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시간관]

 

우리는 흔히 기독교의 시간관을 '일직선적 시간관'이라고 생각한다. 창조에서 시작해서 종말에 이르는 시간관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 시간관에 대한 명백한 오류이다.

 

'일직선적 시간관'은 기독교의 산물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자본주의는 시간의 차이를 통해서 이윤을 창출하는 구조인데, 새로운 제품이 낡은 제품을 밀어낼 때 이윤이 발생한다. 낡은 제품은 과거이고, 새로운 제품은 현재이다. 과거가 물러나고 현재가 도래하고, 미래가 곧 올 거라는, '일직선적인 시간관'이 성립되어야만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

 

기독교의 시간관을 '일직선적 시간관'으로 오해하는 것은 자본주의 논리를 종교화시키는 우상숭배에 불과하다. 기독교는 일직선적 시간관을 갖지 않는다. 기독교는 종말론적 시간관을 갖는다. 질적으로 다른 시간이 인간의 시간(역사) 안으로 불가항력적으로 밀고 들어온 시간을 종말론적 시간이라고 한다.

 

자본주의적 시간관에서 구원이란 새로운 제품을 구입하는 것, 과거를 현재로 대체하고, 현재가 미래로 대체될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하지만, 기독교의 구원은 그러한 방식으로 임하지 않는다. 기독교의 구원은 종말론적으로 임한다. 즉, 기독교의 구원은 질적으로 다른 시간이 인간의 시간(역사)으로 불가항력적으로 또는 은혜로 밀고 들어오시는, 또는 이미 오신, 성육신 사건에 의해서 발생한다.

 

역사가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른다는 생각은 기독교의 생각이 아니다. 역사가 마냥 흐른다고 구원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역사 안으로 뚫고 들어온 하나님의 구원 사건에 의해서 발생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역사에서 희망을 보는 게 아니라, 역사를 뚫고 들어오시는 그리스도에게서 희망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 의미 있는 것이다. 역사 안에는 이미 그리스도의 구원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역사에 매이지 않는다. 기독교인은 자유롭다. 이미 역사 안에 임한 그리스도의 구원을 신앙을 통해 자기의 것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제 기독교인은 그 자유를 통하여 역사 안에 존재하는 '악'과 맞서 싸울 수 있다. 인간 그리스도인은 역사의 지배를 받는 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