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11. 2. 7. 14:24

2011 2 6일 주일 예배 설교

본문: 이사야 58:1-9

제목: 금식기도

 

제목만 보면, 금식해라, 금식기도 합시다, 무슨 이런 말씀 드릴 것 같아 겁나십니까? 바쁘고 힘들게 사시는데, 금식하자고 하면 신경질 나시죠? 걱정 마십시오. 그런 거 아닙니다. 오늘 말씀 제목은 금식기도이지만, 말씀의 초점은 금식기도 하자에 있는 것이 아니니, 마음 편하게 말씀에 경청해 주십시오. (그런데 설교문 작성을 마치고 드는 생각인데, 오히려 금식기도 하자라는 말이 더 편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시대적 배경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사야서의 말씀은 긴 세월에 걸친 말씀입니다. 대개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제 3 이사야라고 불리는 56장에서 66장에 들어 있는 말씀입니다. 이사야서의 말씀은 포로로 잡혀 가기 전부터 시작해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의 이스라엘의 삶까지 기록해 놓고 있는 방대한 책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의 시대적 배경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을 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의 삶이 쉽지 않았습니다. 무너진 성전도 지어야 했고, 살아갈 집도 지어야 했고, 삶의 터전을 가꾸어야 했고, 무엇보다 무너진 신앙의 틀을 다시 잡아야 했습니다. 신앙의 틀을 다시 잡는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신앙이란, 그 동안 무너졌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회복시키는 것이었으니까요.

 

집도 짓고, 성전도 짓고, 무너진 성벽도 재건축하고, 삶의 여러 가지를 다시 복구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왜 그들이 집도 잃었고 성전도 잃었고, 예루살렘 성에서 쫓겨나 포로생활을 하다가 이렇게 극적으로 돌아오게 되었냐, 입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줄기차게 말합니다. 바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포로생활에서 예루살렘 성으로 되돌아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번 다시 그러한 오류를 범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모든 것이 다 조심스러웠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큰 일을 겪고 나면 무슨 일에든지 조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름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로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나오는 금식에 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식을 통해 종교적인 경건을 회복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오늘 말씀 5절에 나오듯이, 그들은 금식한답시고, 종교적인 경건을 회복한답시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 대가로 하나님의 은총을 구한답시고,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폈습니다. 이러한 행동을 취함으로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경건해지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고 그래서 하나님의 은총을 입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름대로 노력한 겁니다.

 

그런데 그들은 굉장히 충격적인 대답을 듣습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들에게 상급을 내리실 줄 알았는데, 도리어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을 의심했습니다. 3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 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이것을 요즘 말로 바꾸면, 예배도 안 빠지고 나오고, 헌금도 잘 하고, 교회 봉사도 잘 하는데, 왜 자기를 알아 주지 않느냐는 겁니다.

 

문제가 뭐냐 하면,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요즘 우리들이나 경건한 삶에 대해서 매우 오해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경건의 삶을 따로 뚝 떼어서 생각한다는 것이죠. 큰 틀에서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연관된 삶 따로 있고, 하나님께서 신경 안 쓰시는, 하나님과 상관 없는 삶이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우리가 경건에 대해서 얼마나 잘못 생각하고 있는 지를 일깨워 줍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금식, 경건은 살면서 어느 일정 기간 동안 뚝 떼서 경건을 강조하는 식의 경건이 아니고, 삶을 살아가는 방식, 관계의 새로운 변화를 말합니다. 한 순간 만이 아니라 한 부분 만이 아니라, 모든 삶의 방식을 바꾸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신약의 용어로 말하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오늘 말씀에 근거해서, 한 가지만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이런 질문을 한 번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왜 하나님을 찾으십니까? 오늘 주제어와 관련해서 다시 질문 드리면, 금식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서 입니다. 만나서 하나님의 뜻을 간구하고, 하나님의 구원과 은총을 받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서 입니다. 이게 틀린 건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완전하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경건이란 하나님과의 관계만 올바르다고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간과하는 문제가 바로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어느 누구도 이웃과의 관계, 서로 간의 관계를 올바르지 못하게 하면서 온전하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겁니다.

 

이들이 얼마나 하나님과 관계를 잘 맺고 있는지를 보십시오. 2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공의를 행하여 그의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하는도다.” 이들이 했던 행위들,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들을 통해서 이들은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것을 즐거워했습니다.

 

요즘 말로 바꾸면, 위에 말씀 드렸듯이, “예배 잘 드리고, 헌금 잘 하고, 교회 봉사도 잘 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했던 이들에게 심각한 문제 있었습니다. 이웃과의 관계가 엉망이었다는 겁니다. 6절과 7절 말씀에서 그것을 볼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모두 하나님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이웃과 관련된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그들이 이렇게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들은 금식한다고 하면서 오락을 구하고 온갖 일을 시켰습니다. 그들은 금식하면서 논쟁하고 다투고 악한 주먹으로 이웃을 쳤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이 의롭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금식하면서도 이웃 사람들에게는 상처 주는 일만 했습니다. 배고픈 자, 집 없는 자, 헐벗은 자, 즉 가난한 자를 나 몰라라 했고, 자신들의 핏줄, 형제 골육들의 어려움을 나 몰라라 했습니다. 한 마디로 바꾸어서 이야기 하면, 자신의 문제에만 빠져서 주변을 전혀 돌아보지 못했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변을 좀 돌아보십시오. 자꾸 자신의 문제에만 갇혀 있지 말고,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주변 사람들에게, 이웃들에게 무엇인가 좋은 일을 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그들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라는 말씀입니다. 불편한 마음, 불편한 관계를 다 푸시라는 말씀입니다. 그게 당장은 안 되더라도, 이미 마음 속에는 그러한 용서와 용납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마음이 열려야 한다는 겁니다.

 

금식과 연관 지어서 이웃과의 관계를 돌아보라고 말씀하는 이유는 금식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은 최고의 경건한 방법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금식에 초점을 두지 않으시고, 이웃과의 관계 맺음에 초점을 두고 참된 금식, 참된 경건이 무엇인지, 당신 자신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계신 겁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만 올바르면 된다는 생각은 버리십시오. 그렇다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엉망이고 주변 사람들에게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도 버리십시오. 이 말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은 모두 하나님과 관계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영역 따로, 이웃 영역 따로, 이렇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의 구석구석을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교회 생활만 잘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가정 생활도, 직장 생활도, 내가 관계되어져 있는 모든 삶의 영역에서 나는 하나님께 금식기도 하는 그러한 경건한 삶이 형성되어 있는지를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영역에서 관계가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르게 맺어졌을 때 주어지는 약속이 있습니다.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급할 때 하나님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빛처럼 빛나며, 우리의 삶의 어려움과 고통이 급속하게 치유되는 길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들어설 때임을 기억하십시오. 문제 해결해 달라고 하나님께만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려야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만, 이건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태도)의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금식기도는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태도)의 문제입니다.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 나라를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사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내가 여기 있다라고 응답하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닙니까?

 

여러분의 삶의 지극히 작은 한 영역만 하나님께 드리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그러한 삶은 없습니다. 내 삶의 모든 영역을 하나님께 드리고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을 살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렇게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사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분명히 따릅니다.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네가 부르짖을 때에 내가 여기 있다하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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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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