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에 해당되는 글 151건

  1. 2024.02.28 소판 세상
  2. 2023.10.14 슬픔
  3. 2023.09.15 괴물
  4. 2023.09.14 지옥
  5. 2022.11.27 가지나무
  6. 2022.04.26 세상의 모든 나무
  7. 2021.12.31 밤의 비
  8. 2021.12.30 틱틱틱
  9. 2021.10.23 마음
  10. 2021.05.26 놀이터
  11. 2020.03.14 안녕. 안녕. 안녕.
  12. 2020.02.25 들꽃 1
  13. 2020.02.11 백만개의 미소
  14. 2019.12.04 바이러스
  15. 2019.10.03 신발
시(詩)2024. 2. 28. 09:49

[소판 세상]

 

실리콘밸리의 상징

미션픽 정상에 오르는 길

협곡을 따라 오르다

굽이치는 바람을 만난다

고개를 숙이고 바람을 거슬러

오르다 오르다 보면

소 한 마리

또 소 한 마리

소 서너 마리

그리고 소

또 소

내 평생 개판인 세상을 보아왔어도

소판인 세상은 처음 본다

풀 뜯으며

지나가는 행인을 무심히 바라보는 소

평화로운 소판 세상을 밟다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슬픔  (0) 2023.10.14
괴물  (0) 2023.09.15
지옥  (0) 2023.09.14
가지나무  (0) 2022.11.27
세상의 모든 나무  (0) 2022.04.26
Posted by 장준식
시(詩)2023. 10. 14. 03:48

슬픔

 

눈이 멀었으니까 제 정신일리가 없지

눈이 멀었으니까 본 대로 말하지 못하고

입술이 움직이는 대로 말하는 거야

 

눈 먼 자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언제나 오지에서 먹는 음식물 같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맛보아야 하는

미각의 슬픔을 너는 상상이나 해봤니

 

눈 먼 아비의 손을 잡고

사막을 떠돌아야 했던 꽃다운 안티고네는

이미 성인의 반열에 올라 있어

“눈 먼 아버지는 눈이 먼 채로 혼자 걸어야 해요”*라고 말하는

너는 누구니

 

 

* 박연준 시 ‘안티고네의 잠’에서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판 세상  (0) 2024.02.28
괴물  (0) 2023.09.15
지옥  (0) 2023.09.14
가지나무  (0) 2022.11.27
세상의 모든 나무  (0) 2022.04.26
Posted by 장준식
시(詩)2023. 9. 15. 04:51

[괴물]

 

사람이 되려면 조금 더 죽어야 하는 괴물

사람이 되려면 조금 더 자라야 하는 괴물*

 

괴물이 괴물을 모은다

사람이 되려면 서로 안부조차 묻지 않아야 하는데

괴물들이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괴물이 모여 하늘로 승천하려고 한다

하늘로 승천하는 괴물을

하느님은 보우하실까

 

하늘이 높고 눈부셔서

만세를 부른다

 

승천하는 괴물들이

서로 흘려대는 침과 피를 먹는다

 

이제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것은

괴물들의 똥뿐이다

 

 

* 이 문장들은 이영주 시, '숙련공'에서 가져옴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판 세상  (0) 2024.02.28
슬픔  (0) 2023.10.14
지옥  (0) 2023.09.14
가지나무  (0) 2022.11.27
세상의 모든 나무  (0) 2022.04.26
Posted by 장준식
시(詩)2023. 9. 14. 05:30

[지옥]

 

신성함이 녹아내리고

신비로움이 녹아내리고

마침내, 생명이 녹아내리고

우리에게 남은 건, 그래,

새하얀 거짓말, 같은,

납작한 현실, 거기에 모두 짓눌려 죽어가는

손가락과 손가락은

점점 멀어지고,

잘려나가고,

결국, 우리는,

결코,

손을 맞잡을 수

없는,

지옥에 도달했다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슬픔  (0) 2023.10.14
괴물  (0) 2023.09.15
가지나무  (0) 2022.11.27
세상의 모든 나무  (0) 2022.04.26
밤의 비  (0) 2021.12.31
Posted by 장준식
시(詩)2022. 11. 27. 09:02

가지나무

 

가지나무 삶은 물에 발 담그고 있으면

발에 든 겨울 동상 낫는다 하여

텃밭에서 가지나무 꺾어다가

냄비에 물 가득 붓고 삶는다

 

아들이 겨울마다 동상 때문에

고생하는 것이 안쓰러운 엄마는

가스 불 아끼지 않고

사골 우려내듯 가지나무를 삶는다

 

얼굴 비치는 스덴 대야에

한 가득 가지나무 삶은 물을 쏟아 붓고

엄마는 입술에 힘을 주며

무거운 대야를 들어 아들 발 밑에 내려놓는다

 

가지나무 또 삶고 있으니

걱정 말고 발 푹 담고 있으라고

한 삼십 분은 담그고 있어야 한다며

엄마는 아들을 의자에서 꼼짝 못하게 한다

 

가지나무 우려낸 물이 무슨 효험이 있는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겨울마다 손발이 차가운 것은 엄마를 닮아서 그런 것

왜 하필 자기를 닮아 손발이 차가워 고생하냐며

뜨거운 물을 몇 번이나 대야에 실어 나르던 엄마

 

뜨거운 물이 우려낸 것은 가지나무가 아니라

엄마의 안타까운 마음

그 사랑 때문에 나는 손발이 차가워도

겨울을 따스하게 보냈다

손발이 차가워도

마음이 따스하면 겨울이 꼼짝 못하는 법

 

겨울 바람이 차가워 동상 들면

가지나무를 삶지 않아도

엄마를 떠올리면 손발이 저절로 따스해진다

엄마의 사랑은 마법이다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괴물  (0) 2023.09.15
지옥  (0) 2023.09.14
세상의 모든 나무  (0) 2022.04.26
밤의 비  (0) 2021.12.31
틱틱틱  (0) 2021.12.30
Posted by 장준식
시(詩)2022. 4. 26. 12:23

세상의 모든 나무

 

아무것도 아닌 새가 된다는 것은

결국 더 이상 허공을 날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일

 

허공에 서 있는 전봇대에 부딪히는 게 무서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일

 

허공 자체가 공허하므로

공허를 뒤집어쓰는 것이

번개에 맞아 기절하는 것보다

아프다는 일

 

아프면 어때

 

허공에는 어둠이 없다

햇살이 없는 것보다 어둠이 없는 것을

상상하기는 힘든 일

 

해가 지지 않는 나라에서 사는 게

뉴스를 보지 않고 사는 것보다

지루한 일

 

허공을 가르는 바람만이

나무의 손끝을 건들 수 있다는 일

 

나에게 손짓하는 것은 오직

바람에 흔들리는 세상의 모든 나무들뿐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옥  (0) 2023.09.14
가지나무  (0) 2022.11.27
밤의 비  (0) 2021.12.31
틱틱틱  (0) 2021.12.30
마음  (0) 2021.10.23
Posted by 장준식
시(詩)2021. 12. 31. 05:24

밤의 비

 

밤의 비,

신의 축복인가

밤의 눈물인가

 

어둠을 틈탄다는 것

잠든 사람들의 숨소리와 호흡을 맞춘다는 것

밤에 눈 뜨고 있는 것들의 심장을 때린다는 것

 

빗소리,

땅의 신음인가

공기의 울림인가

 

적막을 부순다는 것

잠든 사람들의 숨소리와 춤춘다는 것

밤에 눈 뜨고 있는 것들의 영혼을 깨운다는 것

 

비와 밤과 소리

엉겨붙은

그러나 결코 섞이지 않는

너와 나와 신처럼

아주 고집 센

짙은 상처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지나무  (0) 2022.11.27
세상의 모든 나무  (0) 2022.04.26
틱틱틱  (0) 2021.12.30
마음  (0) 2021.10.23
놀이터  (0) 2021.05.26
Posted by 장준식
시(詩)2021. 12. 30. 07:40

틱틱틱

 

무언가를 중얼거리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한 사내

틱틱틱

이해할 수 없어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혐오와 공포의 눈빛을 그의 등 뒤에 쏟아 놓는다

틱틱틱

휴머니즘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우주에서 가장 마음 아픈 속삭임

엄마 뱃속에서 처음 나왔을 때

이 세상 무엇보다 해맑았을 그의 표정을

무엇이 이토록 망가뜨렸을까

틱틱틱

아무리 중얼거려도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그의 간절한 호소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듣고 계실까

틱틱틱

무수히 쏟아지는 공허한 중얼거림에

사람들은 애써 귀를 닫고

애써 눈을 피하며

그에게 친절을 베푸는 듯 길을 열어주지만

틱틱틱

하나님 보시기에

누가 어여쁜 자인지,

알 길이 없다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의 모든 나무  (0) 2022.04.26
밤의 비  (0) 2021.12.31
마음  (0) 2021.10.23
놀이터  (0) 2021.05.26
안녕. 안녕. 안녕.  (0) 2020.03.14
Posted by 장준식
시(詩)2021. 10. 23. 10:50

마음

 

해가 질 무렵에는 마음을 웅크리게 돼요

지구가 거꾸로 돌았으면 좋겠어요

시간은 왜 앞으로만 가는 걸까요

끝장을 보고 싶은 걸까요

붉은 하늘이 검어질 때

동쪽에 뜨는 별은 기어코 뚫고 들어오는 시간 바깥의 눈물일까요

별 하나

별 둘

어둔 하늘에서

눈물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어요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밤의 비  (0) 2021.12.31
틱틱틱  (0) 2021.12.30
놀이터  (0) 2021.05.26
안녕. 안녕. 안녕.  (0) 2020.03.14
들꽃  (1) 2020.02.25
Posted by 장준식
시(詩)2021. 5. 26. 05:47

놀이터

 

바람은 새들의 놀이터

사랑은 사람들의 놀이터

 

새들도

사람들도

잃어가는 놀이터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틱틱틱  (0) 2021.12.30
마음  (0) 2021.10.23
안녕. 안녕. 안녕.  (0) 2020.03.14
들꽃  (1) 2020.02.25
백만개의 미소  (0) 2020.02.11
Posted by 장준식
시(詩)2020. 3. 14. 04:23

안녕. 안녕. 안녕.

 

우리는 만나고 있지만

실은 만나지 못하고 있어.

차가운 암흑이 짙게 깔려서 그런 게 아니라

오히려 찬란한 햇살에 눈이 부셔서야.

불태워보려고 아무리 애써 보지만

장작에 불이 붙지 않는 이유는

너와 나만이 가지고 있는 성냥이

발화되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야.

나는 눈을 뜬 채로 꿈을 꿔.

지붕을 뜯어내고 하늘로 올라가는 꿈.

거기엔 적막과 고립이 존재하는데

은하수랑 가까워서 그런지

오히려 푸르고 애잔하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무엇일까.

태초부터 불가능한 일은

뼈 안 속으로 꽁꽁 숨어버린 것일까.

뼈가 아프다.

긁어보지만 살갗만 붓는다.

아무리 주물러보아도

시원해지지 않는 내 뼈들은

가능성의 세상을 그리워하며 말라가고 있어.

우리에게 구원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불가능 그 자체 일거야.

일곱개의 색깔로 구원을 표현할 수 있다면

우리의 구원은 무지개라는 이름을 차마 붙일 수 없는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불가능한 색깔일 테니까.

오늘부터 나는 너를 만나지 않으려고 해.

그게 내가 너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아.

우리 안녕은 세 번만 외치자.

그게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주문이라고 믿자.

안녕. 안녕. 안녕.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  (0) 2021.10.23
놀이터  (0) 2021.05.26
들꽃  (1) 2020.02.25
백만개의 미소  (0) 2020.02.11
바이러스  (0) 2019.12.04
Posted by 장준식
시(詩)2020. 2. 25. 06:51

들꽃

 

삼신 할매가 점지해 준 씨를 타고

예언의 계곡 넘어

바람보다 먼저 도착한 너는

 

푸르고 검은 하늘의 눈동자에

고양이의 그것보다 빛나는 열정을

아지랭이처럼 나른하게 박아 놓는다

 

무엇인가 너는

나무의 손끝을 떨게 만드는

오후의 무심한 시간보다

아득한 곳을 상상하게 만드는

 

무너져가는 담장 옆에 둥지를 틀고

이제 막 솟구치려하는 푸른 잎사귀보다

간절하게 생명을 갈구하는 너는

 

스핑크스가 오이디푸스에게 물었지

여기를 지나가고 싶냐고

그러면 수수께끼를 맞혀야 한다고

그렇게 너는 묻는다

 

나는 답을 모른다

답을 모르기에 꺾여야 하는 것은

너의 목이 아니라

나의 마음이다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놀이터  (0) 2021.05.26
안녕. 안녕. 안녕.  (0) 2020.03.14
백만개의 미소  (0) 2020.02.11
바이러스  (0) 2019.12.04
신발  (0) 2019.10.03
Posted by 장준식
시(詩)2020. 2. 11. 03:19

백만개의 미소

 

백만개의 미소

탈출하지 못한 자의 절망

바람의 무심한 마음은

먼지에게 전이되어

땅바닥만 쓸쓸하게 만들고 있다

 

레드우드(Redwood)의 몸 가장 높은 곳에 난 손가락이

땅바닥의 존재들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이런 날은 흐리거나 비가 와 줘야 하는데

하늘이 너무 맑아

레드우드의 손가락이 만들어 내는 저주를 눈치 채는

땅바닥의 존재는 아무도 없다

 

해가 뜬지 세 시간이나 지났는데도

꺼질 줄 모르는 등불은

어제를 그리워하는 것인지

내일을 기다리는 것인지 모르게

쏟아지는 햇살을 비켜가고 있다

 

아이야,

손가락을 좀 치워주렴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저주는

저주가 아니라 웃음거리일 뿐이야

 

레드우드가 손가락을 치울 때

그 사이로 쏟아지는

백만개의 미소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녕. 안녕. 안녕.  (0) 2020.03.14
들꽃  (1) 2020.02.25
바이러스  (0) 2019.12.04
신발  (0) 2019.10.03
하품  (0) 2019.10.02
Posted by 장준식
시(詩)2019. 12. 4. 11:39

바이러스

 

한 사내가 들어왔다

밀쳐 내지 못해 얼굴이 빨개지고

받아들이지 못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난다

한 입 베어 먹은 병균의 세상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촌락이 많다

탐험가라면 마땅히 그곳을 동경하겠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존재가 그곳에 대하여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현상은 사회적이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는 것은

우리는 우리만의 세상에 갇혀 산다는 선언이다

내 안에 들어온 한 사내를 끝끝내 밀쳐내지 못하면

차라리 생명을 내려놓는 게 좋다는 현명함과

끝끝내 받아들이지 못하면

차라리 깊은 잠이나 자는 게 낫다고 투덜거리는 미련함이

교차한다

우리는 내가 누구인가를 확신할 수 없다

살갗 뒤에 숨겨진 또다른 세상이

무수한 별들처럼 솟아날 때

온 몸은 열기를 내뿜으며 전율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 안에 들어온 한 사내를 끌어안는다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그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사라질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몸을 진찰하도록 허락받은 의사의

최고의 낭만적인 진단이다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들꽃  (1) 2020.02.25
백만개의 미소  (0) 2020.02.11
신발  (0) 2019.10.03
하품  (0) 2019.10.02
오후 2시의 햇살  (0) 2019.08.24
Posted by 장준식
시(詩)2019. 10. 3. 08:46

신발

 

아버지 돌아가신 날

아버지 신으시던 신발도

갈 길을 멈추고 방황했네

 

따라 나설 길이 없어

정지해 있던 신발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자취를 감췄네

 

이제 그 신발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네

세상에 그렇게 많은 신발이 있어도

아버지가 없으니

아버지 신발은 한 켤레도 없네

 

평생을 따라 다니던 신발도 더 이상 따라 가지 못하는 곳에서

아버지는 무엇을 발에 걸치고 계실까

신발이 없으니

길을 나서지 못해

방황할 일도 더 이상 없는 것일까

 

, 신발을 신어보네

, 이렇게 찬란히 살아있네

가지런히 놓여 있는 신발을 신고 이렇게 길을 나서네

 

나를 따라 나서는 것은 신발 한 켤레뿐

신발이 없으면

방황도 못하겠네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만개의 미소  (0) 2020.02.11
바이러스  (0) 2019.12.04
하품  (0) 2019.10.02
오후 2시의 햇살  (0) 2019.08.24
아무 날의 도시  (1) 2019.01.18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