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의 시 '소리의 뼈']

 

김교수님의 새로운 학설을 발표했다

소리에도 뼈가 있다는 것이다

모드 그 말을 웃어넘겼다, 몇몇 학자들은

잠시 즐거운 시간을 제공한 김교수의 유머에 감사했다

학장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은 일학기 강의를 개설했다

호기심 많은 학생들이 장난삼아 신청했다

한 학기 내내 그는

모든 수업 시간마다 침묵하는

무서운 고집을 보여주었다

참지 못한 학생들이, 소리의 뼈란 무엇일까

각자 일가견을 피력했다

이군은 그것이 침묵일 거라고 말했다

박군은 그것을 숨은 의미라 보았다

또 누군가는 그것의 개념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모든 고정관념에 대한 비판에 접근하기 위하여 채택된

방법론적 비유라는 것이었다

그의 견해는 너무 난해하여 곧 묵살되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 다음 학기부터 우리들의 귀는

모든 소리들을 훨씬 더 잘 듣게 되었다.

 

* 1989년 3월 7일 새벽, 29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기형도, 그리고 그가 남긴 시는 그 이후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습니다. 그가 죽은 후에 유고시집으로 발간된 <입 속의 검은 잎>을 읽는 것은 그당시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그의 시가 유명해진 것은 그의 시집의 제목을 정하기도 하고 그의 시에 대한 평론을 쓴, 당대 최고의 문학평론가 김현의 공로가 큽니다. 김현은 기형도 시에 녹아 있는 '죽음'의 모티브에 주목했고, 그래서 시집의 제목도 '입 속의 검은 잎'이라고 정했죠. 기형도의 시 '입 속의 검은 잎'이 그의 시 세계를 대표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기형도의 시는 한국 예술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시 제목을 딴 영화도 두 편이나 있습니다. "봄날은 간다"와 "질투는 나의 힘"이 그것이죠. 그리고 그의 시 "우리동네 목사님"은 '진보적인' 목사님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기도 했죠.

 

위의 시 "소리의 뼈"에 등장하는 김교수처럼, 때로는 저도 강단에 올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 있다가 내려오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칼 바르트가 말했듯이, 설교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죠.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으며, 하나님의 계시를 '설교'를 통해서 말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불완전하고 불가능한 작업입니다. 그래서 매주 '설교'를 해야하는 목회자로서, 불가능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아 늘 불안한 마음과 부족한 마음, 그리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목사가 설교하려고 주일 강단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려오면, 교회가 갑자기 술렁대겠지요. 그러나 저는 그런 심정으로 매주일 강단에 섭니다. 내가 지금 뭔가 설교를 하고 있으나, 나는 아무 것도 말하고 있지 않는 심정. 나는 침묵할테니,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라는 심정. 우리 모두, 설교 시간에 발생하는 '침묵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집중하는, 좋은 신앙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침묵해야 하는데, 오늘도 말이 많았군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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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