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과 이야기2020. 7. 25. 06:59

[나는 다시 태어나면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

 

인생을 돌아보면 후회되는 일들이 있다. 나는 내 인생에 가장 후회는 일 중 하나가 피아노를 잘 배우지 못한 것이다. 엄마가 피아노 배우라 할 때 기타를 배울 때라 '싫다' 말했고, 이후 내가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엄마에게 졸랐을 때는 고등학교 입학시험(학력고사)을 앞두고 있었던 때라 엄마가 '안돼'라고 하셨다. 이렇게 시간은 엇갈리고, 나는 피아노를 정식으로 배우지 못했다.

 

나는 클래식 매니아다. 중학교 2학년(그때로 기억한다), 아버지와 함께 말죽거리(양재역)에 갔을 때, 아버지가 일 보시는 동안 나는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듣고 있었는데, 그때 우연히 FM 라디오 93.1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연주를 듣게 되었다. 물론 이 이전에도 클래식 연주는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지만, 그 순간이 바로 내가 클래식의 세계에 입문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클래식의 세계로 쭉~ 빨려 들어가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클래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주 어릴 때 바이올린을 조금 배운 터라 클래식 음악에 좀 더 쉽게 다가설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클래식에 대한 나의 관심은 계속되었고, 대학 들어가서 과외 아르바이트 하여 번 돈으로 처음 산 물건이 그당시 유행하던 인켈 오디오 시스템이었다. 그것을 들여오던 날, 나는 하루 종일 그 앞에 앉아 음악을 들었다. 그 중에 아직도 기억나는 음반은 칼 뵘이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 6 '전원'과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이다.

 

나는 "음악은 듣는 게 아니라 보는 것"이라는 음악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할 수 있으면 현장에 가서 음악을 '보려고' 한다. 조지아에 살았을 때 가장 좋았던 것은 그곳에 예술의 전당 같이 좋은 콘서트 홀이 있었고,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와서 연주를 했으며, 매우 싼 값에 그것을 관람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살던 조지아 컬럼버스에 있는 '컬럼버스 교향악단'은 미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교향악단으로서 꽤나 수준이 높았다. 매달 정기 연주회를 했고, 세계적인 연주가들을 초청하여 협연도 활발히 하였다. 조슈아 벨도 그 중 하나였다. 여러가지 좋은 연주회를 많이 관람했지만,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크리스 보띠(Christ Botti)의 트럼펫 연주였다. 퍼포먼스의 화려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또한 셀틱 우먼(Celtic Women)의 공연도 세 차례나 보았다. 빈 소년 합창단의 연주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아무튼, 조지아에 머무는 13년 동안 수많은 연주회를 관람했다. 그것은 나의 깊은 감성적 자원이 되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으로 이사 와서 가장 아쉬운 것은 음악회에 자주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심포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악단임에도 접근성이 별로 좋지 않다. 샌프란시스코까지 가는 길도 멀고, 콘서트홀까지 가려면 지하철을 타던지 자동차를 몰고 가야 하는데, 지하철 타고 걸어가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고 차를 몰고 가서 주차하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다. 게다가 입장료가 너무 비싸서 언감생심일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종종 스탠포드대학교 빙 콘서트 홀에서 열리는 음악회를 가는데, 그나마 그것을 위안을 삼고 있다.

 

나는 돈 쓸 일이 별로 없지만, 책을 사는 데와 클래식 음반을 사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동안 모은 클래식 음반이 많은데, 나름 체계적으로 모으려고 노력을 했고, 왠만한 클래식 음반은 다 소장하고 있다. 다행히 미국에서는 클래식 음반 구입이 손쉬울 뿐더러 가격도 착하다. 그런 점에서 아마존은 참 좋은 구매 사이트이다. (물론 아마존 때문에 로컬 경제가 무너진 것은 싫어한다.)

 

나는 바로크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클라비어 때문이다. 클라비어의 '찢어지고 갈라지는 듯한 음색'이 듣기에 거슬리고 부담스럽다. 그래서 클라비어가 들어간 바로크 음악은 별로 듣지 않는다. 그리고 쇤베르크 이후의 현대음악 중 전위적인 음색을 쓰는 음악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조화와 균형' 속에서 아름답게 진행되는 음악을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베토벤 음악과 그 이후 등장하는 낭만주의 음악을 선호한다.

 

음반을 고를 때도 깔끔하게 녹음된 디지털 리마스터한 음반을 선호한다. 언젠가 라흐마니노프의 오리지널 연주 음반을 구매한 적이 있는데 녹음 품질이 너무 좋지 않아 한 번 듣고 처박아 둔 경험이 있다. 라흐마니노프가 직접 연주한 것이라 소장 가치는 있지만, 녹음의 질이 좋지 않아 그것을 들으려면 적지 않은 인내가 필요하다. 그렇게 듣는데 인내가 필요한 음반은 사지 않으려 한다. 아무리 원작자의 연주여도 말이다.

 

교향곡, 사중주, 소나타, 협주곡 등 모든 장르의 곡을 즐기고 좋아하나, 나이 들면서 관현악이 많이 들어가 귀를 현란하게 때리는 관현악 교향곡보다는 협주곡이나 소나타 형식의 음악에 손이 간다. 특별히 협주곡은 우리의 인생을 잘 표현해 주는 것 같아 좋다. 대표적인 악기와 여러 악기들이 합을 맞추어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는 것은 마치 한 인간이 동료인간과 세계와 어우러져 인생을 빚어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별히 나는 피아노 소나타 곡이나 협주곡에 마음을 빼앗긴다. 피아노의 음색이나 선율은 왠지 나의 영혼과 합일을 이루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나의 마음을 사랑과 배려로 어루만지는 성령의 '루아흐'같다. 독서를 하며 틀어 놓고 있어도 나를 전혀 방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도와 뭔가 좀 더 의미 있는 시간으로 이끄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요즘 하나의 목표가 더 생겼다. 피아노 곡을 작곡가 별로 체계적으로 모아 보는 것이다.

 

나는 다시 태어난다면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 쇼팽의 녹턴을 들을 때면 이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 피아니스트가 되어 쇼팽의 녹턴을 귀로 듣는 게 아니라 손가락을 만지고 싶다. 그러면 얼마나 행복할까, 상상만 해도, 마치 천국에 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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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