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과 이야기2020. 10. 23. 08:25

[가재 잡고 놀던 시절]

 

내 기억으로, 우면산 기슭에 물이 급격히 마르기 시작한 것은 1987년도,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이다. 그 이전까지 우면산 기슭엔 물이 풍성하게 흘렀다. 우면산 깊은 계곡엔 3월 말까지 눈이 쌓여 있었다. 겨우내 물을 품은 산은 졸졸졸 시냇물을 흘려 보냈다. 그 물은 저수지로 모여들었고, 저수지로 모여들지 전에 있었던 '장사바위'는 여름 내 동네 아이들의 가장 좋은 피서지였다. 큼지막한 돌로 물을 막아 놓고 만든 간이 수영장은 우리들의 행복한 놀이터였다.

 

저수지는 동네 아이들에게 여름에는 수영장,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이 되었다. 저수지는 수심이 꽤 깊었는데, 흔히 동네에 있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저수지와 관련하여 회자되었다. 누구누구 집 할머니가 여기에서 빠져 죽었는데, 그 할머니가 아직도 저수지에 살고 있어서 저수지에서 수영하다 잘못 걸리면 그 할머니가 다리를 잡아당긴다, 뭐 이런 류의 '전설'이었다. 그러한 전설은 동네 불량배 형들에 의해 '비신화화' 되기 일쑤였고, 그 형들은 그 전설을 전혀 믿지 않는다는 태도로 저수지에 설치된 수로 구조물에서 다이빙을 하며 저수지를 마음껏 활개쳤다. 그런 형들이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저수지에서 수영을 하지 못했을 것이며, 다이빙은 더더구나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형들의 힘은 막강하여, 모든 동네 아이들을 '비신화화'로 이끌었으며, 저수지의에서의 수영과 다이빙은 아주 흔한 일이 되었다.

 

저수지에는 일급수에만 산다는 고기들이 많았다. 모래무지, 송사리, 쉬리, 피라미, 참붕어, 소금쟁이 등, 저수지는 자연의 보고였다. 그리고 빼놓은 수 없는 목록 중에는 소라와 가재가 있다.

 

특별히, 가재 잡는 일은 즐거움이 가장 컸다. 가재를 잡으려면 정숙성과 정확성과 과감성이 있어야 했다. 조용히 물속에 손을 넣어야 했으며, 아주 천천히 돌을 움직여야 했다. 그리고 가재가 발견되면, 정확하고 신속하고 과감하게 행동해야 했다. 무엇보다 가재의 몸통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집어야 했는데, 잘못했다간 가재의 집게에 손가락이 물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가재는 저수지에만 있지 않았다. 가재는 우면산 계곡물을 따라 고루 퍼져 있었다. 그래서 가재를 잡기 위해 아랫계곡부터 저수지를 거쳐 윗계곡까지 훑고 지나가곤 했다. 그러면 족히 반나절은 후딱 지나갔다.

 

가재 잡는 일은 일종의 탐험이었다. 어느 돌 밑에 숨어 있는지 알 수 없기에, 개울물에 수없이 흐트러져 있는 돌들을 하나씩 하나씩 조심스럽게 들어 그 밑을 들여다보는 작업은 끈기와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러나, 그 고된 작업 자체는 고되게 다가오지 않았고,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돌 밑에 숨어 있는 가재를 발견하는 것 자체가 가재를 찾아 헤매는 탐험 자체를 즐겁게 만들어 주었고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돌을 들어 그 밑에 숨어 있는 가재를 발견하는 일, 그 자체가 얼마나 흥미진진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이 흥미진진한 탐험은 우면산 계곡에 더 이상 물이 흐르지 않게 된 후 멈췄다. 물이 흐르지 않으니 가재가 살지 않았고, 물과 가재가 없으니 더이상 계속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하던 그 아름다운 탐험은 나의 인생에서 사라져버렸다. 그저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가재 잡는 일과 신앙은 묘하게 닮았다. 가재 잡는 일이 탐험이었듯이, 신앙도 탐험이다. 신앙은 사건에 숨어계신 하나님을 찾는 탐험과 같다. 한마디로, 신앙은 하나님께로 향하는 탐험이다. 가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돌을 들었듯이, 우리는 하나님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간구하고 행동한다. 가재를 잡는 탐험이 고되고 지루한 일이긴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고 놀이이며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는 것은 가재를 발견하여 잡는 기쁨이 그 탐험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탐험을 멈추지 않는 것은 그 탐험 속에 하나님이 계시며,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에게 살아갈 힘과 기쁨을 주시고, 구원을 주시기 때문이다.   

 

우면산 계곡에 물이 말라 가재잡이 탐험이 멈추게 되었을 때 나는 삶이 축소되고 메말라 가는 것을 느꼈다. 실제적 탐험이 줄어드니 삶의 기쁨도 줄어들었다. 탐험을 멈추는 순간, 우리의 생명은 이렇게 축소되고 만다.

 

현대인의 삶이 왜 이렇게 축소되고 메말랐을까. 탐험을 멈추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강력하게 생각한다. 가재잡이 탐험이 멈추게 되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향한 탐험도 멈추게 되었다. 이게 참 신비한 현상인 거다. 생각해보라.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향한 탐험을 하지 않고 사는지. 하나님을 향한 탐험이 없으니, 우리의 삶은 점점 더 축소되고 메말라 가고 있다.

 

생명의 풍성함은 하나님에게서 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탐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가재잡이 탐험을 다시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탐험하는 삶이 되어, 하나님을 자연스럽게 탐험하게 될 텐데, 그렇지 못한 현실, 말라버린 우면산 계곡을 바라보며, 말라버린 우리의 영혼을 바라본다.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는 환상을 보았던 이사야의 마음으로, 우면산 계곡에 물이 넘쳐 흐르는 것을 꿈꿔본다. 그때 우리는 숨어계신 하나님을 발견하여 구원을 얻으리라.

 

탐험은 계속되어야 한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