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오디세이 I2021. 6. 21. 17:01

마음의 눈이 밝아지면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

(에베소서 1:15-23)

 

바울에게 에베소교회는 마음이 많이 가는 교회였을 것이다. 그곳에 두란노 서원을 세워 두 해 동안 머물며 많은 이들에게 집중적으로 복음을 가르쳤던 곳이기 때문이다. 정성을 많이 쏟은 만큼 애정이 많이 가는 법이다. 에베소교회를 떠나온 바울은 에베소교회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곳에 머물며 함께 나누었던 복음에 대해서 다시 상기시키며 그들을 축복하고 있다. 특별히,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이 믿음과 사랑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동전의 양면과 같이 행하고 있는 것을 기뻐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참 흐뭇한 장면이다.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15-16절).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은 예수를 주님(퀴리오스/로마황제가 주님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가 주님이다는 고백)으로 믿는 믿음과, ‘주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다. 믿음은 언제나 주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믿음의 근거가 아니라 주 예수가 믿음의 근거다. 주 예수 안에 근거를 둔 믿음은 사랑을 불러 일으킨다. 믿음은 수직적이고, 사랑은 수평적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에 감격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함과 더불어 이웃을 사랑한다. 이웃을 향하여 선하고 좋은 마음을 갖는 것, 그래서 그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 그것은 믿음 있는 사람의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다.

 

바울은 에베소교회를 향해 간절한 기도를 드린다. 이 기도는 바울이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 머물며 그들에게 전했던 복음의 핵심을 담고 있다. 헬라어 원문에서 15절에서부터 23절은 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 이 긴 문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기도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주셔서

그들의 마음의 눈들이 밝아지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

하나님의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

하나님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길성남, 117쪽)

 

이 기도문에서 우리는 매우 낯선 이야기를 듣는다. 그것은 ‘지혜와 계시의 영인 성령을 받으면, 마음의 눈이 밝아진다’는 이야기다. 바울은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이 ‘지혜와 계시의 영인 성령을 받아서 마음의 눈이 밝아지길 원한다’고 기도하고 있다. 현대인에게 ‘마음의 눈’이라는 말은 참 생소한 말이다. 우리는 그저 육신의 눈으로 세상을 볼 뿐이기 때문이다. 시력이 흐려지면 우리는 더 잘 보기 위해서 안경을 쓰거나, 또는 라식/라섹 수술을 한다. 그리고 우리는 육신의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는 생각을 한다. 그 이상, 아니면 이 뒤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러한 생각에 익숙해 있다.

 

헬라어에서 ‘마음(누스)’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본문에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인간의 마음은 굉장히 신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성령을 받으면 우리 인간 존재의 어느 부위보다 ‘마음’이라는 곳이 반응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인간 존재 안에 있는 굉장히 신비스러운 공간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혜와 계시의 영인 성령을 받으면, 마음의 눈이 밝아진다. 그리고 마음의 눈이 밝아지면, 세 가지 영적인 진리를 알게 된다. 그것이 바울의 기도가 담고 있는 핵심 내용이다.

 

기도를 통해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지혜와 계시의 성령을 받으면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알게 되는 세 가지 영적 진리는 다음과 같다.

 

1)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아는 것

2) 성도 안에 있는 그의 기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아는 것

3)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아는 것

 

2세대 종교개혁자 칼뱅은 에베소서를 주석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우리의 스승인 성령이 우리를 가르쳐 주기 전에는 우리가 아는 것은 모두 무지와 어리석은 것뿐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비밀의 계시로 알려 주실 때 비로소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지식을 우리 마음으로 깨달을 수 있다.”(칼뱅) 그러면 지혜와 계시의 영인 성령이 우리의 마음에 역사하셔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세 가지 진리, 즉 마음의 눈이 밝아지면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에 대해서 하나씩 풀어가보자.

 

첫째로,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이 부르심의 소망은 다음 세 가지를 포함한다.

ㅡ 나는 하늘 나라에 기업이 있어. 거기에 상속재산이 있어. (나 실은 부자야.)

ㅡ 나는 교회로서 그리스도의 신부야. (신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상태에 대한 비유다: 나는 주님께 사랑 무지하게 받는 존재야)

ㅡ 완전한 평화와 아름다움은 회복될 거야. (지금 세상이 이렇게 망가지고 볼품없지만, 절망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언제나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산다. 주님께서 고쳐주시고 회복해 주실 것이므로!) 우리는 이러한 소망 가운데 산다. 얼마나 멋진 소망인가!

 

둘째로,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성도 안에 있는 그의 기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알게 된다. 여기서 기업(클레로노미아)는 상속 재산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우리가 하늘 나라에 재산을 많이 쌓아두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 의미를 넘어 우리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기업이라는 뜻이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기업이었듯,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기업, 즉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우리의 존재가 그냥 볼품 없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업인 영광스러운 존재라는 뜻이다 우리가 이것을 알게 되면 발생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떤 것의 소유로 있는 것은 시시한 것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살면서 우리가 영광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우리의 외적인 것으로 드러내려고 한다. ‘나는 구글 다녀. 나는 구글의 소유야. 나는 스탠퍼드 나왔어. 나는 스탠퍼드 소유야.’ 내가 속한 어느 것을 통해 나의 존재를 뽐낸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의 기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이 땅의 그런 것들은 모두 상대적으로 무가치한 것처럼 여겨진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고백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립보서 3:7-9a)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나의 고백이어야 한다. “나는 하나님의 기업이야. 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야. 그래서 나는 영광스러운 존재야.” 이미 하나님의 기억이 되어 영광스러운 존재가 된 사람은 주님 나라를 위해 자기 삶을 누추한 곳에 놓아도 개의치 않는다.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고백하듯이, 비천에도 처할 줄 알고, 풍부에도 처할 줄 알고,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알게 된다. 그 말은 겉 형편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거나, 자신의 겉 형편으로 인하여 일희일비하는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나는 하나님의 기업이야. 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야. 그래서 나는 영광스러운 존재야”라는 신앙고백 속에서 존재를 확인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형편을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이라는 진리이다.

 

그렇게 살았던 훌륭한 신앙의 선배가 있다. 최근 이준익 감독이 영화 <자산어보>를 통해서 새롭게 조명된 인물, 바로 정약전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더 반가운 이유는 내가 <자산어보>에 대한 글을 쓴 뒤 나온 영화이기 때문이다. 우연히 나의 글과 영화 <자산어보>가 겹치게 되었는데, 그렇게 좋은 마음으로 본 영화 <자산어보>는 참 따스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1801년 순조 1년, 신유박해로 인하여 천주교 신자들이 무참히 죽어갔다. 정약종, 정약전, 정약용 삼형제도 신유박해를 피해갈 수 없었는데, 이 박해로 인하여 정약종은 순교를 하고, 정약전과 정약용은 어쩔 수 없는 ‘배교’로 인하여 목숨을 건지지만, 각각 흑산도와 강진으로 유배를 간다.

 

이준익 감독이 훌륭한 것은 순교자 정약종이나, 실학자 정약용에 비해 덜 유명한 정약전을 새롭게 발견하도록 눈과 마음을 이끈다는 것이다. (영화 <동주>에서도 송몽규 조명 / 윤동주를 이해하는 데 절대적인 인물). 정약용은 체제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지배계급이 따스한 마음을 가지고 백성들을 돌보도록 “목민심서”를 통해 지배계급을 다독이는 방법을 택하지만, 정약전은 "양반도 상놈도 없고 임금도 필요 없는 세상"을 꿈꾼다. 그래서 그는 아예 민중들이 스스로 깨어나 빈곤에서 탈피해 자립하게 되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실용 서적 <자산어보>를 집필한다. 정약전(설경구 분)은 그의 제자이자 <자산어보>의 공동저자 격인 창대(변요한 분)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학처럼 사는 것도 좋으나 구정물 흙탕물 다 묻어도 마다않는 자산(흑산도를 일컫는 말) 같은 검은색 무명천으로 사는 것도 뜻이 있지 않겠느냐.” 즉, 정약전 자신이 양반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양반이라는 신분으로 인하여 존재감을 찾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기업이라는 존재의식을 통하여 존재감을 찾았기에 "양반도 상놈도 없고 임금도 필요 없는 세상"을 꿈꿀 수 있었던 것이다. 정말 멋진 인생 아닌가!

 

셋째로,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우리는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된다.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하기 위하여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여 잃게 말한다. “그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9절). 여기에 쓰이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단어는 네 개이다. 1) 힘(이스퀴스): 힘을 행사하는 것, 2) 위력(크라토스): 가는 길 앞에 놓인 장애물을 극복하는 힘, 3) 역사하심(에네르게이아): 내재된 힘, 4) 능력(뒤나미스): 무엇인가를 이루어 내는 능력.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힘이 무한히 크다는 것 강조하는 말이다.

 

에베소서를 주석한 성서학자 부르스(Frederick Fyvie Bruce)는 이런 말을 했다. “만일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탁월한 증거라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탁월한 증거다.” 하나님의 능력은 새생명을 주는 능력이며 새 창조의 능력이다. 우리가 지금 팬데믹 때문에 여러 가지 멈추어 섰다. 불안이 늘어서 정신과 치료 약 소비가 폭등했다. 많은 이들이 소멸할까봐 망할까봐 전전긍긍하는 하며 산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극에 달했다. 사실, 교회가 타격이 가장 큰 집단 중 하나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의 힘이 무한히 크다는 것,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아는 것, 믿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우리 교회 공동체에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2020년 정말 멋지게 출발했다. (기억이 희미하겠지만) 교회가 아주 새롭게 출발했다. 역사 청산(아픔을 덜어내고) / 빚 청산(재정적 부담을 덜어내고), 그리고, 세화비전 2020을 향해서 출발했다. 그런데, 그게 딱 멈춰 섰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기업이 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은 멈추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불멸의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교회는 더욱더 그러하다. 기도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장엄한 언어로 밝히고 있다. 그리스도는 부활과 승귀(승천)을 통해 하나님께 만물을 다스리는 권한을 부여받은 주님이시다. 그 주님이 교회의 머리이시다. 그러므로 주님의 몸인 교회는 그 생명력이 무한하고 충만하다. 그 어느 것도 주님의 몸인 교회를 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기운을 회복해 나간다면, 교회는 다시 활력을 찾아 주님의 몸으로서 그 역할을 잘 감당하게 될 것이다.

 

마음의 눈이 밝아지면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 세 가지의 진리! 요한복음이 선포하고 있듯이,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한다. 우리가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혀 사는 이유는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리를 알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의 눈이 어두워서 그렇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 전부인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유혹하여 안목의 정욕을 채우도록 혈안이지만,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의 눈이 밝아져 진리 안에 거한다.

 

1)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아는 것

ㅡ 나는 하늘 나라에 기업이 있어. 거기에 상속재산이 있어. (나 실은 부자야.)

ㅡ 나는 교회로서 그리스도의 신부야. (나는 주님께 사랑 무지하게 받는 존재야)

ㅡ 완전한 평화와 아름다움은 회복될 거야. (지금 세상이 이렇게 망가지고 볼품없지만, 절망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언제나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산다. 주님께서 고쳐주시고 회복해 주실 것이므로!)

 

2) 성도 안에 있는 그의 기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아는 것
ㅡ “나는 하나님의 기업이야. 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야. 그래서 나는 영광스러운 존재야.” 겉 형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족할 줄 아는 사람!

 

3)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아는 것

ㅡ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킨 하나님의 능력, 새생명을 주시고, 새창조의 능력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을 믿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겨 드리는 삶. 어떠한 상황에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을 거라는 믿음. 모든 것이 주 안에서 회복되고 형통할 거라는 희망.

 

마음의 눈이 밝아지면 비로소 알게 되는 이 진리들 안에서 멋진 인생 사는 하나님 나라의 소유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선포한다.

Posted by 장준식

댓글을 달아 주세요