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에 가면

 

올해 상반기, 1월부터 5월 마지막 주일까지 우리는 구약의 복음서라고 불리는 <출애굽기>를 살펴봤습니다. 출애굽기를 구약의 복음서라고 부르는 이유는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 사건이 출애굽 사건의 우주적 확대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의 이야기들과 거기에서 전개되는 신학적 진술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우주적 구원 사건으로 해석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즉, 출애굽기 없이 신약의 복음서를 해석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신약성경은 구약성경과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구약의 말씀은 신약에서 아주 정교하게 재현(representation)되고 있습니다. 구약을 어느 정도 깊이 알고 있느냐에 따라서 신약의 이해 정도가 갈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유대교 경전인 구약성경(히브리 바이블)을 내버리지 않고 기독교 경전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가 깊지 않았던 옛날 초기 기독교 때는 구약성경을 기독교의 정경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마르키온이라는 영지주의자가 그 대표적인 사람이었는데, 그는 구약성경을 배제한 신약성경만을 근거로 기독교 성경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 일을 열정적으로 진행했지만, 지금 와서 보면, 마르키온의 복음 이해가 얼마나 일천했는지를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다행히 정통 기독교 신학자들은 마르키온 같은 무지한 사람들의 과격한 행동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고, 지금 우리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어우러진 66권을 기독교 경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모세입니다. 모세오경이라 불리는 토라(Torah)는 율법의 근간이 됩니다. 토라에 대한 이해 없이 유대교 신앙뿐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제대로 가질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유대교와는 좀 다르게 모세오경을 해석하고 이해하지만, 모세오경을 넘지 않고 기독교 신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모세오경은 신앙에 절대적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약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바울입니다. 바울이 쓴 서신서는 신약성경 27권 중 13권에 해당합니다. 신약성경의 절반 정도가 바울서신입니다. (물론 13개의 바울서신 중 7개만이 실제로 바울이 썼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나, 다른 6개의 바울서신이 바울의 이름을 빌려 썼다는 것은 그만큼 바울의 영향력이 컸다는 뜻입니다.) 바울서신, 다르게 말하면, 바울을 넘지 않고 기독교 신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물론 바울(서신)만이 기독교 신앙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키를 쥐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는 데는 바울서신뿐 아니라 복음서, 사도행전, 히브리서, 요한계시록 등 다양한 복음의 기록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구약성경에 대한 이해 또한 필수적으로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난 기독교 2천년의 역사에서 바울서신만큼 기독교 신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성경도 없습니다. 바울서신을 어떻게 해석했느냐에 따라서 신앙의 색깔이 달라져 왔습니다. 일례로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된 마르틴 루터 같은 경우도 로마서에 대한 해석을 바탕으로 종교개혁을 단행했을 정도입니다. 그 이후에 특별히 개신교 신학은 바울신학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이 갈려 왔습니다. 그만큼 개신교는 바울서신을 주의 깊게 들여다볼 의무가 있다는 뜻입니다.

 

올해 하반기는 로마서와 함께 하려 합니다. 9월 첫째 주일부터 로마서 설교를 하려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한창 준비 중입니다. 제가 그동안 목회하면서 로마서 설교를 세 번 했는데, 이번이 네 번째 로마서 설교가 됩니다. 이번 로마서 설교는 저에게도 매우 도전이고 뜻 깊을 것 같습니다. 목회와 학문의 경륜이 어느 정도 쌓인 지금, 예전과는 분명 다르게 로마서가 제 마음에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이번 로마서 설교에서는 기존의 로마서 해석이 지닌 한계점을 넘어서 최신 로마서 연구가 반영된 설교를 하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여러가지 어려운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는 요즘 로마서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미래를 열어가고 미래를 계획하고 미래를 소망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중점을 두면서 로마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작업은 저 혼자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화교회 공동체가 올 해 하반기에는 로마서에 집중해서 함께 ‘말씀의 깊이’로 들어가려는 ‘같은 뜻, 같은 생각, 같은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기회에 로마서를 제대로 묵상하며 배워보겠다는 의지와 은총이 우리 모두의 마음을 어루만지길 기도합니다. 신앙의 깊이는 성경에 대한 이해의 깊이와 정비례합니다. 성경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숨어 계십니다. 우리에게 모습을 감추기 위해서 숨어 계신 게 아니라 우리에게 발견되시기 위하여 숨어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기꺼이 만나 주십니다. 우리 함께, 로마서 가서 하나님을 만납시다. 로마서에 가면 하나님이 계십니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