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 심지어, 아이까지 대리모 출산을 한다. 대리모가 되는 여자들은 대개 가난한 나라의 젊은이들이다. 경제 불평등 논리가 여기에 들어간다. 자녀를 가지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요즘시대, 대리모를 통한 출산은 명백한 불평등이고 착취이다.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 나가기 위해서 서로 짐을 지는 수고가 필요하다. 갈라디아서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우리를 도전한다. “만인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3).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 나가기 위하여 아무 것도 하는 게 없으면서, 다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 우리는 왜 서로의 짐을 지고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기를 두려워하는가?

 

가장 큰 이유는 그러한 일을 하다 낙심할까봐서다. ‘우리가 그렇게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나하나 쯤이야 빠져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무엇이 달라진거야? 똑같잖아!’ 이러면서 우리는 낙심한다. 그러나 기억하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낙심 중의 낙심이다. 2천년 전,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셨다는데, 세상이 달라진 게 있는가? 세상에는 여전히 폭력이 난무하고 평화가 묘연하다. 이런 세상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전할 수 있는가!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우리를 위로한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9).

 

도산은 병환으로 죽어가며 자신을 문병 온 동지의 손을 잡고, 겨우 목소리를 내서 이렇게 말했다. "낙심마오!" 그 당시 한국인은 낙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립의 길은 아득하고 일제의 탄압은 날로 심해졌기 때문이다. 1938년의 일이다. 낙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낙심마오'라며 위로를 건네고, 생명이 다해갔지만 끝까지 절망하지 않고, 민족독립의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스스로 낙심하지 않았던 도산은 어떻게 그러한 신념을 가질 수 있었을까?

 

도산은 성경을 즐겨 읽었다. 그는 때때로 교회의 신자들 앞에서 설교할 정도로 성경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그러한 도산의 이력을 토대로 추측해 보건 데, 도산은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마음 속에 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6:6). 진실로 선을 행하고 있다면 낙심할 필요 없다. 도산은 이렇게 말했다.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낙심마오!" 성경을 사랑했던 도산 안창호, 그는 숨을 거두면서까지 낙심하지 않았다. 낙심만큼 사람을 지치게 하고 일을 그르치는 것도 없다. 무슨 일이든, 낙심만 하지 않는다면, 뜻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 낙심하지 말자.

 

낙심하지 말고, 우리의 정체성(Christian identity)을 지켜 나가기 위하여, 성탄절의 거룩한 문화를 지켜 나가기 위하여 서로 짐을 지며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해 나가자. 성탄절기에 다른 계획 세우지 말고, 더 열심히 교회로 모이고, 더 열심히 캐롤을 부르자.

 

낙심마오!’(서로가 서로의 등을 두드려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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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