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은의 시 ‘외계로부터의 답신’
어떤 날에는 우주로 쏘아올린 시들이 내 잠 속으로 떨어졌다
어쩌면 이것은 외계로부터의 답신
당신들이 보낸 것에 대한 우리들의 입장입니다
ㅡ 강성은 시 ‘외계로부터의 답신’의 한 부분, 시집 <단지 조금 이상한>에 수록
2004년 11월, 북유럽의 시인들이 스웨덴에 모여 외계인을 상대로 시 낭송회를 열었다. 이 시는 그 이벤트에 대한 기록이다. 북유럽의 시인들은 모여 26광년 떨어진 항성 베가를 향해 무선방송으로 시를 쏘아올렸는데, 그들의 시낭송은 그곳에 2054년에나 도착할 것이라 한다. 참 재밌는 이야기다. 북유럽이어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아마 남태평양의 시인들도 동일한 생각을 했을 지 모른다. 그들은 모두 하늘의 별을 밤마다 경험할 테니까. 산업화가 진행된 나라의 시인들은 더 이상 밤 하늘에서 찾아볼 수 없는 별을 그리워만 할 뿐, 그들처럼 이렇게 앙증맞은 이벤트를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보이지 않으면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힘든 법이다.
이 이벤트 소식을 접한 시인의 시선은 자꾸 우주로 향한다. 그래서 시인은 어떤 날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에서 멜로디를 듣는다. “한밤중에 세탁기에서도… 냉장고에서도 가방에서도 심지어 변기에서도” 시인은 멜로디를 듣는다. 그 멜로디가 어떤 멜로디인지는 모르지만, 멜로디를 듣는다는 것은 경쾌한 일이다. 심지어 변기에서도 멜로디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시인의 마음이 그만큼 열려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시인에게는 멜로디만 들리는 것이 아니다. 시인은 어떤 날 주변의 모든 것에서 ‘독’의 기운을 느낀다. “읽은 페이지마다 독이 묻어 있고 내 머리털 사이로 예쁜 독버섯이 자라난다”고 말한다. 독은 사람에게 치명적인 물질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러한 독을 만지고 또는 자기 안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상하게… 죽지 않고” 살아 있다. 이뿐만 아니라 시인은 어떤 날 “미치도록 사랑에 빠져든다.” 사랑을 하면 생기가 넘쳐야 할 텐데, 시인은 다음과 같은 고백을 내어놓는다. “그런데 이상하지 나는 병들어가고.”
비로소 우주를 바라보게 된 시인은 ‘외계’로부터 밀려오는 답신을 들은 것 같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인생에 대하여 묻는다. 인생이란 무엇이냐는 질문, 산다는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 삶의 의미는 무엇이냐는 질문. 이 질문에 대하여 ‘외계’는 인간을 향해 수없이 답신을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바깥에서 답신이 밀려오지 않는다면, 외계가 우리에게 답신을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과연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우리의 인생에 대하여 성찰할 수 있을까? 아마도 우리는 답신이 있었다는 것도 모른 채, 자기 자신에게 몰입되고 침잠되어 의미없이 사라져갈지 모른다.
외계로부터 온 답신을 통해 우리는 인생을 돌아본다. 인생은 부조리하다고, 인생은 알 수 없다고, 인생은 온통 신비로 가득 차 있다고, 어떤 날은 사물에서 멜로디가 들리는 것 같다가도, 어떤 날은 독을 만지고 먹었는데도 죽지 않는다고, 어떤 날은 미치도록 사랑했는데 오히려 병들어 간다고, 우리는 우리의 부조리한 인생을 직면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해 의미를 찾으며 산다. 우리 자신의 바깥에서 들려오는 답신에 귀 기울인다는 것, 그것은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모험이다. 우리는 “우주로 쏘아올린 시들”에 대하여 어떤 답신을 듣고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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