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에 해당되는 글 151건

  1. 2019.10.02 하품
  2. 2019.08.24 오후 2시의 햇살
  3. 2019.01.18 아무 날의 도시 1
  4. 2019.01.05 무소식 1
  5. 2018.12.15 파국 1
  6. 2018.11.28 최후의 사람
  7. 2018.11.23 다리의 독백
  8. 2018.10.31 상처
  9. 2018.10.31 홈리스
  10. 2018.10.21 죄책감 1
  11. 2017.11.02 배꼽 1
  12. 2017.10.14 욕망 1
  13. 2017.10.14 녹차 1
  14. 2017.06.27 어떤 날 1
  15. 2017.03.31 나는 불을 마저 켠다 1
시(詩)2019. 10. 2. 15:05

하품


손을 뻗쳐도 닿지 않는 광기가 있다

아침 공기가 차가워지면 더 멀어지는 광기가 있다

 

어젯밤 꿈자리는 어땠어?

아내가 묻는다

나는 하품을 한다

꿈 이야기만 나오면 나는 졸립다

 

숲길을 좀 걷고 싶었다

거기엔 검푸른 이끼가 사방으로 흩어져 있고

낙엽은 구석에 몰린 채 바람과 맞서고 있으며

새들의 무관심한 시선이 머무는 곳이다

 

같이 갈래?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하품을 한다

숲 얘기만 하면 아내는 졸립다

 

나는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손을 펴 손금을 보여준다

숲속의 길은 내 손금보다 단순해

길 잃을 염려는 안 해도 돼

 

아내는 내 손금을 빤히 들여다 본다

거짓말 하지마

아내는 웃으며 말한다

내 몸에 난 가장 단순한 길을 보여준 건데

웃음 밖에 안 나온다

 

아내의 눈을 쳐다본다

구멍 난 빛은 눈 속에서 떠날 기미가 없다

손을 다시 한 번 뻗어본다

손금 속에 있던 숲길이 미끄러져 나간다

 

하품 좀 그만해

아내의 잔소리가 없었다면

미끄러져 나가는 손금의 숲길 속에서

넘어질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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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
시(詩)2019. 8. 24. 06:35

오후 2시의 햇살

 

그림자도 그늘도

빛이 없으면 애초부터 생기지 않았을

어둠의 유물이다. 그러므로 그림자도 그늘도 그들의 존재에 책임이 없다.

 

동굴이 없었다면 애초부터 빛은 동굴에 머무르려 하지 않았을 것이고, 동굴은 그저 어둠만을 유일한 존재로 생각하며 그것에 매달려 살았을 것이다.

 

하늘이 지독하게 맑은 날,

나무는 그 맑은 하늘에 기어이 구멍을 내고

빛을 얼마큼 덜어내려 한다.

 

그것은 하늘에게도 나무에게도 상처다. 하늘은 나무에 가리고 나무는 그늘에 가린다. 하늘의 풍경이 갑자기 슬퍼지는 것은 드러난 것들 때문이 아니라 가려진 것들 때문이다.

 

공간을 채우는 것은 빛이 아니라 소리다. 소리는 빛을 통해 자기를 드러내고 빛은 소리를 통해 자기를 감춘다. 빛은 강렬하여 눈을 감게 만들고, 감은 눈은 귀에게 감각을 양보한다.

 

새들은 지금 속고 있는 것이다. 허공에는 빛도 없고 소리도 없는데, 그들은 빛 속을 가로지르며 소리를 내지른다. 그러나 그것을 들어주는 이들은 빛에도 속하지 않고 소리도 들을 수 없는

어둠의 유물들이다.

 

정확히 직각으로 꺾여 들어오는 오후 2시의 햇살은

빛도 소리도 만들어 내지 않는

연약한 우주의 추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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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
시(詩)2019. 1. 18. 11:01

아무 날의 도시*

작은 새 한 마리가

공중에 벌러덩 누워 있다

그가 유령이라도 된다는 듯 

햇볕은 새의 그림자를 만들지 않고

유유히 땅에 떨어진다

지나가던 개가 유령이라도 본 듯

공중으로 고개를 쳐들고

멍멍 댄다 

, 저 캐새키 

자전거를 타고 그곳을 지나던 

잠옷 입은 아저씨가

성질 난 이방인처럼 욕을 해댄다 

화들짝 놀란 개주인이

눈을 껌뻑이며 욕이 울려 퍼지는

공중으로 고개를 돌린다

개주인의 눈에

공중의 새가 들어와 박힌다

개주인은 빙의 한 듯

날개 죽지를 펄럭인다

날개 죽지 사이로 

무시무시한 음절이 탄생한다 

.. .. 

싸이렌을 울리며 전속력으로 지나가는 

경찰차 덕분에

그날 탄생하지 못한 마지막 음절은

.. 익 대며 급하게 선

옆집에 사는 정신 나간 아줌마의

빨간색 승용차 바퀴 사이에 갇혀 있다 

* 신용묵의 시 제목에서 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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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2019. 1. 5. 11:00

무소식

 

가로등이 인상파의 그림처럼

허공에 걸려 있다

찌그러진 파동이

헐거워진 공기를 뚫고

담벼락에 부딪친다

밤은 멀뚱멀뚱 구경만 할 뿐

빛의 속도로 달려가지 못한다

구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달은 기울고

은 열려 있던 창문을 마저 닫는다

길어진 가로등은

땅바닥에 기대어 잠들 생각인가 보다

낯에 타다 남은 햇볕이

군데군데 스며 있을 뿐

아무 데서도 기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무소식이 구원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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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2018. 12. 15. 05:03

파국

 

무슨 일이니

 

오른쪽은 하늘을 향해 왼쪽은 바닥을 향해

꺾어져야 한다

그리고 나서 앞을 향해 고꾸라지면 시간의 문은

뒤를 향해 열린다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앞이 안 보인다

 

이 세상에서는 안 통하는 상식이 하나 있다

눈물은 슬픔이 아니라 사탄이 눈물샘에 타 놓은 독이다

 

무얼 하고 있어

 

하마터면 마실 뻔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은인은

파국을 몰고 다니는 미치광이다

 

지나가는 미치광이가 말한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

 

귀를 다친 사람만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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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2018. 11. 28. 05:56

최후의 사람

 

모든 것을 다 가진

최초의 사람

모든 것을 다 잃은

최후의 사람

 

어느 쪽을 향해 달려가는가

 

이정표가 없어

무작정 달린다

 

심장에 기억된 방향이 없어

발걸음에 그림자만 가득하다

 

무턱대고 모래를 적시는 파도*처럼

무턱대고 시간을 적신다

 

숨쉬기 위해 바깥으로 뛰어나온

시간의 촉수를 움켜잡는다

 

적막, 고립, 정주, 그리고 투쟁

 

지루한 공기를 파헤치면

비로소 도착하게 될 허공

 

* 이원의 시 <호주머니칼>에서 빌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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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2018. 11. 23. 06:50

다리의 독백

 

눈이 멀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나는 혼자서 움직여 본 적이 없어요

길을 걸었지만

그 길은 내게 늘 허공이었어요

 

끝이 안 보이면 어떡하죠

길 끝이 낭떠러지면 모른 척 떨어져야 하나요

 

나에게 가장 힘든 일은

발걸음을 떼는 일이에요

 

머리와 몸과 손바닥이

나만 바라봐요

 

눈이 멀면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는 듯 걸어가야 해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아무도 날 멈춰 세워주지 않으면 어떡하죠

안 아픈 척 절뚝거려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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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2018. 10. 31. 14:33

상처

 

물병

그 안의 꽃

꽃 안의 빨강

빨강 안의 단잠

단잠 안의 꿈

꿈 안의 물병

물병 안의 꽃

꽃 안의 빨강

빨강 안의 단잠

단잠 안의 꿈

꿈 안의 물병

지워지지 않는 물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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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2018. 10. 31. 14:27

홈리스

 

거리 위에 유령이 떠돈다

어느 우주에서 왔을까

저들의 카리스마에 주눅들어

밤도 아무 말 못하고

깜깜하게 비켜간다

이슬인들 그들을 덮칠 수 있으랴

뭣 모르는 도둑 고양이가

그들의 곁을 훔칠 수 있을 뿐

공권력도 그들에게서 아무 것도 빼앗지 못한다

그들에게 지붕이 없다는 것은 불행이 아니라

해탈의 징표이다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는 거룩함이다

존재의 뒤, 또는 존재의 앞에

잉여로 존재한다는 것은

아무에게나 허락된 축복이 아니다

바람만이 그들의 등을 타고 넘을 수 있으므로

그들은 바람처럼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이 타락한 세상의 찬란한 신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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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2018. 10. 21. 08:34

죄책감

 

라면을 먹는다

면발이 꼭 눈물 같다

목구멍으로 칼칼하게 넘어간다

국물은 면발이 짜낸 눈물의 찌꺼기인가

맵고 짜다

마시면 탈이 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냄비에 얼굴을 들이대는 무모함은

용기가 아니라 무지다

면발이 짜낸 눈물의 찌꺼기를 들이킨 바람에

몸은 하루 종일 퉁퉁 부어

죄책감을 끌어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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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2017. 11. 2. 16:48

배꼽

 

우리는 서로의 배꼽을 어루만진다

연결되고 싶어서

머리를 쓰다듬는 일은 식상하기도 하고

철 지난 과일같이 텁텁하다

어제는 시장에 갔었다

배부른 물고기를 보고

그만 창자를 만질 뻔했다

아가미가 덜컹거리지 않았다면

나의 손가락은

물고기의 배꼽을 관통했을 것이다

나는 여기에 있고

너는 거기에 있어서

우리들의 사이는 절벽처럼 깊다

눈빛을 주고 받는 것만으로는

턱 없이 부족한 존재의 정보는

배꼽에 손이 닿을 때만 전송되는

위험한 세상이다

우리는 서로의 배꼽을 어루만진다

연결되고 싶어서

그 간절함에 비하면

위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서로의 배꼽을 어루만지며

태초의 태반으로 돌아가

분리되지 않은

완전한 사랑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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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2017. 10. 14. 06:25

욕망

 

동생의 이름을 불러본다

허공은 너무 좁아

벽장 속에서 불러본다

어머니가 부엌문을 열고 어디론가 급히 가신다

장독대 한 켠에 숨겨 있던 한숨이

어머니가 머물던 자리를 메꾼다

손을 내밀어 쓰다듬어 보지만

쓰다듬어지는 건 오히려 내 손등이다

오늘은 별이 바닥에 떴다

그래서 하늘을 쳐다보지 못하고

바닥만 쳐다봤다

돌부리에 걸린 별 하나가

나뒹굴어 다닌다

집어 하늘로 던져보지만

허공에 박히지 못한 별은

슬프게 하강한다

동생은 지금 어느 하늘 어느 땅을 지나고 있을까

그것을 궁금해 하고 있는 찰나,

나는 깨닫는다

나에겐 동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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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2017. 10. 14. 06:24

녹차

 

뜨거운 물이 우려낸

찻잎의 푸른 눈물,

나는 뜨거운 목으로

그것을 받아, 마시며

헝클어진 감각을 추스른다

촘촘해진 눈은

공기에 스민 추악을 걸러내고

상쾌해진 코는

바람에 밴 광기를 밀어낸다

내가 만지고 싶은 것은

구름처럼 허물한 살갗이 아니라

파도같이 억척한 슬픔이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연기는

승화되는 찻잎의 푸른 눈물이다

거기에 얼굴을 갖다 대면

비로소 세상의 눈물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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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2017. 6. 27. 15:28

어떤 날

 

나는 까만 염소가 되어

애처롭게 울었다

이마 주름에 저녁 노을이 고이고

무릎 사이로 시린 바람이 흘렀다

우리 아버지 시신 화덕에 들어가던 날처럼

세상은 무심하게

노란 장미를 피우고

별을 공중에 띄웠다

 

피가 역류한다

심장이 뛰는 것은 기적이다

눈은 더이상 하늘을 보지 못하고

바닥만 보게 되었는데

먼지를 일으킨 건 바람이 아니라

눈물의 중력이었다

 

나는 또 한 번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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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2017. 3. 31. 11:40

나는 불을 마저 켠다

 

나는 불을 마저 켠다

이것은 낭비도 아니고

지나친 용기도 아니다

이것은

어둠에 대한 극기다

나는 잉여의 불을 삼킨다

어둠보다 두 배는 밝아야

혈관이 범람한다

그렇지 않으면 삼킨 불이

살갗을 뚫고 나오지 못한다

심장에만 고여 있는 불은

아무 것도 밝히지 못한다

그가 만질 수 없는 불은

그저 어둠의 수하일 뿐이다

나는 불을 마저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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